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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도 Nov 17. 2019

살인적인 맨해튼 월세

뉴욕에 사는 대가로 부담해야하는 것들이 있다. 위험부담도 그중 하나일테고 아는 사람 하나 없는 외로움을 견디는 것도 그럴 것이다. 하지만 그에 비할 것이 아닌 현실적인 어려움은 어디서나 그러하듯 돈이었다.


뉴욕에 살려면 돈이 엄청나게 많이 든다. 생활비가 서울에서보다 두 배는 더 나가야한다. 그래서 뉴욕에 사는 사람들은 돈이 많거나 돈을 잘 버는 사람일 가능성이 크다. 예외는 돈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기를 쓰고 뉴욕에 사는 사람들인데, 그런 나같은 이들은 그저 뉴욕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서 돈을 쓰지 않고 뉴욕의 풍경만을 사진에 남기는 정도로도 만족한다. 


기본적으로 월세로만 200만원이 넘게 매달 빠져나간다. 뉴욕에 오기 전부터 남편과 나, 강아지 세 식구가 머물 집을 구하는 것이 가장 큰일이었다. 혼자 뉴욕에 살아도 부모의 지원을 받는다거나 아끼고 아껴서 여럿이 집을 쉐어하는 식으로 생활비를 감당할 수 있다지만 우리같은 세 식구, 가족의 이사에는 엄연한 집이 필요하다. 넓지는 않더라도 강아지가 움직이기 충분하고, 고급스럽지는 않더라도 따뜻하고 맛있는 요리를 내놓을 수 있는 키친이 있어야 하고, 무엇보다 안전한 동네에 위치해야 한다는 조건이 붙었다. 


차도 없고 면허도 없으니 이동이라도 용이하게 맨해튼 시내에 살고 싶었지만 방 하나, 거실 하나가 월세 400만원이라는 소리에 진작에 포기했다. 우리는 맨해튼 북쪽 끝에 위치한 곳에 월세집을 구했다. 할렘보다도 위였다. 뉴욕에 대해 잘 몰랐을 땐 우스갯소리로 ‘할렘에 살아야 하는 거 아니야?’라고 했는데 실상 할렘을 훨씬 지나친 곳에 살게 된 것이다. 


미드나 영화에서 접해서 알고 있던 어퍼이스트사이드, 타임스퀘어 등 보다 뉴욕 맨해튼에는 훨씬 많은 수십 개의 동네가 있었다. 외국인들이 서울 강남, 인사동, 명동이 한국의 전부라고 생각하는 것처럼 나에게 뉴욕도 그러했다. 살다보니 서울만큼 뉴욕 맨해튼의 작은 동네들에도 익숙해질 날이 오긴 오더라.


우리가 구한 집은 남편의 연구실에서 3분 거리에 있는 원베드룸 짜리 스튜디오였다. 워싱턴 하이츠라는 동네인데 시내에 사는 뉴요커들도 100% 다 아는 동네는 아니더라. 그나마 다행인건 뉴욕의 집들은 한국의 좁은 원룸과는 다르게 50년도 넘은 오래된 집들이 대부분이라 그런지 방도 천장도 널찍하다. 엘리베이터가 있는 집은 좀 더 비싸기에 거의 6층을 계단으로 오르락 거려야한다. 이케아에서 산 가구들을 옮길 때는 땀이 비오듯 나고, 포기란 이럴 때 하는 것인가, 하는 생각마저 들 정도로 괴로웠다. 


원베드룸이긴 해도 거실도 따로 있기 때문에 한국의 투룸 정도로 볼 수 있다. 주방 또한 방만큼 큰 경우도 많다. 심지어 욕조도 있으니 집 자체는 만족스러웠다. 하긴 200만원짜리 집에 만족도 못하면 정말 암울하겠다. 


뉴욕은 거의 스튜디오형 집이 많다. 스튜디오와 아파트의 차이가 있는데, 일단 스튜디오는 우리나라로 따지면 빌라로 볼 수 있을 것 같다. 방 크기는 넓고 관리비는 적고 값은 싸고. 가격차이가 크기 때문에 우리 집이 스튜디오라고 해도 별 다른 선택지가 없었고 큰 불만도 없었다. 뉴욕에선 대부분이 나와 같은 집에 살고 있으니까 말이다. 


모두가 불편함을 감수하고 뉴욕에 산다는 것이 묘하게 위안이 될 때가 있다. 알지는 못하지만 뉴욕이라는 도시를 너무나 사랑하는 마음은 다들 똑같다는 걸 알기 때문일까. 뉴욕에 사는데 이 정도 쯤은 감수할 수 있다는 마음이기도 했다. 


그건 고사하고 현실로 돌아오자. 자, 문제는 한달에 2000달러를 월세로 내야한다는 것이다. 한국 돈으로 230만원이 넘는 돈이다. 월세로 230만원이라. 차라리 매달 200만원 짜리 가방을 한 개씩 사는 거라면 모를까, 월세로 쌩돈이 줄줄 세는 느낌에 미래에 대한 부담감이 엄습했다. 매달 200만원씩 적금을 들어도 1년에 2400만원, 2년이면 5천만원이 되는 돈인데 그 돈을 세상 최고의 맨해튼 갑부한테 납입을 해야한다니. 피같은 내 돈을 고스란히 돌려받는 한국의 전세 제도가 그리웠다. 미국은 이자율도 높다던데...


뉴욕을 두고 다들 "Crazy city"라고, 살인적인 월세가 문제라고 하면서도 맨해튼은 1년 365일 내내 전세계인들이 몰려드는 곳이기 때문에 괜찮은 집은 1분 사이에도 계약이 완료되는 경우도 허다하다. 그러니 집주인은 신나게 돈을 긁어모은다. 집주인도 직접 만나기 어렵다. 얼마나 돈이 많은지 주인이 아닌 부동산 브로커들이나 건물 관리인이 우편으로 연락을 하는 게 보편적이다. 개인이 주인인 경우보다 아예 부동산 기업이나 회사에서 건물을 소유하기도 한다.


우리집도 맨해튼 중심지 어느 건물의 회사에서 매달 월세 납입일에 우편을 보내준다. 친절하기도 하여라. 좋은 점이라면, 그 외 관리비라던가 수도세, 난방비는 내지 않아도 된다는 점이다. 전기세만 내면 되는데, 전기값이 싼 편이다. 에어컨을 3개월 간 거의 매일 틀어도 한 달에 5만원 정도. 월세 2000불이니까 그 안에서 다 해결하는 모양이다. 


참고로 뉴욕의 수도세는 공짜인데, 록펠러 재단에서 뉴욕시민들에게 무료로 수도를 공급하기 때문이란다. 뉴욕 부동산 재벌 클래쓰. 우리나라로 따지면 삼성에서 수원시민들에게 아리수 같은 물을 무료로 제공하는 꼴인데, 그럴 일이 일어날 거라고 상상할 수가 없다. 아마도 전국민이 '불공평하다, 왜 우리 도시는 안해주냐, 그 물이 검증된 거냐, 왜 나라의 물을 사기업이 관리하냐' 등등 이런 저런 말이 나올 테니, 기업은 좋은 일을 하고도 분명히 욕을 먹을 게 뻔하다. 


록펠러의 기적일까? 뉴욕은 물이 맛있기로 유명하다. 뉴욕의 베이글과 피자도우가 맛있는 이유가 물 때문이라는 이야기도 흔히 퍼져있다. 하지만 집에서 보리차를 끓여먹는 나는야 한국인.


어쨌거나 뉴요커들은 버는 돈의 30%는 월세라고 여긴단다. 뉴욕에 살기에 드는 고정비용을 감당하면서 살아간다. 300만원을 벌면 100만원은 월세인 걸 불만없이 받아들인다고 볼 수 있다. 다행인건 뉴욕의 최저시급이 15달러라서 한국돈으로 18000원이다. 풀타임 알바를 해도 300만원 이상 버는 것이다. 직장에 다닌다면 연봉 또한 상당히 높은 편이다. 평균 4만 달러 이상으로 연봉이 4500만원 이상이다. 그러니, 한국에서보다 많이 벌 수 있다지만 그만큼 생활비 또한 감당해야한다. 어쩌겠는가. 뉴욕 맨해튼에 살기 위한 희생인 것을. 그 돈을 내고서라도 뉴욕에 사는 이유는 넘쳐난다.


기본으로 깔고 가는 230만원의 월세 덕분에 외식도, 매일 가던 카페도, 부담없이 타던 지하철이나 버스도 전부 다 줄여야 하는 생활을 하고 있다. 돈을 쓰는 것에 중독이라도 되었는지, 돈을 못쓰는 맨해튼 생활이 가끔 우울하게 느껴질 때도 있다. 예쁜 것들, 멋진 것들로 가득찬 뉴욕은 이에 대해 철저하게 값을 매긴 자본주의 도시다. 없는 것이 서럽게 느껴질 정도로 복잡하고도 아름다운 이곳 맨해튼에서 나는 오늘도 1달러라도 아껴보려고 걷고 또 걷는다. 버는 대로 전부 쓰다가 다시 서울에 돌아가서 새로 시작해야겠지만, 10년 후에 이곳 생활을 돌이켜보면 꿈이었나 싶을 정도로 믿기지 않을 장면들이 남을테니 내가 사는 도시 이 뉴욕은 분명 그 이상의 가치가 있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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