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 C.S.Lewis -

by 네미 Sep 03. 2021

말랑말랑하지만 단호한 엄마


  “엄마, 한 개만 더 보면 안 돼요? 네에에?”     


  아이 둘이 두 손을 턱 밑에 괴고, 슈렉의 장화 신은 고양이 눈을 한 채로 나를 쳐다본다. 잠자리에 들기 전, 헬로 카봇 만화 동영상을 한 사람당 두 개씩 보여주는데, 더 보고 싶어 나에게 온갖 애교를 부리는 것이다.


  보통 동영상 한 개에 11분이니, 아이 두 명이 두 개씩 선택하면 총 44분이다. 아이들이 로봇의 세계에 푹 빠져 있을 동안 나는 잠시 여유를 가지고 하루를 정리한다. 모두가 행복한 시간.

    

  그런데 문제는 꼭 ‘조금만 더’가 된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안된다고 했다. 그러나 너무도 간절한 아이들의 눈빛과 허락해줬을 때 환호하는 모습에 자꾸 마음이 약해졌다. 결국 한 개 정도만 추가로 더 보여주던 것이 어느덧 두 개가 되고, 세 개가 됐다. 웃긴 것은 애초에 보는 동영상의 숫자를 두 개씩에서 세 개씩으로 늘려도 똑같이 추가를 요구한다는 것. 이제 아이들은 몇 개쯤 더 보는 것은 당연하다 생각하는 듯하다.      


  ‘이래도 괜찮을까’하는 염려가 들었지만, ‘그래 봤자 30분 더인걸 뭐’하며 스스로 위안 삼았다. 그러나 그 30분이 늦은 취침과 기상으로 연결되어 허겁지겁 학교에 가게 만들곤 했다. 매번 뒤끝이 시원치 않은 요즘이다.           


엄마, 조금만 더 보면 안 돼요? 네에?






  두 아이의 뒤꿈치에 동일하게 상처가 났다. 처음에는 빨갛게 살짝 부풀어 올랐었는데, 점점 심해지더니 껍질까지 벗겨졌다. 월, 수, 금, 주 3회 스케이트 수업을 받다 보니 생채기가 아물새 없이 계속 압력을 받은 탓이다.


  수업 전 선생님께 말씀드리니 사무실에서 스펀지 조각을 가져오셨다. 일상에서 흔히 보는 스펀지와는 달리 얇지만 말랑말랑해서 살에 착 감기는 느낌이었다. 선생님은 스펀지 가운데에 조그맣게 구멍을 뚫더니 상처 위에는 빈 곳이 올라가고 주위 살에만 스펀지가 덧대지도록 했다. 그 위에 양말을 신으면 모두 완성! "이제 안 아파요!" 하며 아이들의 폴짝 뛰었다. 역시 다년간 아이들을 가르쳐오신 선생님의 노하우는 달랐다.

    

오호라. 이런 방법이!


  “어머니, 오늘은 제가 묶을게요.”


  보통은 엄마가 묶어주던 스케이트인데, 특별히 선생님이 해준다니 아이들 얼굴에 미소가 한가득이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곧 미간이 잔뜩 구겨졌다.      


  “선생님, 너무 쎄요. 살살 좀 묶어주세요!”     


  선생님은 아랑곳하지 않으시고 더욱 힘껏 스케이트 줄을 당기셨다. 손에 힘줄이 불끈거릴 정도였다. 아이가 아프다는데 마음 편할 부모가 어디 있겠나. 나는 괜히 안절부절못했다.     


  “어머니. 이렇게 꽉 안 묶으면 안이 헐거워져서 발이 다칠 수 있어요. 아마 이번에 상처가 난 것도 그 이유일 거예요.”


  사실 처음 배우기 시작할 때 선생님께서는 신발 끈을 꽉 묶어야 한다고 유의사항을 말씀해주셨다. 그런데 막상 힘줘서 묶으려니 아이들이 아프다고 난리였다. 조금씩, 조금씩 느슨하게 하다 보니 어느새 발이 안에서 움직일 정도로 풀어주게 되었나 보다. 아이를 조금 편하게 해주고자 한 것이 오히려 큰 상처를 남기게 했다니.


  "자, 이제 끝! 먼저 나가서 스케이트 타고 있어."

  "네!"   

  

  뭐지? 금방이라도 다리가 부러질 듯 비명을 지르던 아이들이었는데, 아무렇지도 않은 듯 벌떡 일어나 얼음판으로 달려갔다. 지킬박사가 형님이라고 부를 정도의 태세 전환을 보고 있자니, 어이없어 웃음이 나왔다.     


  그 잠깐의 엄살을 듣기 싫어 아이들을 풀어줬구나. 아이를 위하는 거라는 이유를 내세우긴 했지만, 내 깊은 곳에는 아이의 칭얼거림을 받아주기 싫은 귀찮음과 그저 좋은 엄마 역할만 하고픈 욕심만 있었다. 당장 앓는 소리에 풀어주다 보면 언젠간 더 큰 생채기로 다가온다. 원칙을 정했으면 벗어나지 않는 태도를 보이는 것이 육아에서 얼마나 중요한지 깨달았다.     


  물론 언제나 단호할 수만은 없을 터. 평소엔 스펀지처럼 상처를 감싸 안아 줄 수 있는 말랑말랑한 부모이면서도, 안 되는 건 안 된다고 딱 잘라 말할 수 있는 지혜로운 부모가 될 수 있기를.     


  그런 의미에서 오늘부 동영상은 얄짤없이 두 개씩이다!

이전 05화 프로 그만둬러
brunch book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어쩌다 스케이트를 타게 됐지 뭐야

매거진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