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네미 Oct 07. 2019

그는 항상 피곤하다했다.

신랑은 저녁밥을 먹고는 곧장 침대에 누웠다. 마그네틱 플러스(헬로카봇에서 두 개의 로봇이 하나로 합체하는 기술)라도 했는지 한번 누우면 절대 침대와 떨어지지 않는다. 차라리 잠이라도 자면 진짜 피곤하구나 할 텐데, 역시나 한 손에는 휴대폰. 한참을 폰질이다.


그래, 밤새 일했으니 쉬어야지. 첫째 아이를 임신했을 때부터 시작된 신랑의 당직 생활. 일주일에 수일을 밤샘 당직을 한다. 거기다 나는 전업주부. 그러면 누구나 생각한다. 집에서 노니 아이 돌보는 것은 당연하다고.


나도 그렇게 생각했다. 젊지 않은 나이에 고생하는 신랑이 불쌍했다. 그래서 지난 6년간 모든 육아와 살림을 불평 없이 내가 담당했다. 신랑은 고맙다 말하곤 했다. 그런데 이제는 당연한 것이 된 걸까?


설거지를 하는 나에게 첫째가 다가왔다. 공룡 배틀을 하자고 했다.  공룡을 흉내 내면서 씨름하는 놀이. 나는 아이에게 엄마는 지금 집안일을 하니 아빠에게 부탁하라고 말했다.


- 아빠 우리 공룡 배틀하자.

- 그럴까.

- 난 티라노 사우르스. 크아!

- 아아….


신랑은 휴대폰에 눈을 꽂은 채 입으로만 말한다. 아이는 아빠가 움직이길 기다리나 신랑은 계속 휴대폰만 본다. 아빠와 놀아본 기억이 별로 없는 아이는 더 보채지 않는다. 오늘도 이렇게 흐지부지 끝나고 말았다.


속에서 커다란 불덩어리가 울컥 튀어나올 것 같다. 거실에서는 아이들이 뛰노는데, 안방 침대에서 휴대폰만 하는 신랑이 정말 꼴 보기 싫다. 애랑 좀 놀아주라고! 당장 휴대폰을 빼앗아 벽에 집어던지는 상상을 한다.


몇 번이나 부탁을 했다. 애들 크는 거 금방이라고, 제발 아이들과 잠깐이라도 시간을 보내달라고, 울며불며 냉전을 가진 적도 수차례다. 아무리 싸워도 그때뿐이다.









지난 주말 서울에서 내 친구들이 놀러 왔다. 2년 만에 만나는 친구들. 모처럼 신랑이 쉬는 토요일이기에 아이 둘을 신랑에게 맡기고 친구들과 밖에서 점심을 먹었다. 나 없이 아이 둘과 아빠만 시간을 가지는 것이 평생 두 번째다. 첫째가 6살이 될 때까지 지금에서야 두 번째라는 말이다. 걱정은 됐지만 그래도 별다른 연락이 없길래 마음을 놓았다. 이참에 신랑과 아이들이 친해졌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식사를 마치고 친구들과 집으로 왔다. 애들이 뛰놀았으니 집안이 개판이겠군. 문을 열며 생각했다. 그런데 집이 조용했다. 첫째는 거실에서 혼자 멍하니 티브이를 보고 있었다.


-아빠는?

-아빠 자.


안방을 여니 신랑과 둘째는 침대에서 낮잠을 자고 있었다. 몇 시간째 티브이 앞에 애를 방치해놓은 신랑에게 짜증이 났다. 그렇게 졸리면 거실 소파에서라도 자지, 방문까지 닫고 침대에 대짜로 자고 있는 신랑이 이해가 안 갔다. 그런데 조금 있으니 신랑이 문을 열고 나오는 게 아닌가? 그리고 살가운 얼굴로 내 친구들에게 말을 건넨다. 허허 웃는 사람 좋은 웃음소리에 화가 치밀었다. 나도 내 마음이 당황스러웠다. 소중한 내 친구들에게 잘해주는왜 화가 날까? 마음을 곰곰이 따라가 보니 내 안에 가득한 서운함을 만났다. 평소 주말에 한번 잠에 빠지면 아무리 애들이 놀자고 올라타도 꼼짝하지 않는 사람이, 내가 깨우지도 않았는데 알아서 나오다니. 그리고 종알종알 말도 잘한다. 잠시만 아이들과 교감해주고 나와 눈 마주치고 이야기하는 것. 내가 그토록 원하던 것을 외부인과는 참으로 잘했다.


친구를 보내고, 저녁시간이 됐다. 무거운 마음으로 아이를 재운다. 그런데 이제 신랑은 침대에 없다. 거실을 보니 맥주를 마시며 축구를 보고 있다. 그리 피곤하다는 사람이, 애들이 놀아달랄 때는 손가락 하나 까딱 안 하던 사람이 이럴 때는 안 피곤 한가. 내 친구들에게 짓던 웃음이 떠오른다. 나와 두 아들은 이제 그런 공을 들일 사람이 아니구나. 피곤이 문제가 아니었다. 나와 아이들은 잠깐의 귀찮음을 이기고 시간을 공유할 가치가 없는 존재가 된 느낌이다.  그냥 내버려 두어도 괜찮은 사람. 침대에 누워 삼키는 침이 쓰다.






- 그럼 나는 언제 쉬냐?


퇴근하고 와서 10분이라도 아이들과 온전한 시간을 보내달라는 나의 부탁에 신랑이 한 말이었다.


- 애는 나 혼자 낳았어?


이렇게 대꾸하고 싶었지만 입 밖으로 내지는 못했다. 비록 온갖 집안일과 뒤치다꺼리를 처리했어도 아무 돈을 못 만들었기에 나는 팽팽 노는 사람이었으니깐. 모든 집안일과 육아는 내 몫이었다. 전업맘은 아이와 아빠가 짧게나마 교류를 하는 것도 바라면 안 되는 걸까?


출산 후 직장을 알아본 적이 있었다. 신랑 따라 이사 온 지방 소도시에는 괜찮은 일거리가 없었다. 출산  받던 연봉에 반토막이 났다. 그리고 아무리 생각해도 아이가 너무 어렸다. 주변에 아무도 없어 도움을 받을 수도 없었다. 차라리 아껴 쓰고, 아이들에게 사랑을 듬뿍 주자고 결심했다. 가족을 위한 희생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내가 잘못 선택한 걸까? 아무도 고마워하지 않는 희생. 내가 번 돈을 고대로 돌보미에게 퍼주는 한이 있더라도 일을 했어야 나. 그랬다면 아이들에게 모성이 조금 모자랄지라도 부성을 더 알 수 있었으려나.


경력단절 6년을 넘어간다. 견고하던 자신감이 점점 희미해져 간다. 내가 다시 일을 할 수는 있을까? 이게 결론이라면 난 뭘 위해 공부를 했던 걸까? 꿈이 많던 나였는데,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던 나였는데, 서랍 구석에 처박힌 2G 휴대폰이 된 느낌이다.


눈물이 펑펑 쏟아진다. 눈물이 귀를 지나 베개로 굴러 떨어졌다. 내 양 옆에 누운 아이 둘이 어느새 잠이 들었다. 오동통한 볼때기가 사랑스럽다. 나를 절대적으로 의지하고 사랑하는 아이들. 이 아이들이 내 인생을 막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런데 이 답답한 가슴을 뭘까?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생각이 많은 밤이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