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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성호 Aug 12. 2022

야심이 묻어났던 자기복제, 결과는 실패

오마이뉴스 게재, <우는 남자> 영화평.

[김성호의 영화가난다 24] <우는 남자>

포스터 ⓒCJ 엔터테인먼트


2006년 <열혈남아>, 2010년 <아저씨>에 이어 4년 주기로 내놓은 이정범 감독의 3번째 장편 <우는 남자>다. 그는 다시 4년 후인 2018년 <악질경찰>을 선보였으니 4년 주기설은 정설이 되는 분위기다.


그의 작품 중에서 <우는 남자>는 개봉 전 가장 주목받은 영화다. 전작이 원빈 주연의 <아저씨>로, 한국액션의 기록할 만한 순간을 빚어낸 작품이기 때문이다. 원빈에 밀리지 않는 장동건을 주연으로 내세웠으니 이정범이 진짜 '물건'인지를 입증하는 작품이 되리란 평가가 많았다.


영화에서 장동건이 연기한 인물은 냉혹한 킬러 '곤'이다. 미네소타 사막에 홀로 남겨져 무정한 킬러로 성장한 곤을 수려한 외모의 장동건이 연기한다는 게 얼핏 어색하게 느껴지지만 원빈을 메마른 전직 특수요원으로 재탄생시킨 이정범이기에 기대가 적지 않았다.


영화의 도입에서 곤은 조직의 명령에 따라 임무를 수행하다 실수로 한 소녀를 죽인다. 죄책감에 괴로워하던 그에게 조직은 한국으로 가서 다른 인물을 살해하라는 명령을 내린다. 곤은 마지막 임무라는 조건으로 명령에 응한다. 한국에 온 곤은 자신의 타깃이 지난 임무에서 실수로 죽인 소녀의 어머니라는 것을 알고 내적 갈등을 겪는다. 곤은 결국 임무수행을 거부하고 그녀를 위협하는 조직의 마수에 맞서 총을 잡는다.


곤과 그가 지켜야 할 여인. ⓒCJ 엔터테인먼트


<아저씨>의 차태식과 <우는 남자>의 곤


<우는 남자>를 감독의 전작 <아저씨>와 비교하는 건 감상을 더욱 풍요롭게 하는 방법일 것이다. 단지 전작이란 점 뿐 아니라 두 영화가 상당히 비슷한 궤적을 그리고 있기 때문이다.


자신의 여자를 지키지 못했다는 원죄를 가진 남자가 옆집 소녀를 지키려 범죄집단과 맞선다는 게 <아저씨>의 설정이라면, <우는 남자>는 소녀를 죽인 죄책감을 가진 킬러가 그녀의 어머니를 지키는 내용이다. 한 여자를 지키지 못했다는 원초적 죄책감에 고통받던 남자가 다른 여자를 지켜내려 모든 걸 걸고 싸운다는 설정이 영화를 관통하는 기본적인 얼개라 할 수 있다.


그러나 두 영화가 모든 면에서 같은 건 아니다. 규모의 차이 말고도 차태식과 곤은 성격에서 결정적인 차이를 보인다. 우선 <아저씨>의 차태식은 2000년대 한국영화에서 가장 메마른 캐릭터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러닝타임 내내 단 몇 마디의 대사를 읊조린 게 전부였던 그는 영화 전체를 우수 짙은 눈빛과 무표정으로만 일관했다. 소녀를 구출하기 전까지 차태식에게서 표출된 감정이 오직 분노 뿐이었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그가 얼마나 건조한 인물이었는지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우는 남자>의 곤은 한 층 인간적인 캐릭터다. 아픔을 감춘 냉혹한 킬러이면서도 처음보는 소녀에게 웃음을 보이는 그에게서 관객들은 비현실적 건조함 대신 따스한 내면을 느낀다. 몰입할 수 없을 만큼 건조한 차태식의 폭력으로부터 역설적으로 카타르시스를 느낄 수 있었다면, 갈등하고 변화하는 곤에게선 공감과 연민을 느낄 수 있는 것이다. 실제로 곤은 비교적 많은 대사를 소화하며 다양한 표정을 선보인다.


차태식과 그가 지켜야 할 소녀. ⓒCJ 엔터테인먼트


변신보다는 선택과 집중했어야


액션 그 자체에 치중했던 <아저씨>에 비해 드라마의 양을 대폭 늘린 선택은 실패인 것처럼도 보인다. 신선하면서도 강렬한 액션과 압도적인 카리스마를 보여줬던 <아저씨>와 달리 엉성한 드라마에 많은 부분을 할애하며 캐릭터의 멋이 살지 못한 것이다. 규모와 드라마보다 선택과 집중이 필요했음을 알아차렸을 땐 이미 너무 늦고 말았다.


다만 모든 면에서 실망스러운 건 아니었다. 무엇보다 영화 중반부에 등장하는 장미아파트에서의 액션은 이 영화의 하이라이트라 해도 될 만큼 인상적이다. <아저씨>에서 보여준 신선함은 없었으나 다양한 무기를 통한 액션이 볼거리와 재미의 측면에서 나름의 맛을 냈다고 평가할 수 있겠다.


이정범 감독은 여전히 단 네 편의 영화만 찍은 중견 감독이다. 그의 다음 영화가 기대되는 이유다.



김성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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