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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골드스타 May 08. 2024

평가

모자라고 못난 나에게



© leekos, 출처 Unsplash






나는 늘 모자랐고 뒤떨어졌어요. 대학도 재수했고, 졸업하고 중등교원 임용시험도 네 번이나 떨어지고 결국 접었구요. 회사에서 과장 승진 시험에도 떨어졌어요. 


반에서 유연성으로 최하위, 초등학교 때 양파 세포 관찰하는 실험에서도 최하위, 고등학교 때 가정시간 조리 실습에서도 최하위 점수를 맞았었어요. 


엄마는 나를 보며 넌 ADHD검사를 해봐라,라고 할 정도로 정신이 하나도 없고  정리에는 소질이 없어요. 어른이 되어서도 넘어지는 게 일상이라 결혼식을 앞두고 뼈가 부러져 깁스를 했어요. 



가끔 나의 조상은 어떻게 살아남아 나까지 왔는지 궁금했어요. 이 유전자는 무슨 비결이 있길래 지금 이 순간에도 지구상에 살아남아 있는 걸까 하고요. 


© grakozy, 출처 Unsplash



대학 때 도서관에서 읽은 책에서는 현재의 성역할 특성이 원시시대의 사냥하는 남자 채집하는 여자에서 시작됐다고 했죠. 그럼 먼 길을 다니며 사냥할 체력도 먹을만한 것들을 채집해서 정리할 능력도 없는 나의 유전자는 대체 누구에게서 온걸까요. 


 나의 유전자는 반으로 쪼개어져 엄마 아빠의 몸으로 다시 외할머니 외할아버지 할머니 할아버지의 몸으로, 자꾸만 올라가요. 어떻게, 어떻게 살아남은 거예요.


나의 할머니의 어머니는 농약을 마셨다고 해요. 그럼 할머니의 어머니는 어떻게, 어떻게 살아남은 거예요. 할머니는 황혼육아까지 끝난 칠십 즈음에 쥐약을 사 오란 소릴 입에 달고 사셨어요. 궁금해라. 그렇게 사는 게 지겹고 싫었던 나의 조상님들은 왜 자꾸만 짝을 만나고 아이를 낳았을까요. 


나는 자주 유전자에 발목을 질질 끌리고 서른이 지나고 보니 가슴 위에 돌을 얹고 살았음을 알게 되어요. 세상에 날개 달고 태어난 사람들도 있었어요. 나는 너의 유전자를 이해해. 하지만 나의 조상들은 왜 그랬을까. 나는 왜. 궁금하고 궁금해요. 일단 아버지는 김해 김 씨니까 내겐 김유신과 김수로 왕과 인도에서 건너왔다는 왕비의 유전자가 아주 조금 묻어있을 거예요. 인도에서 배를 타고 넘어와서 아이를 여럿 낳고 불교를 퍼뜨리고 삼국을 통일했다는데 나는 지금, 내성발톱이 자꾸만 신경 쓰입니다.

© mparzuchowski, 출처 Unsplash


그럴 땐 명상을 하고 절을 드려요. 가끔 눈물이 솟구쳐요. 엎드리고 일어서는 내가 너무 감동스러워요. 발바닥이 따끈해지고 목덜미에 땀이 눈물처럼 흘러요. 


나는 두개골을 쩍 쪼개며 새로 태어납니다. 너는 돌을 지고도 살아왔잖니. 누구보다 질긴 것아. 네가 잘하는 것은 견디는 것이란다. 양파 세포를 관찰 못 했어도 양파는 달군 팬 위에서 달콤해져. 오늘 하루도 그런 거란다. 글 하나에 돌을 조각조각 내어 떨어뜨려요. 그리고 돌을 지고도 삼국 통일을, 배를 타고 먼바다를 나갈 수 있음을 이제야 알아요. 매일 해나가다 보면 내 유전자는 오늘도 잘 쓰였고 잘 닦았고 잘 먹고 잘 잡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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