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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칼럼

내 인생 가장 행복했던 하루

언론사 입사준비 18

by 김성호

내 인생 가장 행복했던 하루가 언제였을까 하는 물음을 앞에 두고 한참을 고민했다. 마땅히 행복했다고 할 만한 순간들이 떠오르지 않은 탓이다.


행복은 일시적인 기쁨이나 희망, 흥분과는 달리 만족감이 지속되는 상태를 가리킨다. 그런데 만족감이 일시적인 감정을 넘어 지속되는 경우는 매우 드물고 바로 여기서 행복의 딜레마가 발생한다. 테니스 선수 로저 페더러가 그토록 바라던 우승컵을 들어올려도 기쁨은 2초 이상 지속되지 않는다고 말한 것도, 움베르토 에코가 행복을 기쁨이 네 시간 이상 지속되는 상태라 정의한 것도 이러한 이유에서였다. 내 경우에도 행복감이 오래 지속되는 경우는 드물었다. 행복감을 가져다주는 어떤 사건에도 나는 곧잘 적응했고 순간은 쉬이 잊혀져 지속되지 못했다. 결국 행복이란 행복감을 당연시하지 못하도록 적응시간을 연장할 수 있느냐에 달려있는 것이다.


내 인생에서 손꼽을 만큼 행복했던 하루가 손꼽을 만큼 적응하기 어려웠던 하루였던 것도 이 때문이다.


나는 2011년 4월 8일을 아직도 생생히 기억한다. 평소보다 30분 일찍 기상해 혹여라도 선임들이 깰까 걱정하며 분주히 짐을 챙기던 일을, 지휘관에게 신고하고 휴가자들을 마을로 데려다 줄 차 안에서 목을 빼고 선탑자를 기다렸던 순간을, 서울로 가는 버스 안에서 창 밖으로 빠르게 스쳐지나가는 부대밖 세상의 풍경을 눈 안에 가득 담았던 것을 기억한다. 그날은 내 군생활 첫 번째 휴가일이었다. 늦은 나이에 군에 입대해 GOP 근무에 자원하고 매서운 추위와 험한 지형 속에서 다섯 달을 버티고서야 얻어낸 4박5일의 귀한 휴가, 그 첫 날이었다.


가장 가까운 마을까지도 차를 타고 한 시간 가까이를 나가야 하는 고립된 소초에서 나는 GOP 초병으로 근무했다. 북한과 마주한 철책을 지키며 온도계마저 작동하지 않는 추위를 견디고 최소한의 취침시간도 보장되지 않는 일상을 견뎌내는 것이 나의 일이었다. 그곳에선 누구도 웃지 않았고 장교부터 말단 병사에 이르기까지 오직 버티고 견디는 이들만이 존재했다. 돌이켜보면 하루를 어떻게 보냈을까 절로 까마득해지는 그곳에서 다섯달을 지낸 끝에 얻은 휴가 첫날을 어떻게 잊을 수가 있겠는가.


군 생활 동안 가장 기억에 남는 하루이기도 했던 그 날, 사실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부대 특성상 휴가를 나가기가 여의치 않아 입대 7개월 만에 얻은 금쪽같은 휴가였지만, 그래서 온갖 계획을 세우느라 며칠을 고민했을 휴가였지만 나는 정말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집에 돌아와 군복을 벗고 두터운 이불 몇 겹을 몸에 휘감은 채 멀뚱히 누워 하루를 보냈다. 지금 이 시간에 부대원들이 무얼 하고 있을지가 생생하게 그려졌고 내가 그곳에 있지 않다는 사실이 좀처럼 믿어지지 않았다. 몇 개월 만에 처음으로 하루가 온전히 내 것이 된 것만 같았다.


좀처럼 적응되지 않는 따스함과 여유로움, 편안함을 느끼며 나는 저녁이 되어 부모님이 돌아오실 때까지 온전히 혼자만의 하루를 만끽했다. 가파른 산길을 올라 근무지로 투입할 일도, 추위와 싸우며 벽에 머리를 박을 일도, 졸음을 견디며 간부의 순찰을 경계할 일도, 괴팍한 선임들에 시달릴 일도 없는 그야말로 적응할 수 없는 행복한 하루였다.


보통 사람들은 상상하기 어려울 만큼 극적인 사건이 일어나거나 꿈에 그리던 목표가 이루어지거나 할 때 행복감을 느끼리라 생각하는 듯하다. 그러나 내 경우엔 가장 적응하기 어려웠던 하루가 가장 행복했던 하루였다. 고작 4박5일의 신기루 같은 휴가였기에, 적응할 수 없고 적응해서도 안 되는 시간이었기에 나는 마음껏 행복할 수 있었다.



2014. 8. 11. 월요일

김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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