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뉴스 까임, 베네수엘라 침공과 할리우드 영화들
3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지시로 미국 특수부대가 베네수엘라 대통령 니콜라스 마두로와 그 아내인 법무장관 실리아 플로레스를 체포해 미국으로 귀환하는 일이 발생했다. 마두로는 베네수엘라를 반미 사회주의 국가로 변모시킨 우고 차베스의 후계자로 대통령 권한대행이던 2013년부터 장기집권을 이어온 독재자다.
사람들은 말한다. 마두로의 구속은 베네수엘라 민중이 바라는 바라고, 그가 제 나라의 민주주의를 망치고 시민을 억압한 독재자라고.
빼놓을 수 없는 한 가지 사실 더. 이번 작전으로 국제사회 주요한 산유국이자 중국이며 러시아 등 잠재적 위협국가와 우호적 관계를 맺고 있던 베네수엘라를 사실상 미국의 영향력 아래 둘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점을 무시할 수 없다. 중국과 러시아에 대한 미국 주도의 경제제재에도 불구하고 상당한 석유를 비밀리에 잠재적 적대세력에 공급해왔다는 의혹이 베네수엘라에 주어졌던 게 사실이다. 베네수엘라가 다른 중남미 국가들과 마찬가지로 미국의 영향력 아래 놓이게 된다면 에너지를 중심으로 하는 세계 판도에서 미국의 위상은 전과는 크게 다른 무엇이 될 테다.
베네수엘라 침공, 할리우드 영화로 바라보면?
그러나 우리는 생각해야 한다. 한 명의 세계 시민으로서 20세기 두 차례 큰 전쟁의 결과로 자리한 국제질서를 이번 미국의 침공이 공식적으로 파탄케 했다는 사실을 말이다. 9·11 테러 뒤 조지 부시가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를 연달아 침공하면서도 형식적으로나마 UN의 승인을 받았거나 받으려 했다는 것을 고려하면 이번 사태의 문제를 확인할 수 있다. 국가 간 무력충돌의 기준이 되는 UN헌장 51조는 오로지 '회원국에 대한 무력 공격이 발생할 경우(armed attack occurs against a Member of the United Nations)'에만 개별적, 집단적 자위권을 인정한다. 요컨대 군대를 동원한 공격은 방어의 목적으로만 허용된다. 선빵을 맞아야만 하는 것이다.
미국은 타국에 대해 선제 타격 없는 침공을 감행해 대통령과 법무장관을 무단으로 체포했다. 국제법을 준수하거나 최소한 합법이라 우기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았다. 그러나 놀랍게도 여론은 이를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다. 두 차례 전쟁의 참극을 기억하는 옛 사람들이 국제기구와 국제법을 세워 참극을 방지하려 했던 일을 이제는 기억하는 이가 얼마 남아있지 않은 때문일까.
'씨네만세'는 그간 꾸준히 이 같은 상황을 경고해왔다. 대중문화, 그 대표주자인 영화에서부터 달라진 인식, 사그라든 경계심이 엿보인 때문이었다. 특히 미국 대자본이 들어간 할리우드 영화가 국경을 벗어나 이뤄지는 무력충돌을 다루는 시각이 전과는 완전히 달랐단 점을 주의해야 한다. 비판은 찾아볼 수 없고 심지어 시원하고 멋지다 찬사를 보내는 모습까지 잇따랐다. 미국이 아니라 한국, 나아가 전 세계적으로 그와 같은 평가가 잇따랐다. 두 차례 전쟁 뒤 인류가 구축한 국제질서의 가치를 모조리 잊은 듯 보였다.
지금으로부터 40여 년 전, <람보 3>는 완전히 변해버린 국제정세와 미국의 태도, 또 비평이며 대중의 감각을 확인하게 한다. 주인공 존 람보(실베스터 스텔론 분)는 냉전 기간 중 소련 영토에서 작전을 수행한 뒤 사실상 은퇴해 태국 불교 사원에서 은둔 중이다. 그런 그에게 미국 특수부대 지휘관이 찾아와 아프가니스탄으로 가서 그곳에서 세를 넓히는 러시아를 상대로 한 임무를 수행할 것을 제안한다. 람보는 제안을 거절하지만 그에게 손을 내밀었던 지휘관 트로트만 대령(리처드 크레나 분)이 작전에 실패하고 붙잡혔단 사실을 알고 결국 아프가니스탄으로 떠나게 된다.
그곳에서 람보는 말 그대로 람보스러운 활약을 이어간다. 그의 상대들은 그야말로 초토화된다. 상대는 소련군이고, 람보를 지원하는 건 그에 대항하는 현지 게릴라 무자헤딘이다. 이들이 미국이 공급한 로켓이며 소총을 들고 소련병사들과 죽고 죽이는 전투를 벌이니, 이를 대리전이 아니라 한다면 무엇이겠나. 당시 무자헤딘은 자국에 침탈한 소련에 용감히 맞서 싸웠으니 국제적 지지를 받았다. 반면 소련은 9년이 넘는 전쟁 수행 기간 동안 베트남전의 소련판 침탈전이란 비난을 피하지 못했다.
그러나 <람보 3> 개봉 뒤 쏟아진 비판은 제작진의 예상과 다른 것이었다. 국제법을 완전히 무시한 채 타국 전쟁에 무단으로 들어간 영화 속 미군과 람보의 태도가 부적절하다는 건 주요한 비판점이 됐다. 당시 세계 경찰을 자임하며 서아시아 일대에서 세력을 넓혀가던 미국이 국제사회의 결정을 무시하고 일방적 정의감에 도취될 수 있다는 위기감 또한 제시됐다. 백인이 가난하고 열악한 아시아인들을 구제할 수 있다는 무비판적 오리엔탈리즘 또한 지적됐다.
9·11 테러 뒤 달라진 자세, 영화는 말하고 있었다
그로부터 20여년이 흐른 뒤는 전혀 다른 작품들이 쏟아지기 시작한다. 명작 전쟁영화로 꼽히는 <에너미 라인스>와 첩보영화 <스파이 게임>을 대표주자로 언급할 만하다. 두 작품은 모두 2002년 작으로, 바로 전년도에 있었던 9·11 테러의 자장 아래 있다. 두 영화는 변화한 미국, 나아가 할리우드의 자세를 반영한다. 배경은 모두 미국이 아니다. 미국 본토에서 전쟁이란 상상할 수 없는 것이니까. 대신 두 영화는 국경 너머 타국에서 위협받는 미국의 지위를 보인다.
<에너미 라인스>에서 배경은 내전 중인 보스니아다. 정찰 비행 중이던 미군 조종사(오웬 윌슨 분)가 적진에 고립돼 위험에 처하자 자국군을 투입해 그를 구해오는 미 해군 제독(진 해크먼 분)의 결단력을 영웅적으로 묘사한다. 이 과정에서 우려를 표하는 NATO(북대서양조약기구)나 UN 측 관계자는 겁쟁이거나 답답한 관료적 특성을 드러내는 이들로 그려질 뿐이다. 국제법에 대한 고려는 전혀 없다. 자국민 우선, 어떠한 상황에도 정의를 구현하는 미국의 멋짐이 강조된다. 놀랍게도 영화 개봉 뒤 <람보 3>가 마주한 비평가며 대중의 비판은 없었다. 누구도 두 작품이 같은 문제를 갖고 있단 사실을 기억하지 못하는 듯 보였다.
<스파이 게임>은 더욱 심각하다. 불법 간첩 혐의로 중국 감옥에 수감된 공작원 비숍(브래드 피트 분)을 구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선배 뮈어(로버트 레드포드 분)의 이야기인 영화는 그의 계획이 성공해 미군이 군을 투입해 중국 교도소를 타격하는 이야기를 다룬다. 국지전조차 일어나지 않은 상황에서 중국 자국 법에 따라 명백한 스파이행위를 한 미국인을 무력을 동원해 구하는 것이다. 선제타격 비슷한 무엇도 없었다. UN헌장 상 자위권이 논의될 여지가 아예 없는 것이다. 그럼에도 영화가 어찌나 감동적으로 그를 그리는지. 물론 이번에도 어떠한 비판도 없었다.
영화비평이 갈수록 미학 이외의 지점에 무지해지며 수준 또한 하락하고 있음을 고려하더라도 수준급 평자조차 그와 같은 해석을 내놓지 않았단 사실은 민망하기만 하다. 무엇보다 세계 유일의 분단국으로 미군이 곳곳에 주둔하며 전시작전통제권까지 가지고 있는 한국에서조차 이토록 무도하고 오만한 할리우드의 태도변화를 인식조차 하지 못한단 건 주목할 대목이었다.
비판 없이 수용됐던 오만, 오늘의 사태를 불렀다
지난 2022년 '씨네만세'에서 발표한 <탑건: 매버릭>에서 나는 아예 이를 중점적으로 다루었다(관련기사: https://star.ohmynews.com/NWS_Web/OhmyStar/at_pg.aspx?CNTN_CD=A0002847125&CMPT_CD=P0010&utm_source=naver&utm_medium=newsearch&utm_campaign=naver_news). '끝내주는 영화 '탑건: 매버릭'의 야만과 오만'이란 제하의 기사는 이 영화가 가진 탁월함에도 불구하고 노골적으로 중국과 러시아를 적국으로 암시하는 태도와 국제법을 짓밟는 전개를 비판하였다. 아무리 잠재적 위협이 되는 군사시설이라 할지라도 전투기와 미사일로 국경 너머 타국 핵시설을 타격해 제거하는 이 영화의 결론은 결국 3년 만에 러시아며 중국이 아닌 이란을 상대로 현실이 되고 말았다.
무도하고 무식한 태도는 그저 미국만의 것이 아니다. 2022년 1월, 윤석열 당시 대통령 후보자는 북한의 핵미사일 도발에 대응하기 위해 선제타격까지 할 수 있다고 무리한 발언을 한 바 있다. 같은 논리라면 영화가 러시아와 중국을 암시적 대상으로 했듯이, 또 미국이 현실 속에서 이란에게 그리 했듯이, 또 지난해 이스라엘이 시리아를 선제 타격했듯, 얼마든지 한반도를 대상으로 자위권을 넘어선 전쟁이 이뤄질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당시 한국 비평계는 기록적 흥행을 한 <탑건: 매버릭>에 대해 이와 같은 견지의 비평을 단 하나도 내놓지 않았다. 그야말로 무지하고 무책임한 일이다.
아예 문제의식이 사그라든 상황이 오늘의 사태를 불러왔다. 트럼프는, 미국은 아무렇지 않게 베네수엘라를 침공해 그 대통령을 붙잡아 자국으로 돌아왔다. 그 과정에서 경호부대와 민간인 포함 수십 명이 살상된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고도 UN이며 국제사회에 승인이나 추인을 구하려는 노력을 전혀 하지 않는다. 아니, 승인을 받을 구석조차 없다.
베트남을 침공하기 위해 자국 구축함이 선제 타격받았다는 통킹만 자작극까지 꾸며 명분을 만들었던 미국이다. 그러나 불과 60여 년 만에 그들은 더는 그 같은 명분이 필요하지 않음을 공공연히 과시한다. 돌아보면 영화는, 또 예술은 오늘의 일이 오고야 말 것임을 충분하고도 남게 보여주지 않았나. 그러나 불행히도 비평은 그를 미리 읽어내지 못하였다. 대중은 심지어 지금 이 순간에도 그 위험을 충실히 이해하지 못한다. 베네수엘라 한 나라의 독재자를 밀어내는 것보다 한 세기를 지탱한 국제질서가 무너지는 일이 더욱 중하다는 사실을. 한 나라가 정의롭고 못한 것을 판단하는 일이 국제법 위에 서면 사적복수가 횡행하는 무도한 사회와 다를 것이 없단 것을. 그저 한 명 영화평론가일 뿐인 내가 오늘의 뉴스를 괴롭게 읽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김성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