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사 입사준비 14
1896년 7월 9일, 시카고 미국 민주당 전당대회에서는 역사상 가장 유명한 연설 가운데 하나로 남아있는 금십자가(Cross of gold) 연설이 이루어졌다. 당시 민주당의 대통령 후보였던 윌리엄 J. 브라이언은 "두 가지 발상의 정부가 있다. 부자들을 더욱 번창하게 하면 그들의 번영이 위에서 아래로 새어 나온다고 믿는 사람들이 있다. 반대로 다수의 풍요가 모든 계층으로 차오르리라고 믿는 것이 민주당의 구상이다"라며 서민들의 주머니를 얇게 만드는 당대의 금본위제 경제정책에 강하게 반대하였다. 그가 이 연설에서 사용한 새어 나온다(Leak-Through)라는 표현이 낙수효과의 유래다.
낙수효과란 대기업 및 부유층의 소득이 증대되면 더욱 많은 투자, 소비가 이루어져 경기가 부양되고 전체 GDP가 증가하면 저소득층에게도 혜택이 돌아가 소득의 양극화가 해소된다는 논리에서 출발한 경제학적 가설이다. 이 이론은 컵을 쌓아두고 그 위에 물을 부으면 위에 놓인 컵이 찬 이후에는 아래로 물이 흘러 아랫컵을 채우는 것처럼 한 사회의 자본 역시 상위집단에서 하위집단으로, 선도집단에서 후발집단으로 흐를 것이라는 낭만적 기대를 전제하고 있다. 형평성보다는 효율성에 중점을 두고 있는 이 이론은 미국은 물론 여러 개발도상국 지도자들에 의해 사회불평등과 대기업 위주의 경제정책을 정당화하는 논리로 신봉되어 왔다.
멀리 갈 필요없이 한국의 경우만 해도 지난 수십년간 대기업, 대도시 위주의 경제정책을 시행해왔으며 그 배경에는 선도집단의 성장이 사회 전반의 혜택으로 돌아올 것이라는 낙수효과식의 순진한 기대가 자리잡고 있었다. 지난 군부정권의 경제정책 뿐 아니라 이명박 정부의 '비지니스 프렌들리' 정책들과 박근혜 정부의 친기업적 행보가 대표적인 사례다.
그러나 한 사회의 자본이 물처럼 자연스럽게 위에서 아래로 흐를 것이라는 기대는 순진한 환상에 불과하다. 제 몸을 다 채우면 물을 아래로 흘려보내는 컵과 달리 인간의 욕망엔 끝이 없으며 대기업과 중소기업, 기업과 가계, 상위소득자와 하위소득자 사이의 구조적 불평등이 자본이 자유롭게 순환하는 것을 억제하고 있기 때문이다.
낙수효과가 거짓이라는 증거는 이미 너무나 많다. 지난 2007년부터 2012년까지 한국의 실질임금상승률은 2.3% 하락했다. 실질임금상승률이란 명목임금상승률에서 물가상승률을 뺀 것으로 이 수치는 지난 5년간 한국 노동자들이 받은 임금의 실제 가치가 2.3% 줄어들었다는 것을 뜻한다. 주목할 만한 점은 같은 기간 노동자들의 생산기여도를 뜻하는 실질노동생산성은 10% 가까운 지속적인 증가세를 보였고 기업소득 역시 연 8%씩 증가해 10대 재벌은 500조원이 넘는 돈을 사내유보금으로 쌓아두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는 것이다. 이와 같이 기업소득증가율과 가계소득증가율의 커지는 격차는 낙수효과가 허구임을 입증한다.
문제는 우리 사회의 자본이 수출에서 내수로, 기업에서 가계로, 대기업에서 중소기업으로 자연스레 흘러가지 못한다는 데 있다. 기업과 부자의 욕심에는 끝이 없는데 정부가 낙수효과에 기반한 친기업적 정책을 추진하다보니 자본은 기업과 부자들의 주머니에 고여 아래로 흐를 줄을 모른다. 기업의 자산이 갈 수록 증가함에도 비정규직은 늘어나고 중소협력업체의 경영은 어려워지며 사회양극화가 심화된다는 사실이 이를 방증한다. 이런 상황 속에서 낙수효과를 기대하는 것은 나무 아래에서 열매가 떨어지기를 기대하며 입을 벌리고 있는 것과 다르지 않다. 모름지기 열매를 바란다면 나무를 흔들어야 한다. 마찬가지로 고여있는 자본이 흐르길 바란다면 자본의 흐름을 막고 있는 욕심의 고리를 흔들어 부숴야 할 것이다.
2001년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조지프 스티글리츠 컬럼비아대 교수는 "낙수효과는 대부분의 나라에서 없는 것으로 분석됐다. 최상위 계층에게는 높은 세율을 적용하는 것이 불평등을 완화하는데 기여한다"고 말했다. 낙수효과 이론은 사실로 검증된 적이 없다. 그리고 이 이론이 잘못되었다는 근거는 지금 이 순간에도 사회 곳곳에서 비명처럼 흘러나오고 있다. 낙수효과는 거짓이다.
2014. 7. 17. 목요일
김성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