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위로하는 건.
2004년 5월 22일
오늘은 한국에 있는 친한 언니의 생일이다. 생일에 맞춰 전화를 하니 역시 언제나 그랬듯이 밝고 통통 튀는 목소리로 반갑게 맞아준다. 언니와는 이곳에 오기 전 피아노 학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다 만났다. 그 당시 나는 낮에는 피아노 학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고 밤에는 대학로의 한 공연장에서 음향 엔지니어로 일했었다. 일주일 내내 밤낮으로 경기도와 서울을 오가며 유학비를 벌겠다고 알바 두 개에 몸을 갈아 넣었으나 한 달에 내 손에 들어오는 돈은 겨우 120만 원 남짓이었다. 고된 일정 탓에 매일 피곤에 절어 살던 그때, 언니가 피아노 학원에 새로운 선생님으로 들어오게 되었다. 대학 졸업 후 결혼과 동시에 아이를 낳고 바로 일하겠다며 면접을 보러 온 그녀는 아직 출산으로 인한 부기도 덜 빠진 모습이었다. 그러나 갓난쟁이를 놓고 일하면서도 언니는 나와는 달리 매사에 긍정적이고 항상 에너지가 넘쳐흘렀다. 그런 언니와 함께 있으면 언제나 신나게 일할 수 있었고 무슨 일이든 다 잘될 것 같은 즐거운 마음이 샘솟았다. 쉬는 시간엔 같이 피아노를 치며 노래도 부르고 서로 꿈꾸는 미래에 대해 많은 얘기도 나누었다. 외동딸이던 언니는 나를 친동생처럼 챙겼다. 갓 면허를 딴 내게 언니는 자신의 차로 주행연습도 시켜주고 이곳에 오기 전엔 추운 영국에서 꼭 필요할 거라며 털모자와 양말을 사주었다. 잘 다녀오라며 따뜻한 눈빛으로 내 등을 토닥이던 언니의 모습이 여전히 눈에 선하다.
그러고 보면 난 인복이 참 많은 사람이다. 언제나 주위에 좋은 사람들이 있다. 이곳에서도 잠깐 스쳐가는 사이든 오래 인연을 맺게 되든 대부분 좋은 사람들을 만났다. 제일 먼저 떠오르는 사람은 지금의 룸메이트 언니다. 한국에서 골프장 캐디를 했던 언니는 육체적 정신적으로 너무 지쳐 잠시 쉬기 위해 이곳에 온 케이스다. 그녀는 사람상대를 많이 해서일까, 목소리 한번 높이는 일 없이 철없는 날 잘 참아준다. 언니의 그러한 무던한 성격덕에 우리가 계속 함께 살 수 있는 것이 분명하기에 무척 고맙다.
학원에서도 잠깐씩 한국에서 어학연수를 온 친구들을 여럿 만났다. 외국에 오면 영어공부를 위해 한국사람들을 멀리하겠다고 굳게 다짐했지만 아무리 애를 써도 수억 만리타국땅에서 유일하게 나와 같은 말을 쓰는 사람들을 멀리 할 재간은 없다. 타지에서 우리는 누가 뭐라 하지 않아도 서로 챙겨주고 배려해 주는 한국인의 정을 강하게 발산했다. 지갑을 잃고 망연자실한 나와 런던 한복판에서 쓰레기통을 함께 뒤져준 친구들도 바로 그들이었다.
교회 식구들도 빼놓을 수 없다. 그중 제일은 목사님의 사모님이다. 사모님은 말 그대로 나와 같은 유학생들을 매주 거 둬 먹이신다. 주일날 먹는 교회밥을 매주 손꼽아 기다릴 정도로 사모님의 음식 솜씨는 정말 대단하다. 사모님이 간장게장을 하시는 날이면 모두들 밥 두 그릇은 기본이다. 교인들 챙기랴 어려운 교회 살림 때문에 평일엔 마트에서 하루 종일 일하시면서도 얼굴 한번 찡그리시는 걸 보지 못했다. 그뿐만 아니라 마트에서 저렴하게 얻게 된 흠집 있는 물건이나 유통기한이 얼마 남지 않은 계란 등 너무 소중한 생필품과 음식들을 매번 유학생들에게 무료로 나눠주신다. 또 매주 예배 후엔 샌드위치를 만들어 런던의 노숙자들에게까지 온정을 베푸신다. 나도 시간이 날 때마다 샌드위치 만들기에 참여하고 있는데 20년 넘게 해 오신 일이라 이젠 그 샌드위치를 기다리는 노숙자들이 매주 줄을 서 있을 정도다. 이쯤 되니 종교를 떠나 한 사람으로, 또 한 어른으로 깊이 존경하게 되었다. 교회에서 만난 다른 사람들도 대부분 선하고 좋은 사람들이 많다. 신앙이 있던 없던 상관없이 다들 먼 타지에서 사람이 그리워 모인 사람들이다. 힘들고 지친 마음이 들 때마다 서로 위로가 되어주는 사람들. 그들 덕에 이곳에서의 생활도 이 전처럼 막막하고 외롭지만은 않다.
얼마 전엔 이 사람들과 콘서트에도 다녀왔다. 김종서와 사랑과 평화가 함께 하는 런던 교민 대상 콘서트다.
어찌어찌 내게도 표 한 장이 돌아왔다. 전혀 기대하지 못했던 문화생활이라 기대가 더 크다. 오랜만에 커다란 콘서트 홀에 서니 잠시 잊고 있던 음악에 대한 목마름도 되살아 난다. 내가 그렇게 좋아하던 음악을 그간 아예 잊고 있었다. 지난 6개월은 먹고사는 것 외에는 전부 사치처럼 느껴지던 시간이었다. 리듬에 몸을 맡기고 온갖 근심과 걱정을 잊을 수 있는 이 순간이 그렇게 행복할 수가 없다. 오랜만에 한국인들 사이에서 라이브로 음악을 듣고 있자니 뭔가 마음속에서 울컥하며 올라온다. 이 감정이 서러움인지, 그리움인지 종잡을 수 없다. 익숙한 김종서의 노래 선율이 귓가에 들려오고 한국 팬들 특유의 떼창이 콘서트장을 물들인다. 나도 그 떼창에 휩쓸려 목이 터져라 노래를 따라 불렀다. 런던 한복판에서 한국말로 목놓아 노래를 부르니 그간 타향살이하며 받았던 설움과 스트레스가 한 방에 가시는 기분이다.
한국엔 내가 찾는 희망이 없다고, 다른 사람의 시선에 맞춰 사는 것이 지겹다고 미련 없이 떠나온 길이었다. 그러나 먼 타향에서 나를 뼛속 깊이 위로하는 건 돌고 돌아 다시 고향의 음악이고 그곳의 사람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