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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삶은 계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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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그라미 Aug 06. 2024

나의 갱년기는 그렇게 지나갔다


갱년기가 안 올 줄 알았다.


그러나 5년 전 무릎 대퇴골 속에 자란 주먹만 한 종양을 꺼내는 대수술과 자궁에 자란 커다란 물혹을 떼내면서 자궁까지 드러내는 수술을 하면서 갱년기가 찾아왔다.



병원에서 퇴원한 때는 폭염이 내리쬐는 한여름이었다. 그러나 내 몸은 만신창이가 되었는지 고장 난 기계처럼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되지 않았다. 땀을 빼질 빼질 흘리는 남편과 달리 나는 오한이 느껴지며 순식간에 냉탕에 들어간 느낌이 들어 오들오들 추위에 떨고 있었다.



에어컨을 꺼버리고 무릎담요를 꺼내 몸을 감쌌다. 온기가 퍼지는 것이 느껴졌다. 잠시 후 체온이 안정을 찾자 이번에는 열이 확~ 오르면서 가슴까지 벌렁이도록 숨이 찬다. 



어라?

이건 뭐지? 



순간 나에게 찾아온 갱년기를 마주하게 되었다. 말로만 듣던 갱년기였다. 말도 못 붙일 정도로 감정이 각박해지고 우울해지는 등 극도의 기분 변화와 체온 변화, 신체 변화가 찾아올까? 나는 어떤 색깔로 갱년기를 마주할까? 긴장되는 순간이었다. 



하루에도 수차례 아니 수십 번을 담요를 덮었다 풀었다를 반복했다. 남편은 어느 춤에 장단을 맞춰야 할지 몰라 안절부절못하며 내 기분이 상하지 않도록 수시로 안부를 물어본다. 그래도 감정의 나사가 풀리지 않았기에 다행이다. 그저 갑작스러운 체온 변화가 재미있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갱년기인가 봐

가슴이 두근거린다.


설렘이 아닌, 

기대했던 것을 이루지 못할 것 같은 긴장감이다.


더 큰 행운이 내게 올 거라는 착각에

가진 돈을 도박판에 몽땅 건 사람처럼...


도무지 안정되지 않는

긴장감이 온몸을 휘감는다.




자궁을 적출하고 강제 생리가 종결된 후

여성성을 잃었다는 것보다 생리가 끝났다는 것에 더 신이 났다. 



내 몸에서 무언가 빠져나가는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무겁고 퀴퀴하고 습한 시간들이 다시는 찾아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집에 산더미처럼 쌓여있던 생리대를 주변 지인들에게 모두 나눠주었더니 반색을 하면 받아 갔다. 내 몸의 한 부분이 편안해지고 비워진 것처럼 집 안에 쌓였던 여성성을 상징하던 한 짐도 모두 사라졌다. 



그러다 문득, 나와 남편의 DNA를 물려받은 씨앗을 더 이상 낳을 수 없다는 생각에 왈칵 눈물이 쏟아졌다. 이렇게 둘 만 남겨질 줄 알았다면 그때 아이를 지우지 말았어야 했다. 아마 태어났더라면 아들이었을 게다. 난 그렇게 믿고 있다.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몰려왔다.

내 지나온 과거, 현재 그리고 앞으로의 미래를 통째로 보여주려는 듯 생각은 밤새 머릿속을 헤집고 돌아다니며 긍정과 부정 사이를 왔다 갔다 저울질하고 있었다.



덕분에 밤잠이 많던 나는 뜬눈으로 밤을 지새우며

되도록 긍정과 희망을 바라보려 안간힘을 썼다.



퀭한 눈으로 아침을 맞은 나를 보고 남편은 집을 떠나자고 말했다. 아무 생각 없이 산과 바다를 바라보며 신체를 피곤하게 돌아다니는 것만큼 좋은 것은 없다고... 그렇게 우리는 수시로 집을 떠나 여행을 즐겼다.



그래서일까? 피곤해진 덕분에 언제나 먼저 곯아떨어져 버린 나는 

평범한 일상으로 다시 돌아왔다.



갱년기에는 가족의 보살핌과 관심, 사랑이 중요하다고 한다. 그 말이 사실이다. 나 역시 남편의 도움이 아니었다면 그렇게 쉽게, 빠르게 갱년기를 통과하지 못했을 것 같다. 지나고 보면 아무것도 아니지만 그 모든 과정이 내 삶의 소중한 단편이었다. 





갱년기


누워있어도 도무지 잠이 오지 않는다.

심장박동 소리는 더 가까이,

더 크게 울리며 고동친다.


하루에도 수십 번,

고열이 올랐다가 식은땀이 가슴골을 타고 흐른다.


이러다 병이 날 것 같아...

몇 번이고 숨을 고른다.

한숨은 전염된다기에 되도록 조용히...


갑갑해...

나 왜 이러고 있는 거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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