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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도 Nov 17. 2019

퇴사 후에야 회사가 나였다는 걸 알았다

프롤로그.


내 인생 전반에 중대한 영향을 끼치게 될 20대 중반 무렵부터 회사에 다녔다. 스무살이 넘으면 성인으로 간주하지만 우리는 모두 다 그때는 아직 어른이 아님을 안다. 서른이 넘은 지금도 나는 내가 아이인 것만 같다. 계속 해서 새로운 것들을 알게 되고 자라고 있기 때문이다.  


내가 성장하는데 아주 중요했던 시간에 나는 회사에 다녔다. 25살부터 32살까지 자그마치 햇수로 8년이다. 내 20대의 반 이상을 회사에서 보냈으며 회사에서 만난 사람들을 주 5일 내내 만나 가족이나 친구보다 더 자주 함께 있는 꼴이었다. 지금 내 삶이 이렇게 된 원인을 돌이켜보면 회사의 지분이 상당하다. 


나는 나를 찾아서 살아가고 있다고 생각했다. 점점 더 나를 알게 되며 내가 원하는 걸 당당히 말할 수 있으리라 믿었다. 하지만 퇴사를 해보니 그제야 알겠더라. 


나는 사이비종교에 빠진 사람처럼, 회사라는 곳 바깥에 대해서는 겉핥기식으로만 알고 있었다. 회사 밖의 나에 대해서는 아는 것이 별로 없었다. 나에게서 회사를 걷어내자 나는 아무 것도 아닌 게 되었다. 자신있게 말하던 나에 대한 것들이 퇴사 후에는 전부 다 사라져버렸다. 


퇴사를 했다. 퇴사를 여러 번 했지만, 퇴사 후 이직을 하지 않고 이직을 시도조차 하지 않은 건 몇 년 만에 처음이었다. 그래서 나는 아무 것도 아닌 나를 마주하는 게 어색하다. 내가 알던 나는 회사 안에서의 나였지, 회사 없이 살아가는 나는 나도 모르는 사람처럼 느껴졌다. 회사 일을 떼어놓은 나에 대해서 할 말이 없었다. 회사에서 내가 해내는 일들이 나를 지탱하고 있었다는 건 퇴사해보니 알겠더라. 


누군가는 내가 정년퇴직을 한 것도 아니고, 32살에 퇴사했으니 시간이 많다고 말한다. 


하지만 나는 내 인생에서 중요한 시간들을 회사라는 테두리 안에서 낭비한 기분이다. 정년퇴직 후에 이 사실을 깨닫지 않은 게 다행이라는 위로도 통하지 않는다. 


처음 들어간 직장이 평생을 좌우한다는 말이 요즘 같은 시대에도 여전히 통용된다. 내가 선택하거나 회사에서 나에게 부과한 임무가 쌓여서 내 경력이 되고, 그 경력을 활용해 비슷한 분야로 이직을 하고, 적성에 맞든 아니든 나는 오직 그 경력만을 인정받을 수 있기에 서른이 넘으면 이제 그 분야로 완전히 굳혀져버리는 것이다. 


사회적 명성을 얻는 이들은 이미 32살인 우리보다 나이가 많거나, 혹은 트렌드에 부합한 20대일 확률이 높다. 이도 저도 아닌 어중간한 나이, 애매한 경력을 가진 채로 퇴사를 해버렸다. 


퇴사 후에야 회사가 나였다는 걸 알았다. 그러니 나는 돈을 벌지는 못하더라도 일단 내 스스로를 구축해나가야 한다. 회사 없는 나는 무엇인지 그 고민의 답을  찾아야만 했다. 


기억하기 싫거나 기억이 나지 않는 나의 회사 이야기들을 써내려가는 것이 긴 여정의 한 챕터가 될 것이고, 회사에서의 명령과 의무가 없이 내가 나를 통제하고 조종하게 된 혼란스러운 현재의 삶이 다음 챕터에 담길 예정이다. 그러다 보면 나는 마지막 챕터에 어렴풋하게 남은 50년, 70년의 삶의 방향성을 찾을 수 있으리라 믿는다. 


'퇴사했구나. 나도 하고 싶은데' 공감하고 끝나는 평범한 퇴사 에세이보다는, 잠시 멈춰서 내 인생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되짚어볼 시간을 마련해주는 조잡하더라도 도움이 되는 퇴사계발서를 지향하는 바이다. 



작가 소개


1988년에 수원에서 태어나 철학과를 졸업했다. 어디에나 구겨넣을 수 있는 철학이야기 덕에, 기자가 되었다가 에디터가 되었다가 기획자, 그리고 마케터가 되었다. 퇴사와 이직을 반복하는 동안 사람에 지쳤으나 돈이 필요해 계속 회사에 다녔다. 언젠가 퇴사 이야기를 쓰겠다고 다짐했으나 진짜 퇴사를 한지 6개월이 지나서야 겨우 시작할 수 있게 되었다. 퇴사 후에는 한동안 할 일만큼 할 말이 없어서 무기력 했다. 그런 이야기를 쓰는 것이 다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부장을 욕하고, 약아빠진 동료를 비판한다고 해서 그게 내 인생에, 타인의 인생에 플러스가 되는 건 아니지않은가? 


결국 퇴사한 사람에게 궁금한 건, 어떻게 남은 긴 인생을 살 작정이냐는 것이다. 그걸 알면 퇴사한 사람들이 전부 다 행복했겠지만 퇴사는 생존의 위협이자 궁핍의 시작일 확률이 더 높다. 그저 내가 발견한 조잡한 방법과 계획들을 참고해서 회사 타이틀을 벗어던진 나와 대면해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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