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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도 Nov 17. 2019

TMI는 거절

회사에는 왜 자기 말만 하는 사람이 많을까 곰곰이 생각해봤다. 상대방의 반응은 안중에도 없고 무조건 자기가 하고 싶은 말만 쉬지 않고 쏟아내는 사람들의 입을 틀어 막고 싶을 지경이다. 이해를 하려면 그 사람의 입장이 되어봐야 한다. 


부장 A는 자기 부인 이름부터 자식들의 나이, 유치원 등하원 시간까지 전부 다 알려주는 사람이었다. 자신의 대학시절 동아리 이름, 그곳에서 유명인사와의 에피소드까지 20년 전 일을 마치 어제 일인냥 소개했다. 사람이 한 사람씩 늘어날 때마다 그 얘기를 전파하는 바람에 늘 그 자리에 껴 있던 나는 다섯 번이나 그 이야기를 들어야 했다. 나중에는 부장 A 대신 내가 설명할 수 있을 정도였다. 뭐 대단한 얘기도 아니고 상대방이 할 수 있는 반응도 "어머 진짜요?"가 전부인 그저 그런 영광이었다. 


내가 최대한 너그럽게 이해하기로는 누구나 자신의 일거수 일투족을 말하고 싶은 욕구가 있다는 점이다. 눈치보지 않고 자랑도 실컷 하고 싶을 때도 있다. 시시콜콜 가감없이 모든 걸 공유하고 싶기도 하다. 그러지 못하는 이유는 그런 대화법은 가족에게 조차 환영받지 못한다는 걸 본능적으로 알기 때문이다. 깊은 신뢰가 쌓여서 어떤 짓을 해도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라면 불필요한 과정이나 말들을 편히 늘어놓지 않는다. 상대방이 듣기 편하도록 지루한 부분은 스스로 삭제하고 편집해서 이야기하는 것에 익숙해질 법 하다. 


그럼 여기서 또 의문이 생긴다. 신뢰하지도 않고 친하지도 않은데 대체 왜 자기 딸의 생일파티에 온 딸 친구와 딸 친구의 부모 직업까지 나한테 알려주는 거냔 말이다. 나는 내 자신의 모든 것을 소중히 여기는 사람이기 때문에 그럴 때마다 내 귀를 틀어막고 보호하고 싶었고 내 뇌의 기억저장장치 따위가 오류로라도 작동하는 것을 필사적으로 막고 싶었다. 하지만 그럴 수 없었다. 


부장 A는 쓰잘데기 없는 말을 늘어놓을 수 있는 권력과 서열을 가졌기 때문에 그런 만행을 매일같이 저지를 수 있었다. 업무적으로 자신의 권력을 과시하기에는 무능력하기 때문에, 점심시간이라던가 회식시간을 이용해 부하직원들의 귀와 시간을 농락하며 TMI를 시전하는 거라고 이해하는 게 최선이었다. 그 중심에 우리 엄마도 있다. 


"딸! 밥 먹었어? 엄마는 오늘 도시락으로 샌드위치를 싸왔어. 양상추 넣고, 토마토랑 오이 얇게 썰어서 넣었어. 계란 후라이는 2개나 했어. 이렇게 한 번 먹어봐. 단백질도 보충되면서 건강해지고 살도 빠진다니까. 또 커피도 싸와서 같이 먹으니까 목도 안마르고 좋다 얘. 그런데 옆집 아줌마가 밥을 싸왔는데 가지 볶음에다가..." 


엄마는 나에게 월급을 주지 않는다. 우리의 권력은 동등하다. 나는 부장 A와 회의중이라고 대충 둘러대고 서둘러 전화를 끊곤 한다. 


이 세상 모든 정보제공자들에게, 혹시 너무 많은 정보를 타인에게 말을 하는 사람이 아닌지 되돌아보자. 만약 그런 사람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면 정보를 제공 하기 전에, 그 정보가 세계의 평화를 위해 필수적인 정보인지를 고심해보자. 그 말을 하지 않아도 세상이 잘 굴러갈 것이 분명하다면 그저 사람 좋게 웃으며 "요즘 어때?"라고 질문을 하는 걸로 당신과 당신 주변에는 전에 없던 평화가 시작될 거다. 


P.S. 엄마는 이런 내가 너무 엄격하다며 사람 사는 얘기가 다 샌드위치 속 재료를 설명하는 거라고 하는데 혹시 이 마지막 문장에만 동의하는 사람들이 있을까봐 두렵긴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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