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기 위해 정의하지 않아도
스포일러가 포함된 글입니다.
양치기 소년 이야기. 계속 늑대가 나왔다고 거짓말을 하다 보면 정말 늑대가 나타나도 아무도 믿어주지 않는다는 이야기. 어릴 때 이 이야기를 들으면 마냥 양치기 소년이 바보 같았다. 왜 거짓말을 해서 그런 사단을 내나 싶었다. 양치기 소년 이야기는 거짓말을 하지 말자는 교훈을 주는 단순한 이야기라고 여겼다.
어른이 되고 생각해 보니, 편견에 대한 이야기라는 생각이 들었다. 양치기 소년의 반복된 행동이 그를 거짓말만 하는 사람이라고 만드는 편견을 사람들에게 심은 거다. 정말 늑대가 나타났을 때 아무도 양치기 소년을 믿어주지 않았던 것처럼, 한 번 자리 잡은 편견을 변화시키는 것은 무척이나 힘든 일이다. 그러니 나에 대한 잘못된 편견이 심어지지 않도록 주의하자는 이야기로 받아들여졌다.
그런데 좀 더 생각해 보니, 계속 늑대가 나타났다고 거짓말한 소년의 어리석음을 이야기할 것이 아니라, 왜 소년은 계속 그런 거짓말을 했는가에 대한 물음을 가지게 됐다. 그는 왜 계속해서 그런 거짓말을 했던 것일까.
서래는 양치기 소년 같다. 그것도 이미 몇 번 거짓말을 한 양치기 소년 말이다. 그녀의 말은 어딘가 그대로 믿기 어렵고, 그녀의 표정과 행동, 그녀가 주는 분위기는 계속해서 알 수 없는 의구심이 들게 한다. 그녀가 우리에게 어떤 거짓도 말하지 않았었는데 말이다.
반면에 해준은 늑대가 나타났다고 이야기하면 달려와주는 마을 사람 같다. 마을 사람에게는 늑대가 나타났다는 사실이 중요하듯이, 형사인 해준에게 중요한 것은 사실이다. 분명하게 무슨 일이 벌어졌는가 대한 사실.
그는 분명하지 않은 것을 경계한다. 그래서 서래를 경계하고, 서래에 대한 자신의 마음을 경계한다. 그러나 때로 주의하고 경계하는 것이 모든 것을 흐리게 만들 때도 있다. 너무 무엇에 집착하면 사람은 작은 시야를 가지게 되니까.
해준은 분명함을 찾아 몸부림치고, 해준의 몸부림은 점점 더 그를 흐릿하고 모호하게 만든다. 영화 내내 드리우는 안개는 그런 해준의 시야에 대한 비유 같다. 형사로써 해준은 사실을 쫓아야 하는 것이 맞지만, 안개에 휩싸인 그를 보고 있으면 사람으로서 해준도 그래야만 했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
해준이 그랬듯, 때로 누군가를 대할 때 우리는 사실에 집착하는 경향이 있다. 그 사람을 정의 내리고, 판단하고 때로 저울질하기도 한다. 그 사람을 더 잘 알기 위해, 그 사람과 더 잘 지내기 위해서와 같은 이유를 붙일 수 있겠지만, 그 말로가 때로 무참히도 비극적일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 사실에 집착하는 행동은 경계해야 하는 행동일지도 모른다.
서래는 사실을 원하지 않았다. 영원히 해준의 미제 사건으로 남고 싶다는 서래의 말은 어쩌면 내가 누구인지에 대해 더 집착하지 말고, 정의 내리려 하지 말라는 말이었을 거다. 누군가를 마음에 담아 두기 위해 꼭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이라는 정의가 필요하지 않다는 것을 서래는 알고 있었다.
서래가 살인에 대한 진위를 탐구하는 것보다 해준에게 중요했던 것은 자신이 그녀가 어떤 사람이길 바라는 가를 깨닫는 일이었다. 해준에게 서래가 죽일만한 사람이었다면 서래는 누군가를 죽일만한 사람이 된다. 반대로 해준에게 그녀가 결코 죽이지 않았을 사람이라면 서래는 결코 그런 짓은 하지 않을 사람이 된다. 그러나 해준은 서래의 말과 마음을 바라보지 못하고, 끝내 그녀를 어떤 사람으로 느꼈는가 분명히 알지 못한 채 안갯속에서 헤매고 만다.
모래를 파고 들어가 웅크린 서래의 모습은 슬프다. 웅크린 서래는 해준이 만든 편견이라는 파도가 밀어내는 모래 속에 서서히 잠겨 사라진다. 서래의 마지막은 편견이 만들어낸 죽음이다. 뒤늦은 해준은 과연 무엇을 찾을 수 있을까? 자신이 만든 편견이라는 파도는 몰아치지 않고 서서히 찾아올지언정, 쌓이고 쌓여 해안을 바다로 만드는 밀물이 됐고, 해준은 그 어떤 흔적도 쥐지 못한 채 헤맬 뿐이다.
양치기 소년의 이야기가 다시 떠오른다. 편견이 죽인 소년의 이야기가 말이다. 그는 어째서 존재하지 않는 늑대를 이야기했을까? 어째서 반복해서 늑대가 나타났다고 소리치는, 들판의 외로운 소년에게 마을의 어느 누구도 왜 그랬느냐고 물어보지는 않았던 것일까.
누군가를 너무 마음에 두는 일이 그 사람에 대한 분명한 정의를 탐구하는 욕심으로 변모할 때가 있다. 그러나 욕심에 빠져 눈과 귀를 막은 채 파해치는 그곳에는 어떤 값진 사실도 묻혀있지 않다. 돌아보면 서서히 차올라 모두를 잡아먹는 밀물 같은 아픔만이 기다릴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