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곡도 Nov 12. 2024

와 그거 정말 부럽네요.

부러우면 지는 겁니다.

이 이야기는 팩션입니다. 팩션은 팩트(Fact)와 픽션(Fiction)을 합성한 한국식 영어 단어로, 사실을 바탕으로 한 실화나 실존 인물의 이야기에 픽션을 섞어 재창조하거나 더 나아가 가상의 사건·인물을 덧붙이는 행위 또는 그렇게 탄생한 작품을 의미합니다. 소개팅 당사자는 여러 사람이 모인 인격들로, 허구의 인물임을 알려드립니다.


'오늘은 집에 일찍 가지 그래'

'어제 강사비 상신하라는 거 아직 안 끝났어요. 출결서류도 마무리 안 됐는데요. 다른 학교 애들 평가 자료 정리 아직 못했어요. 아오 일 시켜놓고 집에 가래'


일주일 중 유일하게 일찍 갈 수 있는 금요일, 부장님은 집에 가지 않는 나를 보고 안쓰러워하며 말했다.

우리 부서는 그 해 새로운 사업을 시작했다. 학교에 개강되지 않는 수업을 방과 후에 열어주고 이를 관리하고 있었다. 일주일 중 화, 수, 목 3일은 밤 10시에 모든 강좌가 마쳤다.   


'소개팅 하나 해봐. 아는 후배 친구인데 인성 좋다고 하더라'

'아 네네 네네'

'건성으로 네네 하지 말고 연애한 지 오래됐잖아.'

'아 누구 때문인 데에'

'그러니까 그냥 해봐'

'네네 네네 전화번호 주세요 아 그리고 이 친구 성취기준미달인데 뭐라고 써요. 성취기준 미달임?'

‘발전 가능성이 보임, 발전이 요구됨. 이렇게 써 지금은 못하지만 다음엔 잘 하게 될 수도 있으니’


누군가 보증하는 인간은 좋은 인간이겠지 하며 집 근처 분위기 좋은 카페에서 그를 만났다.




정장 차림이 어울리는 그가 먼저 앉아있었다.


안녕하세요

네 안녕하세요


서로 낯설어하며 인사를 하고 이야기를 시작했다.


'학교 선생님은 첨 뵈어요.'

'저도 증권회사 다니시는 분은 처음 만나봐요 일 많이 힘드시죠'

'네 돈을 다루는거라 실수가 있으면 안 돼서 힘들어요.'

'아 정말 힘드시겠어요. 한 치의 오차도 없어야 하잖아요.'


증권회사 사람은 처음이었다. 어쩌다 저 일을 하게 됐는지도 어떤 일을 하는지 궁금해서 이것저것 물었다. 친절하게 답하던 그는 일이 고단한 듯 말을 이어나갔다.


'출근이 너무 빨라서 힘들어요 7시까지 가야 해요.'  

'그렇게나 일찍 가야 하는군요. 준비할게 많으신가 봐요.'

'직장은 가까이에 있나요? 저는 지하철 타고 40분 정도 걸려요'

'저는 20분 정도 걸려요'

'아 정말 부럽다 엄청 가까이 있네요. 출근은 언제 하세요'

'9시 시작이고 5시에 끝나요.'

'아 진짜 부럽다. 저는 8시에 끝나요. 진짜 빨리 끝나네요 6시도 아니고'

'아 네 점심시간도 생활지도 시간에 포함돼서요. 8시면 거의 14시간 일하시는 거네요. 노동법에 걸리는 거 아닌가요'

'네 너무 힘들어요. 그럼 수업은 하루에 몇 시간 해요?'

'하루에 보통 네다섯 시간이에요'

'아 완전 부럽다. 하루에 네 시간만 일하는 거네요'


부럽다 살인마다!!!


대화가 시작하고 십 분도 안 돼서 세 번의 부럽다는 말을 들었다. 일이 많이 힘든가 보다 싶었다. 수업이 하루에 네 시간이라는 건 4시간*50분을 서서 내내 큰소리를 내며 서있는다는 말인데. 이 사람은 8시간 내내 강의를 해야 한다고 생각한 걸까? 수업을 하루에 네 시간 하면 수업만 하는 게 아니라 그 수업 준비하고, 수행평가 채점하고, 출결 관리하고, 서류 정리하고, 공강시간엔 밀린 업무 합니다 이 사람아!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아직 학생 마인드인가 보다. 많이 힘든 직장생활을 하나보다 싶어서 말을 줄였다.


'아 그렇게만 하는 건 아니고요 수업준비도 하지요.'


'방학에는 정말 월급 다 나와요?'

'네'

'아 짱이다 장난 아니게 부럽다 진짜 좋네요'


교사에게 방학 있어서 좋겠다는 말은 가급적 안 했으면 했는데. 이 양반이 기어코 꺼내고 말았다. 그렇다. 방학은 좋다. 하지만 방학에 월급 안 나오면 족집게 과외하고 단기 알바를 하랴. 우리의 방학 월급은 학교 다닐 때의 월급을 나누어서 방학에도 지급되는 건데.

'방학에 연수도 하고 생활기록부도 씁니다. 지난 두 번의 방학에는 500시간 연수 듣느라 9 to 6 했어요.'라고 말하고 싶었으나 내 삶을 뭐 하러 말하나 싶어 가만히 있었다. 일단 직장인은 쉬지 못하니까 방학을 부러워하는 것도 알고 재충전할 수 있는 방학이 정말 감사한 시간인건 나도 매우 인정하니까.


'네 직장인들은 그런 쉼의 시간들이 없으니 더 몸이 안 좋다고 들었어요.'

'네 온몸이 쑤시고 아프네요.'

'그래도 월급 많이 받으시겠어요 저보다 세네 배?'


'당연하죠. 제가 하는 일은 힘들잖아요'


....



제가 하는 일은 힘들잖아요

제가 하는 일은 힘들잖아요

제가 하는 일은 힘들잖아요


힘들 것 같다. 그렇게 오래 일하고 숫자에 오차 있으면 난리가 나는 직업인데 안 힘들 수 있겠나. 그렇다고 다른 사람 직업을 그렇게 까내리면 쓰나.

휴먼. 당신이 하는 일만 힘이 듭니까. 후우. 우리의 만남도 앞으로 힘들겠습니다요.


...


'네 많이 힘드시겠어요'


그날 대화의 1/2은 자신의 일에 대한 투덜거림으로, 1/2은 교사에 대한 하대와 부러움으로 채워지며 끝이 났다.

 



집에 오니 너무나 피곤했다. 혼이 나간 채로 침대에 누우니 카톡이 왔다.


'오늘 너무 너무 즐거웠어요. 또 만나고 싶어요. 다음 주에 시간 되시나요?'


무엇이 즐거웠단 말인가?

말을 들어줘서 좋았던 건가?


가인 직업 상담소는 1회기로 종료할 거다.


'아니요. 만남은 여기까지 하는게 좋을 것 같아요. 좋으신 분 같은데 저랑은 코드가 안 맞으시는 것 같아요. 감사합니다'


자주 쓰던 소개팅 종료 멘트를 보냈다.


그 뒤로 뭐가 안 좋았느냐, 교사가 네 시간밖에 일 안 하는 줄 알았다 등의 지난한 변명과 카톡이 이어졌다.


남은 생기부를 써야 하는데 자꾸만 말을 걸어서 그냥 끊어버렸다. 저는 할 일이 있어서 이만 총총. 아마 주말에 노는 교사가 뭐가 바쁘다고 카톡도 끝내버리나 했겠지.


책상에 앉아 노트북을 펼쳤다.

그를 생각하니 머리속에서 타이핑 소리가 났다.



두루 인성이 좋다는 소문이 있고 하루하루 성실하게 생활하는 모습은 훌륭하나 다른 직업 세계에 대한 이해도가 부족하여 더 많은 발전이 요구됨.









매거진의 이전글 첫 소개팅 : 그 전화, 받지 마세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