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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도 Nov 17. 2019

회사없는 자기소개

퇴사 후에야 내가 회사형 인간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회사를 빼면 나는 어떤 사람인지 가물가물하다. 새로 만난 사람들에게 나를 소개해야하는 자리가 불편해지기 시작했다. 직업을 빼면 도무지 나에 대해 할 말이 없는 것이다. 


"퇴사했어요" 라고 하면, 어디서 무슨 일을 했었냐는 과거형 질문이 따라붙는다. 신나게 과거를 떠벌리고 나면 "그럼 지금은 뭐해?" 현재의 나를 말해야 할 순간이 다시 찾아온다. 할 말이 없다. 영어 수업에서 어김없이 자기소개시간이 다가왔다. 나보다 앞서 중국인 여자가 자신을 소개했다.


"남편은 뉴욕에서 OO회사에서 일하고, 저는 아이 둘을 키워요. 지금은 아이들이 학교에 가있죠" 


그 말은 한국에서 자란 나에게는 익숙하게 느껴졌다. 30대 중반 정도의 여성에겐 낯설지 않은 인생이었다. 슬프게도. 허나 뉴욕에선 마치 그것이 용납되지 않다는 듯이 공격적인 추가 질문이 쏟아졌다. 


"그럼 당신은요? 어떤 일을 하고 지내나요? 따로 하는 게 있나요?", "중국에서 무슨 일을 했었어요?", "앞으로 여기서 얻게되길 기대하는 게 있나요?" 


여자는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고 그런 질문에 대비가 되어있지 않은 듯 했다. 가까스로 대답을 하면서도 그녀는 자기 자신이 작아짐을 느꼈던 것 같다. 


"음.. 저는 그냥 애들을 돌보면서 요리하고, 청소하고 바쁘게 지내요..."


한국에선 업무가 아닌 결혼이나 나이 등 사적인 질문들이 다소 무례하게 이어지는 경우가 많지만 뉴욕에서는 그 반대였다. 나이나 결혼여부, 사는 곳, 출신 대학, 부모님의 직업, 연봉 등 민감한 질문을 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그 대신 한결같이 직업에 대해 심층적인 질문을 하곤 했다. 그런 질문은 무례한 게 아니었다. 나이나 결혼 여부에는 관심이 없지만 뉴욕에서는 직업이나 하는 일에 대해서는 상당히 구체적으로 대화를 하는 게 보편적이었다. 하는 일을 떼어놓고는 그 사람의 성향에 대해 알 수 없기 때문에 그런 건 아닐까 생각했다. 사람의 커리어가 곧 히스토리가 되곤 하기에 일적인 이야기로 사람을 알아가는 편이 더 타당해보였다. 그래, 내가 결혼했다는 걸 안다고 나에 대해 아는 건 아니지. 


"What do you do?" 


이런 저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드디어 내 차례가 오고야 말았다. 나는 과거형 동사를 써서 나를 설명해야 했다. "I was an editor and marketer too" 하지만 가차없이 "And now?" 라는 질문이 이어졌다. 나는 다소 자신이 없는 투로 글을 쓰고 있다고 말했다. 어떤 종류의 글을 쓰냐고 또 묻기에 책을 쓴다고 말했다. 그나마 책 원고를 마감한다는 말이 그들에겐 흥미롭게 들린 모양이다. 추가 질문은 없었다. 나는 어느 수업에 가도 똑같은 말만 되풀이할 수 밖에 없었다. 박제한 듯한 같은 문장에 비슷한 표정으로 처음보는 사람에게 나를 소개했다. 


그런데 나 책을 쓰는 사람인가?


첫 책의 출간을 기다리고 있긴했지만 그것이 내 직업이냐고 한다면 아직 물음표였다. 내가 원한다고 작가로 잘 먹고 잘 살 수 있는 건 아니니까. 책이 팔리든 안팔리든 나는 나를 정의해야했고 내가 무얼 하기를 원하는지 알아내야 했다. 


그럴수록 나를 마주 하는 시간이 늘어갔다. 우선 과거를 정리할 필요가 있었다. 내 커리어를 돌아보고 사람들에게 설명할 정도가 되어야 스스로도 단단해질 수 있다.


강아지 산책 중에 만난 은퇴한 변호사 아저씨와의 대화가 도움이 되었다. 내가 에디터로 일했다고 하니까 '어디에서 어떤 기사를 썼느냐', '어느 주제에 흥미가 있느냐' 등 한국에서도 좀처럼 들어보지 못한 질문을 받았다. 한국말로도 표현하기 어려운 나의 경력을 영어라는 언어로 표현하려 하다보니 애를 먹었지만 돌이켜보면 커리어 정리에 도움이 되었다.


"글쓰는 걸 좋아해서 프리랜서나 파트타임으로 일하다가, 허프포스트에 지원했다. 거기서 네이티브 애드 기사를 쓰는 에디터로서, 광고주들과 협업해서 일했다. 기획과 구성을 직접 하고, 후킹한 타이틀을 쓰기 위해 노력하면서도, 광고기사지만 유익한 정보를 포함하려고 노력했다." 


그렇게 말하고 나니 '내 과거가 헛짓거리 만은 아니었구나' 생각이 들었다. 또한 내가 그런 일을 했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지금처럼 백수 생활을 하는 내가 10만 명이 구독하는 기사를 썼다는 게 아주 먼 일처럼 느껴졌다. 과거를 회상하며 회사 안에서 살던 나를 곱씹어보는 시간은 중요했다. 하나 하나 명확해질수록 나는 어떻게 다시 내 미래의 삶을 구축할지에 대한 힌트를 얻게 될 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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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가 나였다는 걸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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