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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골드스타 Sep 30. 2022

취향은 호불호, 인생은 호호호

<윤가은 산문집 '호호호'>


윤가은, 영화감독이다. 영화감독이 쓴 산문집이라니, 너무 매력 있어 보였다. 제목도 호호호. 책 표지 왼쪽 상단에 작게 ‘호불호가 아닌 호호호’라고 되어있다. 삶은 고통이요, 취향은 호불호가 갈리기 마련이거늘 호호호가 가능하단 말인가?


그녀는 사소한 것들을 사랑한다. 영화감독이 감히 ‘브링 잇 온’같은 대중적인 미국 하이틴 영화를 좋아한다고 당당히 말할 수 있을까? 그녀는 말한다. 물론 조금 주저했던 시절도 있었지만 말이다. 그리고 그녀는 생의 소중함에 대해서 얘기한다.



생각해보면 생일은 정말 대단한 날이다. 한 해를 무사히 버텨내고 또다시 새로운 한 해를 맞이한다는 건, 엄청난 노력과 굉장한 행운이 모두 뒷받침되어야만 가능한 일대 사건이다. 돌아보면 세상엔 아무리 열과 성을 다해도 더는 나이를 먹을 수 없는 이들이 도처에 있다. 아무리 원하고 바라도 다시는 생일을 축하해줄 수 없는 이들이 너무도 많다. 그러니 어떻든 이렇게 살아남아 또다시 생일을 맞이한다는 건 실로 놀라운 축복이고 기적이 아닐 수 없다. 혹 다른 이들이 그 경이와 아름다움을 몰라준대도, 내가 내 시간들을 잘 버티고 살아내 새로운 날을 맞이하게 되었다는 진실만큼은 절대 훼손될 수 없다.

맞아. 돌잔치도, 환갑잔치도, 우리가 살아냈음을 축하하고 축복하는 날이 아니었던가. 무사히 살아냈다는 것으로도 감사하거늘, 나는 매일 불호와 맞서 싸우느라 하루를 보내느라 바빴었다. 회사에 가면 무던하고 좋은 직원들 사이에 앉아있는 나와 안 맞는 직원 한 명을 신경 쓰며 하루를 보내곤 했다. 그러다 그 직원이 내게 한마디 할라치면 바로 메신저로 오늘은 그 XX가 내게 어떤 해코지를 했는지 회사 동기에게 낱낱이 일러바쳐야만 속이 시원했다. 좋은 일들은 그러려니 하고 넘겼는데도 말이다. 내게 불호한 사건들이 생김을 견딜 수 없어했다. 또 그런 불호도 사실은 손바닥 뒤집듯 바꿀 수 있다.

힘들었던 대학생과 직업인 사이의 기간을 보낸 뒤, 회사생활이 10년쯤 접어들자 정말 미치기 일보 직전이었다. 일은 나랑 맞는 일, 안 맞는 일도 있었지만 가장 힘든 건 ‘인간’이었다. ‘저 인간은 왜 저러나.’라며 이해하기 어려운 인간에 대한 분노만 잔뜩 차올랐다. 그러다가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 네이버에 ‘정신과 상담’에 대해 검색을 해보았다. 블로그 후기도 많고, 의사도 여럿이며 병원 홈페이지도 있는 곳은 회사와 먼 데다가 물어보니 진료비도 어마어마했다. 그러다가 지도에서 회사 1분 거리에 있는 신경정신과를 발견했다. 문의해보니 한 달을 기다려야 했지만 그만큼 괜찮은 분이라고 접수원이 얘기했다. 그래서 한 달을 기다렸다. 마침내 찾아간 신경정신과의원. 작은 대기실에는 나의 편견과 달리 의외로 몹시 멀쩡해 보이는 아주머니 두 분이 계셨다. 조금 안심이 되었다. 한참을 기다려 들어간 진료실에는 80대 정도로 보이는 수척한 할아버지 의사가 있었다. 할머니도 아니고 할아버지가 내 얘기를 이해하고 공감해주는 게 가능할까 싶었지만 일단 솔직히 얘기했다

“회사 선배가 저만 보면 싫어해요. 제 말투 자체가 싫대요. 그 얘길 듣고 혼자 숨죽여 울었어요. 너무 인신공격적이라고 생각했어요.”


실제로 그는 사무실에서 남들 다 들리도록 ‘말투가 맘에 안 든다’며 윽박질렀었다. 태어나 처음 듣는 소리에 정신이 아득해졌었다. 그냥 내가 싫다는 말을 못 해서 저렇게 표현한 건가. 나와 같은 부서에 옆자리라 출근할 때마다 개미지옥에 빨려 들어가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어깨가 무거웠고 시한폭탄을 옆에 두고 일하는 것 같았다. 퇴근해야 겨우 숨통이 트였다.


“다음부터는 그 선배 책상에 음료수를 올려놔요. 계속.”


의사는 감정적 공유보다는 해결책을 제시해주는 편이었다. 그래서 더 좋았다. 나는 의사가 시킨 대로 했다. 언제까지 동기들에게 욕하며 버틸 순 없었다. 처음엔 내가 올려놓은 걸 알면서도 고맙단 소리도 없고 황당해하는 그 표정에 이게 맞나 싶었지만 계속했다. 내가 카페에서 음료를 사 올 때마다 선배 것도 하나씩 사 왔다. 나에 대한 불만을 품은 그 사람을 대면해서 대화로 회유하는 것보다 정신적 에너지도 덜 들어갔다. 그리고 그는 반응을 보였다.


“고마워요.”


그 뒤로 사무실은 한결 편해졌다. 우리가 그렇다고 아주 다정한 선후배 관계가 된 건 아니었고 그가 나를 예전처럼 싫어하지 않는구나 정도의 느낌만 받았다. 하지만 적어도 나는 개미지옥이 아닌 단단한 땅을 딛고 있는 느낌을 받았다. 그러고 나니 훨씬 모든 게 수월했다. 모든 게 불호로 가득한 줄로만 알았는데, 내 태도를 바꾸면 세상이 호불호가 아닌 호호호가 될 수 있었다.


사실 나는 아직도 잘 모르겠다. 여전히 매일 내게 묻는다. 영화가 진짜 나의 길일까. 나는 영화에 정말 재능이 있을까. 영화가 아니라면 또 어떤 길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까. 그 길이 진짜 나의 길이라는 건 또 어떻게 알아볼 수 있을까. 이 모든 질문들에 대한 답을 과연 언젠가는 찾을 수 있을지, 나는 정말로 모르겠다. 다만 이제는 타고난 재능을 갈고닦는 길만이 나를 진정한 행복으로 데려다준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어쩌면 나는 진짜 행복의 모습을 잘 몰랐던 것 같다. 길을 끝까지 걸어서 도착해야만 만날 수 있는 게 행복이라고 착각했던 것도 같다. 오랜 시간 걸으며 깨달은 유일한 것이 있다면, 행복은 도착지에 있는 게 아니라 길 위에 있다는 진실이었다. 목표 한 곳에 도달하기도 전에 때론 목표한 곳 없이 떠돌아다녀도 나는 단지 걸을 수 있어 행복했으니까.



행복은 도착지에 있는 게 아니라 길 위에 있다는 말은 몹시 흔하지만 느끼기 어렵기도 하다. 하지만 그녀의 ‘호호호’한 순간들을 보며 더욱 와닿았다. 올여름 나는 스윙댄스 동호회에서 졸업공연을 준비했다. 직장인이 회사를 마치고 평일에 춤을 추러 가서 12시나 되어서야 집에 들어온다는 건 엄청난 희생이며 노력이다. 특히 공연을 앞두고 우리는 정말 매일 모였다. 주로 지하에 있는 퀴퀴한 연습실에서 발바닥에 불나도록 파트너와 동선과 순서를 외웠었다. 그런데 졸업공연을 닷새 남겨두고 한 명이 코로나 확진 판정이 났다. 설마설마하며 우리도 매일 검사를 하며 연습을 이어나갔다. 그런데 이런, 공연 이틀 전 검사에서 선명한 두줄이 떴다. 세상에. 몇 주간 회사 마치고 보냈던 수많은 시간들은 실전 없는 연습이 되고 말았다. 게다가 나는 임신 준비를 해야 해서 마지막 동호회 활동이라고 생각했었기에 이제 내게 졸업공연은 언제 가능할지 알 수 없었다. 어쩌면 평생 못할 수도 있는 일이 되었다. 하지만 나는 마음이 가벼웠다. 내가 노력한 그 시간들이 정말 행복했다. 몸치인 내가 남의 눈치 보지 않고 마음껏 춤출 수 있었던 것만으로도 몸치의 맺힌 한(恨)을 풀기에 충분했다.

우리는 나를 웃게 하는 많은 것들을 알고 있다. 밤에 집에 불을 다 끄고 밖을 봤을 때 들려오는 풀벌레 소리와 다른 집에서 번져오는 불빛들이 주는 평화로움, 길가다가 몹시 귀여운 디자인의 양말을 보았을 때 보물을 발견한 것 같은 기쁨, 엄마가 갓 담근 김치와 카레를 먹을 때 코까지 뿜어져 나오는 매운 기운에 들뜨는 기분, 도서관에 가서 내가 읽고 싶은 책을 찾으러 갔는데 못 찾다가 누군가가 그 순간 반납해서 바로 집어 들었을 때 그 짜릿함, 어쩌다 TV 채널을 돌리다가 보게 된 영화에서 느낀 깊은 감동 등. 내가 무언가 대단한 것을 성취해서 그 결과물을 내지 않더라도, 잔잔한 일상에서 느끼는 행복들을 좀 더 주의 깊게 관찰할 수 있게 해 준 책이었다. 특히 그녀는 그녀가 좋아하는 사소한 것들과, 이게 왜 좋은지 매우 구체적으로 표현했기에, 나도 내가 싫어하는 것에 골몰하기보다 좋아하는 것에 집중해보기로 했다. 아주 구체적으로 요목조목 따져가면서 말이다. 내가 남에게 말 못 했지만 보고 몹시 유쾌했던 B급 영화는 어떨까. 남들은 이해 못 하는 독특한 취향의 음식은 어떨까. 당신도 오늘은 나의 호호호한 것들에 대해 적어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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