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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도 Nov 17. 2019

중간관리자로 살아남기

29살에 팀원 3명을 이끄는 중간관리자가 되었다. 일이 되게끔 해야하고, 인성적으로도 괜찮은 사람으로 보이고 싶었기에 혼란스러운 시기였다. 그 전까지는 혼자 알아서 일하면 되었지만 이제는 내 방식만을 고수할 수도 없었다. 팀원들 마다 특성도, 업무 스타일도, 잘하는 것도 다 다르기 때문이다. 내가 똑같은 말을 하더라도, 개인마다 받아들이는 정도와 농도, 방향도 달라서 나는 최대한 구체적이고 객관적으로 말을 해야했다. 


처음엔 삽질을 좀 했다. 일은 나도 초보였기에 우선 팀원들에게 "좋은 사람"임을 어필하자고 생각했다. '나 되게 나이스한 사람이고, 너네를 되게 잘 이해하고, 너네에게 좋은 방법으로 팀을 운영할거야.' 


입사하자마자 팀을 이끌게 되어서 일에서 내가 뛰어난 것도 입증이 덜 되었고 다른 회사에 다니면서도 본받을만한 리더를 만나본 적도 없기 때문에 롤모델의 부재이 부재했다. 회사에선 좋은 사람이고 말고가 중요한 게 아니다. 일을 잘하느냐가 기본이다. 그러니 첫번째로 내가 팀원들에게 다가간 방식은 별 효과가 없었다. 


친하지도 않은데 '나 이러이런 사람이야~'라고 말하는 게 다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더욱이 팀원들은 인턴임에도 일에 있어 진지했고 맡은 일에 대한 책임을 갖고 있었다. 이 경력이 정규직 입사 시 포트폴리오가 될 수 있기에 우리팀은 성과를 내는 게 모두 간절한 사람들이 모인 것이었다. 회사에서 사람과 사람을 이끈다는 것의 의미는 결국,'일을 잘하느냐'에 달려있다는 걸 깨닫는데는 얼마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사람이 사람을 이끌려면 실력이 있어야 한다는 말은 어떻게 보면 되게 심플한데 가장 어렵다. 더욱이 누군가에게 업무를 부여하고, 맡은 업무가 잘 진행되었는지 체크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실력이 있어야 한다. 그 당시의 내가 실력이 특출났을 리 만무했다. 사수가 마땅치 않으니 내 스스로 일을 잘 하기 위해서는 머릿속에 쌓아둘 인풋이 필요했다. 


중간관리자로서 실력을 키우기 위해 한 일은 내 직무에 도움이 되는 책을 다독하는 것이었다. 이 분야에 대해서 무엇을 모르는지도 무색하게 전부 다 제대로 알지 못했기 때문에 모르는 것을 질문하기도 어려웠다. 도서관이나 교보문고에 가서 막무가내로 책을 읽었다. 영상만들기, SNS마케팅, 홍보마케팅, 기획서 쓰는법, 리더십, 경영전략, 팀장되기 등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만한 책은 닥치는대로 읽었다. 그렇게 인풋을 만들었다. 내 일에 대해 기초 근육을 키운다고 해야할까. 책을 통해 기본기를 습득하는 것이 실무에 도움이 된다는 걸 경험으로 알게 되자 이직을 할 때마다 책을 읽는 것이 매번 내 업무 습득의 프로세스가 되었다. 책을 읽고, 적용할만한 레슨런을 메모하거나 에버노트에 적어두면 좋다.


다음으로는 팀원들에게 많이 물어보았다. 처음에는 혼자서 끙끙 앓았다. 팀원들에게 내가 잘한다는 것을 보여줘야하고, 내게 실력이 있으니 믿을만한 중간관리자라는 걸 알려줘야 했기 때문이다. 그러다 그냥 솔직해지기로 결심했다. 모르는 건 그냥 모른다고 하고, 팀원들에게 의견을 구했다. 결국 내가 하는 방식이 괜찮은지 아닌지 피드백을 해줄 수 있는 건 하루 종일 나를 지켜보는 팀원들이기 때문이다. 내가 아닌 우리가 우리팀의 규칙을 만들어가는 과정이었다.


나는 이렇게 하면, 이 컷이 더 강조되면서 흐름상 이어져서 수정하면 좋을 것 같거든? 네 생각은 어때? 이 컷을 여기다 붙인 이유가 어떤 거야?  


"이게 맞으니 이렇게 해!"가 아니라 그렇게 한 이유를 물어보기 시작했다. 내가 몰랐던 기술적인 이유 가령 컷이 튄다거나 짧아서 어쩔 수 없이 편집한 상황도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같이 머리를 맞대고 고민하면서 영상을 만들다보니 SNS에서도 점차 반응을 얻게 되었다.  


주의할 점은 이렇게 팀원들에게 물어보고 시도해보는 건 한 달 이상 넘어가면 안된다. 계속해서 팀원들에게 물어보고, 고민하다보면 일단 시간 투입도 많아지고 중간관리자로서 결정을 내리거나 조언을 해줄 수 없다. 팀원들 매번 자신들의 의견에 의존하는 관리자의 실력을 신뢰할리 없다. 우유부단한 중간관리자로서, 팀원들 말에 휘둘리고, 위에 팀장 말에 휘둘리다보면 그게 곧 무능력이 된다고 생각했다.


팀을 처음 꾸려서 이끌게 되었다면 한달 동안은 앞으로 1년, 2년 팀을 어떻게 잘 끌고 갈것인지 전략을 세우고 이것저것 미친듯이 시도해보는 경험이 중요한 것 같다. 한달의 쪽팔림을 견디면 장차 좋은 리더가 될 수 있다. 팀원들이 나를 무시할까봐 허세부리고, 아는 척하고, 대충 가오만 잡으면 팀도, 나도 잘 될 수 없다. 맛있는 밥을 사주는 건 전혀 일에서 중요한 게 아니다. 그렇게 우리팀원들은 나를 필두로 1년 후 모두 다른 회사 정규직으로 성공적으로 이직했다는 후문이다. 퇴사 후에도 업무적으로나 사적으로 든든한 지원군을 얻을 수 있어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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