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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도 Nov 17. 2019

솔직한 뉴욕사람들

나도 서울에서는 가장 솔직한 사람으로 분류됐지만 여기선 평범한 사람이 된다. 뉴욕에서 말하는 솔직함은 정의가 또 다른 듯 하다. 


대략적으로 우리 사회가 합의하는 솔직하다는 정의보다 5단계 쯤 앞서 나간 것을 이곳에선 솔직하다고 쳐주었다. 영어로 의사소통을 하다보니 단순한 말만 하게 된다고 푸념했던 때가 있었지만 좀 더 다른 성격의 수업에 가보니 만난지 10분 만에 어설픈 영어로 자신의 어린시절에 벌어진 일들에 대해 줄줄이 말하는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다. 그 시작은 나의 작은 걱정이었다.


"불안에 대해서 말하라구요? 그냥 뉴욕에 있다보니 부모님이 아프진 않을까, 사랑한다는 말도 거의 못했는데 뭐 그런 것 때문에 불안하고 그래요" 


짧은 영어로 보편적인 이야기를 했는데 그 다음에 이어진 사람 말에 나는 더이상 영어연습을 하기 글렀다고 판단했다.


"아 그 감정 뭔지 알아요. I know. 저희 아빠가 25년 동안 파킨슨 병을 앓고 항상 누워있었어요. 제가 10살 때부터 줄곧요. 그러다 돌아가셨는데, 너무 보고 싶고 가끔 생각나서 마음이 아파요." 


더 자세히 상황을 설명했는데 일단 그 자체로 내 걱정이 사사롭게 느껴져서 할 말을 잃었다. 모임을 주최한 데니도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긴 마찬가지 였다. 


"10년 전에 엄마가 알츠하이머에 걸렸어요. 지금 일흔이 넘었어요. 월스트릿에서 일하다가 퇴사하고 엄마를 데리고 같이 교회에 갔어요. 하나님한테 기도하는 것밖에 할 수가 없었죠. 그때 기적이라고 해야하나, 평생 싫어하던 아빠였는데 아빠가 엄마를 돌보기 시작했어요. 아빠는 언제나 우리에게 인색했거든요. 엄마는 이제 어떤 것도 기억하지 못하지만 아빠가 변한 건 다행인거죠" 


그래, 뭐 나눌 수 있는 이야기이긴 하다. 하지만 흔히 처음 만난, 그것도 이름도 모르는 사람에서 솔직히 털어놓진 않는다. 마음을 조금 열 수 있다거나 함께 술을 마실 정도는 돼야지 믿을 만하다고 생각해, 대화를 나누는 우리와는 좀 달랐다. 


수업이 끝나고 데니와 길을 걸어가다가도 무방비 상태에서도 솔직 공격을 당했다. 자기가 대학생일 때 자살을 시도할 만큼 절망에 빠져있었다는 것이다. 또 남자친구와 헤어져서 괴로워할 때도 있었다며, 그 때 한 친구를 만난 덕에 잘 버티며 살았다고 했다. 그 친구가 근처에 사니까 나에게도 한 번 만나보지 않겠냐고 물었다. 


아니 이게 그저 걸어가면서 할 얘기냐고. 더욱이 나는 영어가 능숙하지 않은 터라 데니가 말하는 몇 개의 단어에다가 내 추측을 더해 그녀의 말을 이해하는 중이라 그 이야기들이 더욱 혼란스럽게 느껴졌다. 대체 이 나라 사람들은 왜 이러지? 이런 게 쿨한건가. 뭔지 모르겠다. 


그러나 이것은 오히려 나은 편이었으니, 미국 작가의 책을 읽다보면 흠칫 놀라서 몇 번을 다시 보게 되는 경우가 많았다. 


"남편이 잠시 머뭇거리더니 생일에 진짜 받고 싶은 게 따로 있다고 말했다. 그가 원하는 선물은 물건이 아닌 서비스였다. 나와 다른 여자를 데리고 하는 threesome." - 책 <맙소사, 마흔> 中


이런 것은 아주 친한 친구에게라도 간신히 털어 놓을만한 비밀이 아니던가? 그들의 에세이에는 이런 은밀한 이야기들이 담겨있다. 죽으려고 했던 이야기부터 불륜남과 나눈 페이스북메시지, 어떤 섹스를 좋아하는지 그가 가진 판타지를 넘어 실제로 그걸 행한 이야기까지. 한국의 문화에서는 눈살을 찌푸릴 사람이 많을 게 눈에 선했다. 솔직함의 범위가 그야말로 상상초월인 것이다. 


내가 뉴욕에 오기 전부터 쓰고 있던 책도 '이렇게 솔직해도 되나?' 싶은 순간들을 담았거늘 그들에 비하면 나는 귀여운 수준이었다. 


솔직하게 나에 대해 쓰다보면 자연스럽게 나의 사건에 누군가가 등장한다. 파멜라 드러커맨의 경우에는 스리섬을 요청한 남편이겠고, 나의 경우에는 나의 엄마나 아빠, 그리고 준군이 주된 등장인물이었다. 나는 내 이야기와 내 생각을 써내려간다. 당사자의 생각이 아닌 어떤 사건에 대한 나의 의견이기 때문에 굳이 허락을 구할 필요는 없다, 고 생각했다. 하지만 민감한 이야기, 특히나 스리섬에 대한 내용이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다행히 내 책엔 그런 내용은 없다) 


뉴욕에서 만난 친구들에게 그런 고민을 털어 놓았더니, 이 친구들이 진솔하게 조언을 해줬다.


"그렇게 쓸 거라고 엄마한테 이야기는 했어?"


"아니? 어차피 책으로 보면 알게 되지 않을까? 미리 말하는 게 어색하고 좀 못 말하겠더라고. 꼭 말해야 할까?"


"말해야 한다고 봐. 책으로 보면 얼마나 놀라겠어. 니가 작가니까, 작가답게 잘 설명하면 충분히 이해할 수 있을 거라고 믿어." 


나는 늘 외국인 친구들을 대할 때 영어 대화를 할 상대로 보았지, 진정으로 어떤 고민을 영어라는 언어로 나눌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그 조언을 듣고 나는 당장 가족에게 연락을 할 수 있었고, 미리 말하길 잘한 것 같다. 


솔직함도 솔직함이지만, 영어를 배운다는 공통분모로 나보다 10살, 20살 많은 사람들과 서슴없이 친구가 되기 때문에 자유로운 문화 속에서 터득한 그들의 지혜를 나눌 수 있었다. 솔직하고 직설적이지만 진실을 이야기 하기 때문에 믿을 수 있으며 타인에 대해서도 비판을 두려워하지 않아 그 말들이 내게 도움이 되기도 한다. 


나는 아마도 별로 그럴 생각은 없지만 만약에라도 아이를 키우게 된다면 꼭 외국에서 살게 하고 싶다고, 처음으로 생각했다. 사고방식이 열려있다는 것, 진심을 숨기려하지 않는다는 것, 그런 것들이 인생을 사는데 나에게도, 타인에게도 도움을 준다는 걸 배웠기 때문이다. 하여간 외국에 산다는 건 실로 재밌는 경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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