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한 하루였다. 재미있게 스케이트 수업을 받고, 이어진 자유시간에도 두 아이 모두 깔깔 거리며 빙판을 즐겼다. 정리할 때쯤엔 남편으로부터 일이 일찍 끝나게 돼서 우리한테 오겠다는 연락이 왔다. 남편 직장과 경기장은 자전거로 10분 거리다. 나가보니 남편이 주차장에서 있었다. 아이들은 갑작스러운 아빠의 방문에 좋은지 방방 뛰었다. 나도 남편에게 운전대를 맡기고 기분 좋게 조수석에 앉았다. 만족스러운 행복감이 차 안에 가득했다.
왁자지껄 떠들던 아이들의 입에서 슬슬 배고프다는 소리가 나왔다. 오늘 저녁 메뉴는 고기전골. 끓이기만 하면 완성되도록 미리 만들어놓고 나오길 천만다행이다. 나는 머릿속으로 최소한의 동선으로 어찌 저녁을 차릴지 시물레이션을 그렸다. 그렇게 30초나 지났나. 갑자기 조용해졌길래 뒤돌아보니 둘째가 자고 있었다. 5분이면 집에 가는데, 그 사이 잠에 곯아떨어지다니.
역시나 금방 집에 도착했고 나는 둘째를 깨웠다. 그러나 꿈쩍도 않는 아이. 세상모르고 자는 애를 흔들어 겨우 눈을 뜨게 했다. 그러자 둘째는 인상을 잔뜩 찌푸리더니 울음을 터트렸다. 온 아파트가 떠내려 가도록 울어대는 걸 보니 금방 잠잠해질 것 같지 않았다. 아, 완벽한 하루였는데 이리 꼬이는구나.
조금만 어렸다면 번쩍 들어서 옮겼겠지만, 이제 30킬로에 육박하는 이 통통한 6세를 들 정도로 나나 신랑이나 허리가 튼튼하지 않았다. 결국 통곡하는 아이에게 억지로 신발을 신기고 걷게 해서 집으로 데려왔다. 아이는 집에 오자마자 본격적으로 꺽꺽댔다.
나는 일단 우는 아이는 내버려두고 저녁을 차렸다. 무얼 먹이면 조금 잠잠해질 거란 생각이었다. 그러나 저녁 먹으러 식탁에 오라는 나의 말에 둘째는 더 목소리 크게 울어재꼈다. 이번엔 엄마가 형아가 좋아하는 음식만 해주고 자기가 좋아하는 건 항상 나중으로 밀린다는 이유였다.
형아가 고기전골을 좋아하는 것도, 둘째가 좋아하는 항정살은 그다음 날 먹기로 한 것도 맞는 말이다. 그러나 형아만 편애해서 일어난 일도 아니고, 날씨가 조금 쌀쌀하기에 전골이 더 좋을 것 같아 나름 고심해서 결정한 건데 둘째는 자기 맘대로 곡해하고 서운해한다.
둘째의 짜증 섞인 울음은 줄어들 줄 몰랐고, 결국 참다가 지친 남편이 밥 안 먹을 거면 침대로 가라고 경고를 했다. 둘째는 비련의 여주인공 포스를 풍기며 침대로 뛰어갔다. 내심 반성하고 돌아오길 원했을 신랑은 둘째는 왜 항상 저렇게 짜증을 내는지 도저히 모르겠다며 고개를 휘저었다.
나도 백번 천 번 남편의 말이 동의를 했다. 스케이트도 오며 가며 태워줘, 놀아줘, 맛있는 거 해줘, 부모로서 해줄 수 있는 최대한의 것을 제공해주려 노력하는데. 고작 잠 깨운 거랑 자기 메뉴가 하루 뒤로 밀린 것 때문에 이 난리를 칠일인가! 첫째는 얌전히 손 닦고 들어와 맛있게 먹는데 얘는 뭐하나 쉬운 게 없이 유별난 건가.
침대방으로 가 둘째를 내려봤다. 침대에 얼굴을 묻고 서럽게 울고 있는 그 뒷모습을 가만히 보고 있자니 어릴 적 내가 보인다.
나에겐 세 살 많은 오빠가 있다. 잘생기고, 공부도 잘하고, 10여 년간 줄곧 반장만 하던 잘난 오빠. 이 사람이 그냥 엄마 친구 아들이면 좋겠는데, 아쉽게도 우리 엄마 아들이었다. 그에 반해 난 공부를 뛰어나게 잘하는 것도 아니고, 예쁜 것도 아닌, 극히 평범한 아이였다.
차분한 오빠와는 다르게 나는 뭘 하든 사고를 치곤 했다. 꽃병을 깨고, 음식을 쏟고, 가전을 뒤엎는 등, 집에서 일어나는 모든 사고는 내가 원인이었다. 그럴 때마다 부모님은 오빠는 안 그러는데 나는 왜 이리 덜렁거리냐며 혼냈다. 그럴 때마다 나는 이불을 뒤집어쓰고 왜 이모양일까를 곱씹으며 자책했었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보면 조금 억울한 게 있다. 본래 태어난 것이 조금 덜렁거리긴 했고, 첫째인 오빠가 워낙에 잘난 사람이긴 했지만 생각해보면 오빠가 어릴 땐 꽃병이 없었고, 음식은 손대기 어려운 곳에 신경 써서 두었으며, 가전은 높은 곳에 두거나 땅에 뒀다. 그런데 오빠가 커나감에 따라 부모님은 주변 환경에 신경을 덜 썼다. 자연스레 집안 구조가 오빠의 성장단계에 맞춰 변해갔다. 그러니 아직 어렸던 나는 문제를 일으킬 수밖에 없었던 것이었다.
그러고 보니 우리 집 둘째도 이제 고작 6살이다. 첫째는 6살 때 겨우 놀이터나 나가고, 뽀로로를 봤다. 그러나 둘째는 지금 스케이트를 타고, 역사 놀이패 아리아리를 본다. (뽀로로와 아리아리의 수준은 하늘과 땅이다.) 첫째의 발달상황에 맞추느라 둘째에겐 다소 버거울 수밖에 없는 환경을 만들어놓고, 왜 넌 짜증을 내냐며 화를 내는 건 부당한 거였다.
둘째의 고 작은 어깨가 짜증과 서러움이 아직 안 가신 듯 위아래를 씩씩거리며 움직인다. 나는 한층 부드러워진 마음으로 둘째에게 다가갔다.
“엄마가 웃긴 이야기 하나 해줄까? 엄마도 어릴 때 맨날 혼났다? 근데 생각해보면 그 나잇대에 할 수 없는 거였는데, 못한다고 혼냈어. 그래서 생각해봤는데. 우리 둘째도 지금 그럴 거 같아. 스케이트 배우기 힘들지? 너무 힘들면 그만둘까?”
“아니.”
“그래. 그러면 스케이트는 계속 같이 다니자. 그 대신 우리 하나만 약속하자. 마음이 슬플 수 있어. 근데 그 슬픈 마음을 풍선처럼 더더 크게 키우지는 말자. 딱 그 슬픈 마음 그 정도만큼만 슬퍼하자.”
“...”
“엄마도 할머니한테 혼나고 삐져서 누우면 생각에 생각이 막 커져서 나중에는 모든 게 다 미워지는 거야. 그러면 나중에 엄마만 힘들더라고.”
“....”
“둘째라 힘들지? 그래도 형아 덕분에 재미있는 거 빨리 배울 수 있기는 하잖아. 뭐든지 나쁜 게 있으면 좋은 것도 있는 거야. 우리 좋은 거 더 크게 만들자.”
나는 둘째의 등을 부드럽게 어루만져줬다. 아직 6살인 아이에겐 어려울 수 있는 말들. 다 알아들었길 바라지만 아니라도 괜찮다. 사랑한다는 그 감정만이라도 느낄 수 있으면 좋겠다.
다행히 진정이 됐는지 아이는 스르르 일어나 배고프다 말한다. "고뤠?" 하며 다소 오버스럽게 둘째의 손을 잡아 거실로 나왔다. 그릇에 한가득 고기를 담뿍 올려다 주니 후다닥 뚝딱 먹고는 콧노래를 불렀다.
그 모습을 찬찬히 지켜보던 남편은 도저히 이해가 안 간다는 듯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하여간 첫째들이란. (남편도 첫째) 첫째들은 자기중심으로 살아서 종종거리며 따라가는 뱁새 둘째의 입장을 모른다. (이 글을 읽으시는 세상의 모든 첫째들에게 죄송합니다. 우리 집 한정입니다)
나는 왜 둘째로 태어나서 이리 서러움을 당해야 하나 가슴 아파하던 시절들이 있었는데, 아무래도 우리 둘째를 위로해주라는 하늘의 뜻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둘째야, 우선 지금까지 스케이트 함께 배워줘서 고마워. 무리 없이 탈 수 있도록 최대한 엄마도 도울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