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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그라미 Aug 23. 2021

일폭십한만물부장(一暴十寒萬物不長)​

하루 햇볕을 쬐고 열흘이 추우면 만물이 자라지 못한다.

일폭십한만물부장(一暴十寒萬物不長)


맹자(孟子)의 고자상(告子上)에 나온 말입니다. 전국시대 제(齊) 나라의 왕이 된 제선왕(齊宣王)은 뛰어나거나 매력적인 군주는 아니었어요. 나라가 부강해지자 술과 여색에 빠져지내며 화려한 궁궐을 짓게 하고 풍악과 잔치를 즐기는 등 허영심에 도취된 생활을 일삼았습니다. 물론, 자신의 귀를 이롭게 하며 궤변을 일삼는 사람들을 가까이 둔 것은 당연했죠. 이때 재상 전기(田忌)가 아무리 충언을 해도 제선왕이 듣지 않자  울화병을 앓고 죽을 지경이었다고 합니다.


한때 맹자는 제나라의 객경(客卿)으로 있으면서 왕도정치를 설파하지만 제선왕은 맹자의 기대를 완전히 충족시켜주지 못했습니다. 종리춘과 같은 현명하고 똑똑한 여인을 왕후로 들일 정도로 타고난 어진 성품과 총명을 가지고 있음에도 제선왕은 허영심과 오만함을 떨쳐버리지 못했던 것입니다. 맹자는 그에게서 잠시 희망을 엿보았지만 다시 제자리로 돌아가는 것이 안타까워 말한 것입니다.


일일폭지 십일한지

一日暴之十日寒之


“왕이 지혜롭지 못한 것을 이상하게 여길 필요가 없다. 비록 천하에 쉽게 살아나는 식물이 있을지라도 하루 정도 햇볕을 쬐고 열흘을 차가운데 둔다면 살아날 것이 없을 것이다. 내가 왕을 만나는 일이 드문 데다가, 내가 물러나면 차갑게 하는 사람들이 모여드니, 내가 비록 싹이 나게 한들, 어떻게 자랄 수 있단 말인가? ”


여기서 일일폭지십일한지( 一日暴之十日寒之)가 줄여져 일폭십한(一暴十寒)이 되었습니다. 아무리 잘 자라는 초목도 하루 햇볕을 쪼이고 열흘 동안 추운 곳에 놓인다면 당연히 자라지 못합니다. 이것은 자연의 섭리이자 누구에게나 해당되는 말이기도 합니다.





따뜻한 베란다에 두었던 화초가 추위를 견디지 못하고 시들해집니다. 실내로 옮기더라도 예전의 모습을 찾는 데는 많은 시간이 필요한데 사람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특히 권력의 중심부로 향할수록 주위에는 달콤한 아첨꾼들이 모이기 쉬운만큼 초심을 지켜내기란 여간 힘든 것이 아닌데요. 권력을 두려워하는 인간의 본성 때문에 쉽게 충심을 담은 충고를 하기란 역시 쉽지 않습니다. 그러니 권력에 아부하는 사람들이 늘어가고 진심 어린 충언을 하는 사람들을 불편하게 여겨 멀리하게 되는 것이 오히려 자연스럽기까지 합니다. 이렇게 하루 이틀 지나다 보면 처음의 당당하고 위용 있는 모습은 온데간데없어지고 귀가 얇아져 듣기에 좋은 말만 골라 듣는 연약한 심지가 되어버립니다.


마음이 달라지면 외형도 달라집니다. 그 사람의 모양과 모습이 바뀌는 것이죠. 그래서 40대 이후가 되면 자신의 얼굴에 책임을 져야 한다고 하는데요, 물론 자주 사용하는 얼굴 근육이 굳어지는 까닭도 있지만 마음의 상태가 얼굴에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햇볕을 쬐지 못한 식물이 시들시들해지고 줄기와 잎사귀가 연약해지는 이치와 같습니다.


우리의 삶을 들여다봐도 마찬가지입니다. 좋은 습관을 들이기 위해 매일 꾸준히 노력하다가도 단 하루라도 게을리한다면 그 게으름이 독이 되어 금세 온몸에 퍼지고 맙니다. 그리고 다시 좋은 습관을 이루기 위해 배의 노력이 필요한 이치입니다.


맹자가 제선왕의 어짐과 총명함을 아꼈지만 자신의 충언을 멀리하고 아첨에 귀를 기울이는 모습을 안타까워한 마음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제선왕의 뒤를 이은 제민왕은 역사상 포악한 군주로 이름을 떨치고 있는데, 이 또한 자신의 귀를 달콤하게 한 이들을 가까이한 결과가 아닐까요? 아무리 어질고 총명함을 타고났다고 해도 주변에 햇볕을 가리는 차가운 이들만 존재한다면 기운이 막혀 올바른 길을 선택하기란 어렵습니다.


개개인의 삶에서도, 특히 정치계와 공무원들의 삶에서도 이 한마디는 꼭 기억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혹여 따뜻한 햇볕을 막는 감언이설이나 게으름 같은 차가운 환경을 그대로 두고 있는지 말이죠. 나를 살피고, 올바른 사람을 곁에 둘 수 있는 과감한 결단이 항상 필요하지 않을까요.


하루 햇볕을 쬐고 열흘이 추우면 만물이 자라지 못한다.
일폭십한만물부장[一暴十寒萬物不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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