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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itergrapher Mar 28. 2019

30대 후반의 흔한 소개팅

비혼이 아닌 결혼을 택할 거라면


 얼마 전,

 SBS에서 기획한 다큐멘터리 한 편을 보았다. 제목은 ‘결혼은 사양할게요.’ 결혼만이 유일하게 인정받는 ‘가족 공동체’라는 것을 거부한 이 시대의 젊은이들의 목소리를 따라가는 담백한 프로그램이었다. 등장하는 사람들은 ‘OO의 남편’, ‘OO의 아내’가 아닌 자기 자신이기를 열망하고, 마음 가는 대로 사랑하며, 결혼에서 오는 의무로부터 자유롭고, 스스로의 잠재력과 마음의 소리에 귀 기울이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중 당당한 비혼 선언으로 나의 이목을 끈 세 사람이 있었다. 하나 같이 각자 자신의 분야에서 왕성하게 활동하며, 결혼 적령기를 지난 나이에도 결혼이라는 제도 안에 자신을 옭아매지 않은 채 당당히 살아가고 있었다. 처음에 그냥 그들이 '혼자 사는 것이 편해서’ 비혼을 택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인터뷰 말미에 그들 셋 모두 연애를 - 그것도 한 사람의 상대와 꽤 오랜 기간 - 하고 있다는 사실이 넌지시 밝혀졌다. 그들이 거부한 것은 ‘결혼’이라는 제도이지 피와 살이 가진 인간이라면 누구나 갈구하는 ‘이성과의 사랑’, 즉 연애까지 사양하는 것은 아니었던 것이다.


 

'결혼은 사양할게요'에 등장한 세 사람. 당당한 비혼주의자지만 연애도 하고 있다.



 이 프로그램을 시청하는 것이 조금 석연치 않게 느껴졌던 것은 바로 그 지점이었다. “저 사람들은 연애를 하잖아요!!” 사회가 아닌 개개인의 관점에서 본다면 결코 비혼이 문제가 아니다. 지금 내 또래의 싱글들은 결혼이 하고 싶어도 새로운 연애조차 시작하지 못해 아우성인 걸.



 연애 포기에 있어 20대와 30대는 다르다.


 20대의 연애 포기 세태 기사를 보면 마음이 아프다. (물론 이것 역시 정말 트렌드라고 불릴 만큼 일반화된 현상은 아닐 것이라고 본다. 다만 이전 세대에 비해 이러한 경우가 더 많아졌을 뿐, 여전히 소수일 것이라 생각한다.) 20대의 연애는 아름다운 의무이자 권리다. 생물학적으로도 연애를 촉진하는 화학물질이 가장 왕성하게 분비될 때일뿐더러, 어떠한 이성이 자신과 잘 맞는지 탐색해야 하는 시기이기 때문이다. 그러한 연령대의 청년들이 불안한 미래와 자신의 처지에 대한 비관으로 연애를 포기해야 한다는 것은 정말 슬픈 일이다.


 반면, 30대, 특히 30대 후반의 연애 포기는 20대와 마찬가지로 비자발적인 요소를 내포하고 있다는 점에서 동일하다. 하지만 ‘모든 것을 다 갖추어 놓고도’ 적절한 상대가 없어서 할 수 없는 연애 포기에 가깝다.





 나이에 시옷 받침이 들어가면 중반이고, 비읍이 들어가면 후반이라 했던가. 나는 올해 서른일곱이 되어 30대 후반에 진입했다. 그리고, 재작년 무렵부터 봄, 가을 결혼식에 가는 일이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서른둘, 셋일 때는 한 달에 참석해야 하는 결혼식만 두세 건이 될 정도로 많았지만, 30대 중반을 넘어서면서 거의 사라졌다. 이번 봄에도 참석할 결혼식은 고등학교 동창 결혼 한 건뿐이다.(친분 관계가 깊지 않은 직장 동료나 후배들의 결혼식에는 축의만 한다.)


 하지만 여전히 주변에는 미혼인 또래들이 많다. 그리고 절실함의 정도는 제각기 다 다르지만 그들 대부분은 결혼을 꿈꾼다. (다큐멘터리에서 조명한 비혼주의가 아직까지 비주류이기 때문에 주목받는다고 생각하는 이유다.) 이들이 주변에 좋은 사람이 있는데 소개해줄 사람 없냐고 물으면 카카오톡 친구 목록을 먼저 열어보는데, 주욱 살펴보면 싱글들이 적지 않다. 그러나 소개의 목적이 궁극적으로 연애 이상의 것이라는 것을 잘 알기에, “소개해줄 만한 사람이 있어.”라고 덥석 대답하기 전에 먼저 그 둘이 잘 어울릴만한 이들인지, 아니, 최소한 서로 상대를 만나보겠다고나 할는지 생각해 보게 된다.





 20대나 30대 초반까지는 그냥 아무나 소개해주어도 큰 부담이 없었다. 굳이 결혼까지 염두에 둘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나 역시 들어오는 대로 가리지 않고 소개팅을 하는 편이었다. 연애로 발전하지 않아도 사람을 알아가는 재미도 있었고, 몇 번 하다 보면 마음에 드는 상대도 나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몇 살을 더 먹고 ‘무난한 이성들이 거의 다 품절이 된 상황’에서 마음에 드는 짝이란 쉬이 나타나지 않는다. 소개팅을 할 수 있는 사람의 모수 자체도 줄었지만, ‘나와 대체로 잘 맞을 수 있는’ 사람은 손에 꼽을 만큼 거의 씨가 마른 탓이다.


 이러한 비대칭은 남녀 모두에게 고르게 나타난다. 30대 후반의 여자들은 자신 또래의 자신보다 비슷하거나 나은 조건의 남자들을 찾고 싶어하지만, 그 또래의 남자들은 어린 여자를 만나고 싶어한다. 언젠가 술자리에서 아직 미혼인 친구에게 물었다.


 “야, 너 결혼 생각 있다며, 근데 언제 할 건데. 만나는 사람은 있어?”

 “아니 없어. 그런데 한 마흔 전에는 하겠지?”

 “그 나이에 누구랑?”

 “음… 한 스물여덟 살짜리랑?”


 농담으로 하는 말인 줄 알았는데, 녀석은 진심이었다. 주변에서도 다 그렇게 한다며.(야이 미친놈아, 도대체 누가!) 심지어 그는 미남형도 아니었고, 나이에 비해 특별히 어려 보이지도 않은 그냥 나와 같은 30대 직장인이다. 연예인도 아니고 열 살 넘게 차이 나는 여자랑 결혼하리라는 판타지를 아직도 가지고 있다니!


 그나마 녀석은 친한 친구라 솔직히 말했지만, 다른 이들도 크게 다르지 않다. 외모도, 직장도, 성격도 괜찮은 여자분의 소개팅 의뢰가 들어와 아직 미혼인 또래 직장 선후배들에게 권하면, 이렇게 돌려 거절하곤 했다.


 “몇 살인데?”

 “85예요, 서른다섯 살. 정말 괜찮은 분이에요.”

 “괜찮긴 한데… 나랑 스타일은 좀 안 맞을 것 같네.”


 이렇게 상호 간 희망사항의 비대칭으로 30대 후반이 되면 매칭이 성사되는 것은 무척 어렵다. 20대처럼 오며 가며 만날 수 있는 나이는 일찌감치 지나가버린 지 오래고, 설령 괜찮은 사람이 나타난다 해도 이제는 그 사람이 싱글인지 먼저 확인해야 하며, 나와 잘 맞을 수 있는 사람인지 파악하기 이전에 많은 여러 조건들을 살펴야 한다. 게다가 아닐 것 같은 사람은 아예 처음부터 찔러보지도 않는다. 최근 1년 간 몇 건의 소개팅을 주선하였지만, 대부분 첫 만남에서 끝났고, 단 한번 두 번째 만남까지 가긴 했지만, 그것도 거기까지였다.


 연애와 결혼이 모두 자유의지에 의해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은 물론 두말할 나위가 없다. 정말 자신이 원하지 않아서 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존중받아야 마땅하다. 하지만 반대로 본인이 연애든 결혼이든 원한다면, 그것을 만들어 나가는 주체 또한 자신이어야 한다.






 젊은 날엔 젊음을 모르고


 이전 글에 적었던 것처럼, 나 역시 그 시기에는 청춘이었음을 자각하지 못했던 듯하다. 서른한 살 정도까지만 해도 아직도 많은 기회가 있을 줄 알았고, 싱글일 때에도 연애에 대해 특별히 절박함을 느끼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결혼이 필요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항상 있었고, 연애를 할 당시 나이와 관계없이 ‘이 사람과 결혼한다면 어떠할까’라는 생각을 언제나 했었다.


 주변에 물어보면, 결혼을 결심하게 된 것에는 특별한 이유가 있지 않았다. ‘이 사람과 같이 살면 재미있을 것 같아서’, ‘함께 있으면 좋아서’, ‘말이 잘 통하고 좋아하는 것이 같아서’라고 답했다. 연애를 시작할 때의 이유와 크게 다르지 않다. 다만 연애의 연장선 상에서 결혼을 계속 이어갈 것인지, 아니면 그냥 연애만 계속할 것인지의 갈림길에서 (아직까지) 내 주변 대다수의 사람들은 결혼을 택한 것이다. 그리고 대부분 지금까지 행복하게 살고 있다.




 안타깝게도 위에 열거한 결혼의 사유들은 나이가 들수록 퇴색되어 간다. 30대 중반을 넘어 결혼을 전제로 시작하는 연애는 한 사람과 오랜 기간 연애하여 같은 나이에 도달한 사람과는 다르다. 이 사람과 결혼을 하기 위해 내가 그동안 쌓아 왔던 커리어와 저축 잔고, 부동산 등을 재고 계산하며 상대를 알게 모르게 위아래로 훑어보게 된다. 한 푼 없던 시절부터 연애하여 결혼을 준비하는 커플들도 결혼 시점에서는 그런 생각을 한 번쯤 하게 되는데 30대 중후반에 새로 시작하는 연애와 결혼은 두말 해 무엇하리.


 여기에 역사상 유래 없는 만혼 트렌드까지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결혼은 하고 싶지만’, ‘연애조차 어려운’ 다수의 30대 후반 싱글들이 양산되고 있다.


 때문에, 젊은 나이부터 자신을 알아가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내가 결혼이 필요한 사람인지 스스로 자문해보고, 연애를 하고 있다면, 상대방과 미래에 대해 이야기해보는 것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시기가 맞으면 결혼을 할 것인지, 아니면 서로의 꿈과 이상을 존중하며 같이 성장할 수 있는 비혼 커플이 될 것인지, 또 아니면 동거를 하되 둘만의 관계에 더욱 집중하여 살아갈 것인지 생각하고 충분히 이야기해 볼 필요가 있다.




 서른을 넘기고 몇 해를 더 살았지만, 아직도 늦지 않았다고 생각하며, 결혼관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는 이들이 적지 않다. 언젠가는 결혼은 해야겠다고 막연히 생각하지만 “괜찮은 어린 여자를 만나면 하지 뭐.”, “전에 사귀던 오빠 정도만 되면 결혼해야지.”하고 대충 이 시기를 보낸다. 그러다보면, 어느덧 주변 친구들은 대부분 품절되어버리고, 만남 자리조차 주선이 쉽지 않은 나이에 진입하기 쉽다. 더 큰 문제는 결혼으로 인해 싱글로서 이루어온 많은 부분을 포기해야 한다는 '두려움'과, ‘내가 이 정도 사람 만나려고 이 나이까지 기다렸나!’라는 본전 심리가 당신의 결혼 가능성을 더 낮춘다는 것이다. 그리고 당신을 바라보는 상대도 똑같은 생각을 한다. 비혼주의자가 아닌 사람에게 30대 후반은 애써 부정하려 해도 그런 나이인 것이다.


 몇 년 사회생활을 하며 자신의 벌이로 해외여행도 가고, 캠핑도 가고, 차도 사지만 ‘아직은 어리다’고 자부하며 싱글의 자유를 즐기는 30대 초반 동생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다. 30대는 아마도 당신의 인생에서 가장 바쁜 시기일 것이고, 이미 지나온 10대와 20대의 시간보다 훨씬 빠르게 지나갈 것이다. 결혼을 언젠가 해야겠다고 막연히라도 생각하고 있다면, 앞으로 남은 진지한 연애는 당신 인생에서 많아야 두세 번일지 모른다. 결혼을 할 거라면, 나와 맞는 좋은 사람을 만나기 위한 노력에 공을 들이고, 이 사람이다 싶다면 결혼에 대한 진지한 논의를 피하지 말아라. 물론 아직도 늦은 나이는 아니지만, 이 시기가 지나면 ‘만날 남자(여자)가 없다’고 푸념하는 선배 언니, 형들의 이야기가 머지않아 내 얘기가 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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