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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도 Nov 17. 2019

친구들과 멀어진다

한국에서도 사람을 그리 자주 만나는 편은 아니었으나 회사에 다니고 있었기 때문에 연락은 매일 했다. 대화는 주로 회사, 상사, 그 외 스트레스가 주제였으나 좋게 말해서 감정을 공유하는 수다라고 치자. 매일 욕할 거리 하나 쯤 생기는 게 직장인의 삶이 아니던가. 그렇게 자주 카톡을 주고받고 때론 전화를 하고, 가끔 만나기도 하니까 고민할 필요도 없이 친한 사람들이 많았다. 


퇴사를 기점으로는 점차 달라지기 시작했는데, 우선은 회사 이야기 말고 무슨 말을 해야할지 모르겠는 상태가 되었다. 친구들은 계속 회사에 다니고 있으니 그런 이야기를 계속 하지만, 나는 그저 들어줄 뿐이었다. 당사자로서 200% 직장인의 애환에 공감했었다면 이제는 제3자가 되어 객관적으로 누가 잘했고, 못했는지를 따지기도 하는 것이다. 친구의 입장에서는 퇴사했다고 판사라도 된 듯이 상황을 진단하는 내가 꼴깝으로 느껴졌을 터다.


"아 그러니까 니가 실수를 했는데, 상사가 그걸 공개적인 자리에서 두 번 언급했다는 거야? 음.. 다른 직원들한테도 주의하라는 뜻 아닐까? 일단 실수를 한 게 잘못이니까..." 


내가 늘 나누던 이야기들에서 멀어지자, 나라는 사람이 평소에 대체 무슨 이야기를 하고 어떤 생각을 하고 살았던 건지 모르겠는 상태가 되었다. '5년도 넘는 시간 동안 나는 항상 회사 이야기만 했잖아?' 회사 사람들에 갇혀서 지나치게 스트레스 받고, 스트레스 푼다고 그 사람들 얘기하면서 술먹느라 몸 망치고. 


퇴사 후에는 나는 대화하는 법 조차 잊어버린 사람처럼 굴었다. 나는 무슨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사람일까? 어떤 이야기를 나눌 때 즐거울까? 내가 대화하는 사람들은 어떤 생각을 할까? 


매일 이야기를 나누던 친구들과 어쩔 수 없이 거리가 생겨버려 나는 대화를 할 기회조차 잃었다. 14시간의 시차 덕에 이른 아침이나, 초저녁 정도에만 대화를 할 수 있기도 했고 카톡으로 나누는 이야기에도 한계가 있었기 때문이다.  "미안하다. 내가 애를 안키워서 잘 몰라", "미안하다. 퇴사하니까 진짜 회사 애기 할 게 없어 난" 


친구들에게 먼저 연락해서도 딱히 할 말이 없었다. 뉴욕에서는 크게 고민거리도 없고, 그렇다고 책을 쓰는 어려움에 대해 이야기를 하기에는 그들의 관심사가 아니었다. 다들 사는 게 힘든데 뉴욕이 얼마나 좋은지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을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자랑하는 것처럼 보이는 게 싫어서 뉴욕에 왔지만 3개월 간은 SNS에 아무 것도 올리지 않았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에 다니면서 공통 관심사가 형성되지만 서른이 넘으면서 퇴사 하고 아이를 낳는 친구들이 생기고, 회사 일 외에는 특별한 취미 없이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하고는 점점 더 공통 주제를 잃는다. 대화가 되려면 상대방이 관심을 갖지 않는 이야기를 주구장창 늘어놓으면 안된다고 생각하는 나는 계속 머릿속으로 교집합을 찾느라 분주하다. 


최근에 가장 많이 대화를 나눈 사람은 아무래도 내 책의 편집자였다. 책에 대해, 글에 대해 누가 더 할 말이 많은지 대결이라도 하듯 우리는 끊임없이 떠들었다. 그 말들은 메모하면서 들어야할 정도로 나를 흥분시키는 이야기였고, 나를 발전시키는 말들이었다. 글 쓰는 게 어렵다고, 모두 다 지워버리고 다시 쓰고 있다고 우울해할때도 나를 일으킨 건 오래된 친구가 아닌 1년 정도 알고 지낸 그 편집자였다. 책이라는 공통 관심사가 있어 우리는 오직 책 이야기만으로도 2시간을 훌쩍 넘겨 이야기하곤 했다. 


그렇게 전화를 끊을 때면 에너지가 생겼다. 우리는 아직 친구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일적인 사이지만 뉴욕에서 내가 가장 많이 의지한 건 어쩌면 그녀였다. 


아 물론 한국에 있는 친구들 생각도 많이 했다. 뉴욕에 오기 한 달 전 작은 결혼식을 올렸다. 서울에서 친구들을 한꺼번에 다 봤기에 그날이 떠오르는 것이다. 그때 정말 재미있고 즐거워서 다시 한 번 그런 파티를 하고 싶지만 찌질하게도 흰색 옷을 입고 온 친구 두 명 생각이 간혹 났다. 쌀쌀한 봄이라 어두운색 코트나 바바리 안에 입고 온 이너 블라우스라지만, 나는 유별나게 내가 결혼식을 할지 안할지 모르는 상황에서도 스무살 이후로 남의 결혼식 사진을 보고 누가 흰색옷을 입었네, 아니네 하는 생각을 많이 해오던 인간이었던 것이다. 어쩌겠는가 더운데 코트를 입고 축하해줄 수도 없는 노릇이고 결국 애들과 나는 흰색 옷을 입고 나란히 사진을 찍었다. 유일하게 결혼식에서 기분이 나쁜 게 그 일이었기 때문에 식이 끝난 후에도 남편이나, 이미 결혼을 한 친한 언니에게 하소연했더니 이런 답변이 돌아왔다. "야 나도 2년 전에 결혼했을 때 누가 흰옷 입었는지 아직도 기억난다니까.." 


뉴욕에 와서 친구들에 대해 하는 생각이 그런류였다. 진정한 친구에 대해서도 곱씹어보기도 했다. 물론 여전히 그들은 내 친구이다. 최근에 읽은 미국 작가의 책에서 그 구절이 나와서 다시 그때가 떠올랐을 뿐이라고 해명한다.


"나는 아직도 어른이 됐다는 느낌은 들지 않는다. 그 이유 중 하나는 아직 나와 잘 통하는 친구들을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나는 연애 상대를 걸러내는 데 서툴렀던 것과 마찬가지로 친구를 걸러내는 데도 서툴렀다. 친구들 중 하나는 내 결혼식에 흰색 드레스를 입고 왔다 ~ 그리고 남편의 여성 친구들 중 누구도 흰색 옷을 입고 오지 않았다 ~ 내가 하고 많은 사람들 중에 왜 하필 그들을 골랐는가? 친구와의 우정이 그렇게 괴로운 것이어야 하는가?" - 책 <맙소사 마흔> 中


저 긴 문장들 중 내가 오직 공감하는 건 '친구들 중 하나는 내 결혼식에 흰색 드레스를 입고 왔다' 는 구절이다. 나는 그 친구들과 아주 잘 통하고, 내게 남은 친구들은 나와 가장 코드가 맞아 몇 시간이고 몇 일을 함께 있어도 턱이 아플 정도로 웃을 수 있는 녀석들이다. 이토록 오래 생각했으니 이제 그 기억을 놓아줄 때가 된 것 같다. 찌질하다 찌질해. 


대화 주제가 아니라 내가 찌질한 것이 주된 원인이라고 결론을 내려야겠다. 이게 다 시간이 너무 많아서 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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