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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네미 Jul 19. 2021

우리 스케이트 다닐래?

- 몇 나왔어?

- 삼십일.

- 몇?

- 삼십일 쩜 영 나왔어.

- 진짜?


  나는 첫째 아이의 발밑에 놓인 체중계를 들여다봤다.


‘31.0 kg’


- 초등학교 1학년까지는 30킬로가 넘지 않도록 하세요. 또래보다 키가 좀 크기는 하지만 30이 넘으면 곤란해요.


  동네 단골 소아과 의사 선생님이 나에게 신신당부한 말씀이 떠올랐다. 더는 살찌지 말자고 아이와 손도장까지 찍으며 다짐을 한 게 지난 달인데 고사이 1kg이 호로록 쪄버리다니.


- 아이고, 아직 일 년이 반이나 남았는데 벌써 31을 넘겨버렸네. 어떡하냐.

- 엄마, 난 25야!


  여섯 살 둘째가 옆에서 외쳤다. 이건 또 무슨 소리람. 아직 여섯 살밖에 안 된 둘째의 몸무게가 25kg이라니! 평균 몸무게보다 무려 6kg이나 많았다. 작년만 해도 길거리를 걷다 보면 동네 할머니들이 ‘남자애들이 이리 삐쩍 말라서 우째. 밥 좀 먹여!’ 하던 여리여리한 아이들이었다. 어쩌다 이리 비만을 문턱에 둔 오동통이들이 되었나.


- 엄마, 미안….


 나의 심각한 표정을 보고 첫째가 괜스레 사과를 했다. 너네가 무슨 잘못이 있겠냐. 이게 다 코로나 때문이지.



  2020년 봄 이후로 우리 가족은 여느 대한민국의 가족들처럼 집콕의 삶을 사는 중이다. 놀이터며 숲이며 아침저녁으로 망아지처럼 뛰어다니던 남자아이들을 집안에만 가둬두었으니 잉여 에너지가 지방으로 변하는 건 만고불변 자연의 이치터. 거기에 나는 코로나 스트레스를 제과제빵으로 풀어보겠다며 매일같이 달달한 것들을 구워댔다. 확실히 내가 빵을 구운 이후로 아이들의 몸무게 증가가 급격한 상승 곡선을 그리고 있었다. 나는 왜 쓸데없는 곳에 부지런을 떨어서 이 사단을 낸 걸까. 어릴 적 비만은 평생 고생한다던데, 부모로서 지금이라도 관리를 해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태권도는 첫째가 무섭다고 하여 패스. 수영은 아직 코로나가 좀 걱정되고, 배드민턴은 6살 둘째가 하긴 좀 벅찼다. 6살 8살 아이들이 할 수 있고, 그나마 코로나 위험성이 적으면서, 효과는 좋은 운동이 뭐 없을까? 그 순간 동네에 있는 빙상경기장이 떠올랐다.


- 맞다! 스케이트. 너희 스케이트 다닐래?

- 그게 뭐야?


  나는 모태범 선수의 동영상을 보여줬다. 빙상을 가르는 시원한 질주. 바위처럼 튼튼해 보이는 멋진 체격. 아이들의 눈에도 꽤 멋있어 보였나 보다.



- 이거 할래!

- 그래?


  내가 또 실행력 하나는 끝내준다. 나는 즉각 빙상경기장에 문의해 코치님과 통화까지 일사천리로 진행했다. 다행히 수강 자리가 남아있다고 했다.


- 저…. 코치님, 저희 둘째가 여섯 살인데 괜찮을까요. 애가 통제가 될련지….

- 음. 그건 아이마다 달라서 한번 수업을 해봐야 알 것 같아요.

- 아무래도 그렇겠죠?


  무섭다며 울고불고 떼쓰는 둘째의 모습이 그려졌다. 역시 이 운동도 포기해야 하나 싶을 때,


- 아니면 어머님도 같이하시는 건 어떠세요?

- 저요? 그래도 되나요?

- 물론이죠. 그렇게 하면 아이도 안정되고 좋을 것 같아요.     


  아이들 강습만 되는 줄 알았는데 성인도 할 수 있었던 거구나. 나는 슬쩍 아이들에게 물어봤다.


- 애들아. 엄마도 같이 스케이트 배울까?

- 응! 엄마도 같이 하자!


  아직까진 엄마와 무엇이든 함께하길 원하는 유초등생 아이들이라 그런지, 펄쩍 뛰며 격하게 좋아해 줬다.


- 그, 그럴까?


  정신을 차렸을 때는 어느새 나까지 같이 수업을 예약해버린 후였다. 뒤늦게 괜히 주책맞은 짓을 한건 아닌가 하는 걱정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학창 시절 체력장 5등급을 단 한 번도 벗어나지 못한 운동 열등생임을 애써 잘 숨기고 살았는데, 이제 나의 몸뚱이가 얼마나 허접한지 아이들 앞에서 낱낱이 드러나게 생겼다. 더군다나 나는 스케이트 경험이 전무했다. 어릴 적 아빠 손잡고 몇 번 타본 게 다였다. 허수아비처럼 빳빳이 굳어서 벽 잡고 겨우 기어 다니는 엄마를 보면 과연 아이들이 뭐라고 할까.


  그래도 한편으로는 어느새 아이들이 커서 무언가를 함께 경험할 수 있는 나이가 됐구나 하는 생각에 감격스럽기도 했다. 내가 새로운 운동을 시도해본 것이 언제였단 말인가. 이번 스케이트 강습이 나의 고단했던 출산 육아 9년의 끝을 알리는 신호탄인 동시에 아이와 엄마가 함께 성장할 수 있는 기회일 수 있겠다란 생각이 들었다.


  한꺼번에 밀려오는 떨림과 걱정, 두근거림과 걱정의 감정들을 느끼며 나는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그래, 기왕 이렇게 된 거, 저질러보자.

  내일 해보면 알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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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스케이트를 타게 됐지 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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