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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성호 Sep 29. 2022

낙오와 굴복 사이, 아름다운 타협이 있었다

파이낸셜뉴스 게재, <프란시스 하> 영화평.

[김성호의 영화가난다 38] <프란시스 하>


▲ 프란시스 하 메인 포스터 ⓒ 그린나래미디어(주)

  

색채시대에 흑백화면으로 전하는 청춘 이야기. 화려한 색채로 가득한 21세기에 흑백영상의 의미는 무엇일까? 아마도 낭만적이고 편안한 어떤 감각일 것이다.


초창기 컬러영화로 손꼽히는 빅터 플레밍 감독의 1939년작 <오즈의 마법사>는 도로시가 살고 있는 현실세계를 흑백화면으로, 환상 속 마법의 세계를 컬러화면으로 표현했다.


이는 당시의 관객에게 흑백화면이 너무나 익숙했던 나머지 스크린에 비친 컬러가 오히려 비현실적으로 다가왔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로부터 80여년이 흐른 오늘의 관객들에게 흑백 화면은 오래되었거나 익숙하지 않은 것이 되어버렸다. 온통 총천연색 컬러를 넘어 비현실적 시각효과마저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는 요즘 <프란시스 하>는 상당수 관객들에게 흔치 않은 21세기 흑백영화로 기억될 작품이다.



▲ 프란시스 하 프란시스(그레타 거윅)와 소피(믹키 섬너) ⓒ 그린나래미디어(주)


방황하는 뉴욕의 청춘, 프란시스


<프란시스 하>는 누벨바그와 우디 앨런, 짐 자무시의 영화들이 그러했듯 불확실한 미래와 녹록치 않은 현실 가운데 방황하는 청춘의 단면을 다룬다. 배경은 뉴욕, 주인공은 스물 일곱의 프란시스(그레타 거윅 분)다.


절친한 친구 소피(믹키 섬너 분)와 함께 뉴욕에서 살아가는 프란시스. 무용단의 견습무용수인 그녀에겐 언젠가 정식단원이 되겠다는 꿈이 있다.


어느날 그녀는 만나던 남자에게 동거 제안을 받는다. 그에 대한 확신도 없고 소피와 둘이 살아가는 현실이 더 좋았던 프란시스는 그 제안을 거절한다. 그런데 아뿔싸, 남자친구와 헤어진 프란시스에게 소피는 다른 친구와 더 좋은 방을 구해 나가겠다는 소식을 전한다. 날벼락도 이런 날벼락이 없다.


▲ 프란시스 하 스틸컷. ⓒ 그린나래미디어(주)


<프란시스 하>가 친근하게 다가오는 세 가지 이유


연출을 맡은 각본가 출신 감독 노아 바움백은 절친한 친구 소피와 떨어져 프란시스가 겪는 여러 문제로부터 현실적인 뉴욕의 청춘을 애정 가득한 시선으로 그려낸다.


이 영화가 비추는 뉴욕의 스물일곱이란 사실 서울의 스물일곱, 그 청춘들과도 별반 다르지 않다. 20세기 말부터 시작된 신자유주의 기조 아래 국가 간 삶의 양식이 빠른 속도로 비슷해진 탓일 테다.


덕분에 <프란시스 하>를 감상하는 한국의 관객들은 장 뤽 고다르나 프랑소와 트뤼포, 우디 앨런의 영화에서 그려진 청춘의 모습보다 더욱 큰 공감을 동시대에 느끼는 행운을 누릴 수 있게 되었다. 이 영화가 친근하게 느껴지는 첫 번째 이유다.


영화의 가장 큰 매력은 캐릭터에 있다. 돈에 쪼들리고 게으른데다 어딘지 모르게 둔한 구석이 있는 프란시스에게서 우리는 어느 순간 스스로를 발견한다. 주머니 사정이 여유롭지 않고 가끔은 아무 것도 하지 않은 채 누워만 있고 싶으며 불확실한 미래 앞에 방황하는 대다수 미성숙(이라 쓰고 성숙해지고 있는 이라고 읽는다)한 청춘들에게 프란시스는 결코 타인이 아니다. 우리 자신의 모습이다.


자신과 다르게 잘 나가는 단짝 친구 소피에게서 프란시스가 느껴야 했던 감정을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이 거대한 도시에서 가까운 친구들이 내 옆을 지나쳐 하나 둘 앞서갈 때 우리가 느끼는 바로 그 감정이 프란시스를 짓누른다. 그 모습을 지켜보며 우리는 프란시스가 나와 다르지 않고, 내가 영화 속 그녀이기도 하단 사실을 직감한다.


프란시스는 예술한다는 부잣집 자제들과 함께 살며 그들과 다른 자신의 현실에 낙담한다. 자신을 이해하는 친구가 곁에 한 명도 없다는 현실에 문득 외로워하기도 한다. 심지어 그녀는 무용단에게 크리스마스 공연에 설 수 없다는 통보를 받고, 아예 무용수를 그만두고 서무일을 보라는 제안까지 듣는다.


뉴욕이라는 도시에서, 무용단에서, 친구들에게까지도 별 볼일 없는 사람이었던 그녀는 철저하게 혼자인 현실 속에서 낙담하고 방황한다. 프란시스라는 한 청춘의 이야기로부터 특별하고 싶지만 좀처럼 특별해지지 않는 우리네의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 이 영화가 친근한 두 번째 이유다.


프란시스는 현실과 타협하고 홀로서기에 성공한다. 무작정 떠난 파리 여행에서 아무런 성과도 얻지 못한 채 돌아왔지만, 그렇게 돌아온 뉴욕에서 조금 더 성숙한 그녀로 거듭나는 것이다. 돌아온 프란시스는 모교 기숙사에서 살며 아르바이트를 하고 무용단에서 서무일을 받아들여 무대에 오르는 대신에 다른 무용수들의 안무를 짠다.


꿈은 접었지만 그로부터 절망이 아닌 희망을 발견하는 프란시스. 영화는 친구들이 찾아온 무대에서 자신이 짠 안무로 공연을 성공시킨 그녀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녀의 타협은 꿈의 좌절이 아닌 현실에의 적응이며 삶의 진전이기도 하다. 원하는 모든 것을 이루진 못했으나 스스로의 능력으로 홀로서기에 성공한 프란시스의 현실적 성취는 이 영화가 친숙하게 다가오는 세 번째 이유다.


▲ 프란시스 하 스틸컷. ⓒ 그린나래미디어(주)

결단코 아름다운 프란시스의 타협


<프란시스 하>라는 제목이 어디에서 왔는지 밝혀지는 엔딩은 그녀가 이룩한 즐거운 타협을 상징한다. 서무일을 통해 번 돈으로 뉴욕에 자신만의 공간을 마련한 프란시스. 편지함 명패에 'Frances Halladay'라 적힌 종이를 끼워넣으려다 다 들어가지 않자 그녀는 종이를 접어 다시 끼워넣는다. 그러자 명패에 드러난 'Frances Ha'.


프란시스의 타협은 어쩔 수 없이 이뤄질 우리들의 타협이기도 하며, 이는 결단코 끝이 아닌 새로운 삶의 시작이다. 노아 바움백이 86분짜리 흑백영화에서 하고 싶었던 말도 바로 이것이었을 것이다.


뉴욕과 서울의 거리만큼 낯설었지만 또 더없이 가까웠던 그녀. 2021년 불확실한 시작을 염두하고 있다면 그녀를 만나길 추천한다.


▲ 프란시스 하 스틸컷. ⓒ 그린나래미디어(주)


■김성호 평론가의 브런치에도 함께 실립니다. '김성호의 영화가난다'를 검색하면 더 많은 글을 만날 수 있습니다. ★★★☆



김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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