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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도 Nov 17. 2019

영어공부는 무료, 노력은 유료

다이어트만큼 무의식중에 우리를 따라다는 게 영어였을 것이다. 비단 나만의 문제는 아닌게 80년대 중후반 ~ 90년대 초반에 태어난 지인들 중에 영어를 잘하는 사람이 손에 꼽는다. 하지만 모두들 취업 때문이든, 취업을 했든지 간에 계속해서 영어에 대한 압박을 받는다. 직장인이 되어 해외여행을 다닐 때면 영어의 필요성을 절감하기 때문이기도 하고, 나이가 들수록 회사에서 영어 잘하는 사람이 우대받는 걸 더 많이 보기 때문이기도 하다. 


뉴욕에 가면 시급하게 해야할 일 중 하나가 영어였다. 20대에 떠나야 할 어학연수를 30대에 온 걸로 볼 수도 있었다. 영어 공부에 수백, 수천만원을 쓸 수 없이 오직 무료로 배워야 한다는 건 차이가 있었지만 말이다. 백수로 뉴욕에 와서, 영어라도 유창하게 배워가면 남는 장사일 터였다. 


언제나 의지는 능력을 앞서가는 법. 영어를 매일 쓰고, 부딫치겠다는 다짐과 달리 영어를 못하니까 밖에 나가기가 꺼려졌다. 드라마를 보는 것도 귀찮아졌다. 영어 자막으로 좋아하는 드라마를 보는 건 차라리 안보는 게 나을 정도로 뇌가 계속 긴장상태가 되는 게 싫었다. 


준군과 나는 한국에서도 자주 챙겨보지 않던 한국 예능을 요일별로 스케줄을 외워서 찾아보기 시작했다. 그는 하루 종일 미국인, 유럽인과 일하면서 영어를 쓰는 상황에 놓이기에 집에서만이라도 한국어를 쓰고 싶다지만 나는 아니었다. 가끔 한국말을 하거나 물건을 살 때 몇 마디 정도 영어를 쓰는 게 전부인데 저녁 내내 한국말을 써야했으니 영어가 늘 수가 없는 환경인 것이다. 


뉴욕에 가면 영어를 많이 쓸 줄 알았지만, 이 역시 부지런하게 노력하는 자만의 것이었다. 한국에서도 노력 안하던 사람이 갑자기 뉴욕에 가면 달라질 줄 알았나? 나를 너무 과대평가했다. 


나는 서울에서도 게을렀지만 그나마 회사를 다니기에 억지로 몸을 움직이는 부류였다. 뉴욕에선 강제로 무얼 해야할 것이 집안일 밖에 없기에 시간을 내 마음대로 정할 수 있어 최대한 늦게 일어나고 뭐든지 늦게 시작했다. 한마디로 망하는 지름길인 거다. 한심하기 짝이 없어서 며칠은 바짝 하다가 다시 며칠 뒤면 지쳐서 한국드라마를 실컷보곤 했다.


"우리 이러다 한국 바로 갈 수도 있어 (나 짤리면). 언제 갈지도 모르는데 뉴욕까지 와서 그러고 싶냐" 


보다못한 준군의 한마디에 정신을 번쩍차렸다. '그래, 뉴욕이잖아. 밖에만 나가도 온통 꿈에 그리던 뉴욕인데 왜 나는 이러고 나자빠져있는 거지?' 


뉴요커는 대화를 사랑한다. 사소한 걸 물어봐도 물어본 이상으로 친절하게 대답해주기에 길거리에 전부 잉글리쉬 티쳐가 널려있다고 봐도 무방하다. 용기가 부족할 뿐. 나는 특히 자주 뉴요커들이랑 대화를 시도한 게 강아지 공원에서였다. 강아지 주인만큼 다정한 사람도 없지. 안그런가? 사소하게 강아지 몇 살이냐, 이름이 뭐냐로 시작해서 다짜고짜 TMI를 발사한다. 


"I moved to here a few months ago!"


응, 너 이사왔는데 어쩌라고? 하는 사람은 한 명도 없다. 다들 그 말에 기꺼이 관심을 기울여주고 자기 이야기를 시작한다. 대낮에 강아지 산책을 사는 사람들이 바빠봐야 얼마나 바쁘겠는가. 서로 뉴욕에 대한 이야기, 아시아 여행, 동네, 가족에 대한 것들을 이야기 하면서 서로를 알아간다. 집까지 들락거리는 친구가 되길 바라지만 그건 아직까진 오바고. 


영어 수업에 가도 주로 아시아인이나 남미인들이라 사실상 원어민과 대화를 할 기회는 생각보다 많지 않다. 더욱이 한 시간 동안 원어민과 1:1로 대화를 하는 건 거의 갓 이사온 백수에겐 엄청난 기회이다. 그래서 최대한 강아지 공원을 영어학원처럼 이용하고 있다는 후문. 


다음으로 영어를 무료로 배울 수 있는 곳은 뉴욕 퍼블릭 라이브러리 NYPL, 도서관이다. 도서관들은 Free English Conversation 클래스를 무료로 제공한다. 뉴욕 도서관은 거의 동네마다 하나씩 있어서 뉴욕 맨해튼에만 수십 개가 있다. 걸어서 15분 마다 도서관을 발견할 수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도서관에서는 노인이나 어린이를 위한 미술, 컴퓨터 클래스를 제공하고, 이민자를 위한 영어 수업도 제공한다. 부지런히 영어공부를 한다면 매일 매일 다른 지점에서 열리는 영어수업을 일주일 내내 찾아서 들을 수 있다. 


열심히 하는 학생들은 매일 수업이 있는 도서관을 찾아 간다. 나도 초반에는 그런 학생 중 하나였기 때문에 얼굴이 익은 사람들과는 친구처럼 지내기도 했다. 


두 달 간 책 원고를 쓴다는 핑계로 칩거 후 다시 찾은 도서관에서 그들을 만났는데 정말 놀랍게도 영어 실력이 향상돼 있더라. 그동안 나는 뭘한거지? 


또한 분기별로 도서관에서 학원과 같은 정규 영어 수업도 제공한다. 주2회씩 3개월간 참여하는 수업이다. 따로 레벨테스트를 받고 등록을 하는 건데 이런 양질의 관리를 해주는 영어 수업마저 무료다. 


미국에서 어학연수를 한다면 3개월 간 천만원 정도의 수업료가 드는 걸 감안했을 때, 노력만 한다면 무료로도 충분히 그 효과를 낼 수 있는 것이다. 자, 그런데 알면서도 왜 안하는 거지? 


무료니까 별로지 않을까 하는 걱정도 있었지만 영어 수업의 퀄리티는 상당히 높다. 도서관 영어 수업을 위한 상황별 드라마를 만들어 수업 교재로 활용하고, 수업마다 토픽도, 선생님들의 수준도 한국의 어떤 영어학원보다 낫다. 무슨 질문이든 막힘없이 알려주고 체계적인 수업과 교재를 제공한다. 돈을 내지 않고 노력만으로 영어를 끌어올릴 수 있는 환경이자 기회다. 열정만 있다면 이런 수업들은 널렸다.


특히 뉴욕에는 패셔너블한 세련된 뉴요커 할머니, 할아버지가 많은데, 은퇴한 원조 뉴요커들이 자원봉사식으로 영어 대화를 제공하는 모임도 찾아보면 꽤 있다. 


여기서 끝이 아니라, 준군의 연구실이 속한 콜롬비아대에서는 무료한 와이프들, 배우자를 위한 다양한 활동을 제공한다. 영어수업도 그중 하나인데, 레벨 2와 레벨 1 수업이 있다. 나는 레벨2였다가 레벨1로 반을 옮긴 케이스다. 레벨2 반에서는 너무 긴장이 되고 쫄린다는 이유였는데 잘못된 선택이 아니었을까 싶긴 하다. 레벨 1에는 중국인과 일본인밖에 없는데다가 그나마도 내가 가장 잘하는 편에 속하기 때문에 실력도 없으면서 오만하게 된달까. 확실히 잘하는 사람들 사이에 껴야 덩달아 나도 노력하게 되는 것 같다. 자극을 받고 온 날에는 집에서는 무조건 영어자막으로 미드를 보고, 똑같은 걸 자막없이 여러번 보기도 한다. 


그래서 영어가 얼마나 늘었냐고? 쥐꼬리다. 그나마 처음 뉴욕에 왔을 때와 달라진 것은 말하다 침묵하는 법없이 틀리더라도 큰 소리로 말을 하게 됐다는 점이다. 


아무리 영어를 잘해도 작게 말하는 걸 되게 싫어하더라. 어버버 하게 말하면 무시당하기 딱 좋다. 정확히 문장을 구사하기 보다는 당당하게 말할 것. 조금 틀려도 웬만해선 원어민들이 다 알아듣기 때문에 일단 긴장하지 않고 쭉 말하는 연습을 하는 걸 우선적으로 한 것 같다. 


생각보다 다들 천천히 말해주고, 이해를 못했을 때는 다시 잘 설명해주기 때문에 그냥 내지르자. 자신감있는 태도가 더 중요하다. 


하, 참. 영어도 못하는 사람이 이런 글을 쓰니까 웃기긴 하다. 어쨌든 영어를 잘하는 건 그만큼 내 인생의 폭이 넓어지는 일인 것 같다. 글을 쓰는 나에게, 영어는 또 하나의 글을 쓸 수 있는 기회가 되어줄 것이고, 상상이긴 하지만 세계 시장에서 내 꿈을 펼칠 수 있는 희망을 쥐어줄 것이다. 팔자에 없다고 생각했던 외국 살이도 이렇게 하게 되는 걸 보니, 누가 알겠는가 뉴욕 다음에 또 어느 나라에 가서 살게 될지 말이다. 


그래서 이번주에 영어를 몇 번이나 배우러 갔냐한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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