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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붕어만세 Nov 18. 2024

김여사, 나의 어머니

나도 요즘 궁금한 나는 누구인가. #2

김여사는 명동에 있는 은행에서 청소를 하셨습니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새벽 4시에 일어나 채비를 하십니다. 은행 청소는 순번제로 돌아가는데 로비 청소를 할 때가 있습니다. 허리가 아픈 김여사에게 로비 청소까지는 무리무리하죠. 그래서 로비 청소는 저랑 함께 합니다.


청소 자체는 한시간 남짓인데 학교에서 명동까지 가는 시간이 더 걸려서 솔직히 좀 많이 귀찮습니다만, 매일 새벽에 나오시는 김여사께 할 말은 아니라 속으로만 궁시렁거립니다.


노란 고무장갑에 파란 최신 덕국 걸레를 들고 청소하다 보면 가끔 지나가는 아줌마들이 수군댈때가 있습니다. 아이 손을 끌면서 ‘너도 공부 안 하면 커서 저렇게 되는 거야.’라고 딱히 조심하는 기색도 없이 손가락질을 하곤 하죠.


그럼 김여사와 또 긴긴 말장난이 시작됩니다.


”김여사, 저 집 아들은 미쿡서 박사 밟아야겠다. “

“너나 밟아 이눔아..”

“난 잉글리시를 못하잖아. 응? 소라도 팔아서 애들 잉글리시를 갈쳐야지. 무슨 들고냥이도 아니고 자식 새끼들을 그르케 놔서 기르면 워쪄..“

”야. 니네 아버지가.. “

”알았어. 잠깐. 미안. 거기까지. “

“야. 니네 아..”

“알았어. 알았어. 미안. 미안.”


얼굴이 곱상했던 아버지한테 한눈에 반한 김여사는 안타깝게도 인물이 없었습니다 -> 연애를 못했구요 -> 남자 보는 눈이 정말 지지리도 없었습니다. 그때 제가 있었으면 다리 몽뎅이를 분질러서 김여사 근처에는 얼씬도 못하게 했겠지만, 김여사는 자기 좋다는 건실한 공장 주임을 차 버리고, 그렇게 스스로 팔자를 꼬았습니다.


“그르케 좋았어?”

“니네 아버지 인물 좋았어.”

“근데 내 얼굴은 왤케 질서가 읎어..“

“너 태어났을 때 이놈 이거 커서 장가나 갈까 싶더라. 그래도 뭐 남자가 그만하면 잘 컸지. “

”월래? 딴 사람은 몰라도 김여사는 그런 얘기하믄 안 되지. 이게 지금 설계단에 하자가 있는 건데. 글고 이게 키가 이게 뭐야. 종자가 잘잖아. 내가 우리 집에서 젤 크다 그러면 아주 다 웃겨 죽어..“


다행히 김여사는 보스 기질이 있습니다. 주변 사람들을 살뜰히 잘 챙기고 교통정리도 시원시원하게 잘하십니다. 마성의 매력이 있으셔서, 은행의 치과 의사가 가끔 무료로 스케일링을 해주곤 했었지요. 그 냥반 참 곱고 예쁘셨는데, 김여사에게 건물이 있다는 걸 안 뒤에는, 왜때문인지 스케일링을 안 해주시더라구요..


청소가 끝나면 다음 로비 청소 날짜를 확인하고 헤어집니다. 김여사는 집에 들러서 밥 먹고 가라 하시고, 저는 밖에서 먹자고 실랑이를 하다가 결국 그냥 헤어집니다. 저는 웬만하면 아버지 보기 싫고, 김여사는 밖에서 음식 사 먹는 걸 싫어하시거든요.


가끔 김여사와 다툴 때도 있습니다. 대부분은 사소하기 짝이 없는 것들에서 번집니다. 아들이 커피값으로 하루에 돈 만원씩 쓰는 건 김여사께는 절대 비밀이었습니다. 바로 20분짜리 잔소리가 날아 오는데, 이게 20년째 귀에 피가 나게 들은 내용입니다. 레파토리 개발에 너무 투자를 안하세요. 요즘에는 스벅과 결별하고 메가커피로 갈아 타면서 하루 3천원으로 확 줄었지만, 뭘 마셔도 봉다리 커피보다는 비싸니까 잔소리의 내용은 변하지 않습니다.


그러다 가끔씩 대판 싸웁니다. 그날의 사달은 김장이었어요. 배추 대여섯 포기를 김장이라고 불러도 되나 싶지만, 허리도 아픈 냥반이 먹지도 않는 걸 굳이 담그시니까 진심 하기 싫습니다. 마트가면 일년내내 파는 걸..


“아.. 좀. 사 먹읍시다..”

“파는 김치는 카바이트 냄새가 나서 못 먹어. “

”아니 그 카바이트라는 건 대체 정체가 뭐야? 차에다 한 오바이트야? “

”야. 너 자꾸 잔소리할 거면 오지 마! 그리고 사 먹으라고 할 거면 돈 백 주면서 그런 소리를 해! “


홧김에 진짜로 백만 원을 쏘고 (..내가 미쳤지..) 김치 두 박스를 쌍문동으로 보냈습니다. 이제 내 인생에 김장은 이걸로 끝이다! 아주 또 김장하고 허리 아프다고 앓기만 해 봐 그냥..


인생 마지막 김장은 개뿔.

일주일 뒤에 얄짤없이 또 불려 갑니다. 김치 맛을 봤는데 파는 김치는 밍숭맹숭해서 양념을 다시 하셔야겠다며, 큰 다라이에 다 쏟아서 무슨 액젓 넣고, 고춧가루 더 넣고, 배도 하나 썰어 넣고.. 김치 많이 안 먹는다는데 굳이 굳이 또 싸줘가꼬..김장도 두 번하고 김치도 두 통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중 한 통은 냉장고에서 자리만 차지하다가 반년쯤 뒤에 깨끗하게 목욕재계하고 음쓰 봉지에 차곡차곡 들어가셨지요..


김여사. You Win. Pecpect.



내가 이 욱하는 성격이랑 황소 고집을 아버지한테 물려 받은게 아닌 것 같…




F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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