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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도 Nov 17. 2019

왜 어딜 가든 내 것만 늦게 나올까

'서울 아닌 뉴욕에 살고 있다' 더는 이 말을 하지 않아도 될 정도로 나도, 내 주변도 새로운 삶에 친숙해졌다. 뉴욕에 있다는 것이 실감이 안난다는 말도 하지 않는다. 내가 인지하지 않는 동안에도 내 삶은 이곳에 쌓이고 있다. 낯선 곳에서 익숙한 나를 마주한다. 


큰 변화라 하면 뉴욕에서 전혀 다른 내가 될 거라는 착각을 이제는 하지 않는다는 것. 


초가집에 산다고 초라한 내가 되는 게 아니듯, 뉴욕에 산다고 영화 속 뉴요커가 되는 게 아니었다. 그러고 보면 나는 어디에 가든 환영받는 존재는 아니었다. 하물며 음식점에서도 나보다 늦게 온 사람의 음식이 먼저 나오는 경우도 허다했다. 


'왜 어딜가든 내것만 늦게 나와?' 이 물음은 내 인생에도 그대로 적용되곤 했다. 슬프게도 자주하는 질문만큼 나는 찌질했고 피해의식에 사로잡혀 어디서나 신경이 곤두서 있었다. 


최악인 건 뉴욕까지 와서도 찌질한 것도 여전히 그대로고, 짜증도 내고, 게으름 피운다는 거다. 뭐 하나 나아지질 않았다. 버릴 때도 됐거늘,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지금까지도 삶이 나아질 거라는 믿음을 지니고 있다. 그런 것이 삶의 원동력이려나. 이곳의 언어에도 적응해가는 걸 보면 별로였던 마음도 다른 모양을 갖추게 되리라. 


그 믿음은 작은 일에서 비롯되었다. 뉴욕의 빨래방에서 충전한 빨래카드의 돈이 세 번이나 빠져나갔을 때였다. 한 번 빨래를 돌리는데 2달러인데, 내가 너무 많은 빨래를 넣은 탓인지 세탁기가 돌아가지 않아 문을 다시 열고 닫았다. 그 행위만으로 4달러가 더 빠져나간 것이었다. 그럴 때마다 침착하긴 힘들지만, 뉴욕은 교환과 환불에 대한 처리가 편리한 편이라는 걸 이젠 안다. 카드 회사에 전화를 걸어서 긴장하지 않고 영어로 따졌다. 10분 뒤 카드에 4달러가 다시 들어온 걸 확인했다. 불만이나 어려움이 있어도 영어가 통하지 않거나 따질 수가 없어 그 피해를 고스란히 당하고 있던 초반에 비하면 많은 발전이라고 새삼 깨닫는다. 


시내에서 뉴욕을 즐겨야 한다고 하루가 멀다하고 뉴욕 구경을 하던 것도 멈췄다. 이곳을 구경하고 관광할만큼 생소하지 않다. 이제는 뉴욕이고 뭐고 그저 집에 콕 박혀있는 게 좋은 서울에서와 같은 집순이로 돌아왔다. '뉴욕에서 집에 있다니, 세월이 아깝지 않아?' 이 말도 통하지 않는다. '얼른 집에 가서 쉬고 싶다'라고 집을 떠올리면 낯선 나라에 있는 이곳이 먼저 생각난다. 우리 동네를 걸을 때 지도가 필요하지 않듯 뉴욕 맨해튼에서 지도없이도 길을 잃지 않는다. 


그 대신 30년 동안 만나던 사람들과 전혀 다른 사람들을 만난다. 가본 적도, 들어본 적도 없는 나라에서 온 사람과 서로의 가족 이야기를 하고 고민을 털어놓고 생각지도 못했던 조언을 듣기도 한다. 태생적으로 일본이라는 나라를 싫어해서 무라카미 하루키 빼고는 딱히 그 나라 사람에 관심이 없던 내가 갤럭시 스마트폰을 들고다니는 일본인 친구들과 한국에 대한 이런 저런 대화를 한다. 중국인 친구와는 홍콩 시위를 걱정하고 홍콩 독립에 대해 반대의 견해를 나누기도 한다. 칠레인 친구를 통해서는 칠레의 부패한 정치 상황과 시위에 대해 새롭게 알게 된다. 한국에도 별 관심이 없던 나는 외국인 친구들이 좋아한다는 한국 영화와 드라마, 배우, 가수를 들을 때마다 없던 애국심마저 솟아나는 기분이다. 


경험한 적 없는 시간들 속에서 내가 마주하는 건 달라진 내가 아닌, 몰랐던 나였다. 나도 모르는 내 모습을 발견할 때마다 실망하기도 하지만 놀랍기도 하다. 30년 넘게 살았으면 나를 너무 잘 알아서, 나란 인간에 질려 도망갈 법도한데, 다시 여고생으로 돌아간 기분이다. 나를 더 쌓아올리며 낯선 곳에 산다는 건 어쩐지 에너지가 생기는 것 같기도 하다. 


나는 내가 누구인지 더 알고 싶고, 내가 어떤 걸 좋아하고, 어떤 반응을 자주 하는지, 어떤 사람을 좋아하고, 어떻게 살기를 원하는지 궁금할 뿐이다. 회사에 다닌다는 이유로 미뤄두었던 나를 마주하는 시간을 혹독하게 갖는 중이다. 


뉴욕이라는 장소는 난데없이 내가 의지할 것은 나밖에 없다는 걸 알려주었다. 나는 그대로이지만, 더 나은 나를 위해 인생을 더 열심히 살고 싶어졌다. 그걸로도 괜찮은 것 같다. 서울에 돌아가서도 마음에 새겨둔 것은 쉽게 사라지지 않을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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