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체로 못나서 가끔은 멋진 것
사람 찾아 떠나는 여행
인간이 합리적인 존재라고 생각하는 이를 믿지 않는다. 지금 내 눈 앞에 보이는 근육질 사내도 보이지도 않는 원자핵들과 그보다도 훨씬 작은 전자들과 실은 대부분이 없는 거나 마찬가지인 공간들의 결합일 뿐이며, 사실상 그가 내 앞에 있는 건지 없는 건지도 도통 모를 만한 것인데, 남들 허벅지 만한 팔뚝에 힘을 줘가며 인생이란 노력하는 만큼 발전하는 거라고 떠벌이는 꼴을 지켜보고만 있어야 하느냔 말이다. 내 머리론 도통 이해하지 못할 것들로 가득한 세상에서 그래도 나는 열심히 배우고 생각하려는 축에 속한다고 하겠는데 모로 봐도 생각이란 이따가 뭐먹을까 밖에 안 하는 듯한 인간들이 제가 합리적이고 고등한 존재인양 씨부렁댈 때 어처구니없는 마음을 갖지 않기란 어려운 일이다. 그러니까 짐빔과 예거마이스터와 바카디와 말리부와 깔루아와 베일리스와 온갖 싸구려 술을 깔아둔 이 바에서 나는 벌써 예닐곱잔을 마신 뒤이고 바깥은 덥고 습하고 안에는 예쁜 여자들과 농담따먹기까지 할 수 있는 것이어서 나는 여기가 나은지 바깥이 나은지를 고민하다가는 이런저런 잡생각에 이르고 만 터다.
세상을 가만히 지켜보면 인간이란 대체로 못나서 가끔은 멋진 것이다. 이곳, 그러니까 뀌년에서 내게 밥을 사준 어느 아저씨는 그저 안 유명한 저 나라 위인들을 이야기하는 외국인이 반가워서 거듭된 호의를 베풀었다. 그에 따르면 인간이 평생을 살며 길러야 할 미덕이란 인간애와 용기, 친절과 가족에 대한 사랑, 결단력과 포용심 같은 것들이다. 나는 물론 그가 무슨 말을 떠벌이는지 채 3퍼센트도 이해하지 못하였지만 내가 호찌민이나 박항서를 이야기하는 대신 보 따인과 레 반 주엣과 그들에게 절하는 사람들과 베트남의 골목길을 이야기했고 그가 그것을 듣기를 좋아하는 것 같았기에 어쩌면 그도 나와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겠거니 했던 것이다. 뭐 어떤가. 배부르고 등따시고 쌀로 빚은 백주가 있으면 되는 거지.
요컨대 나는 딱히 합리적인 인간이 아니다. 그리고 제가 합리적인 인간이라 믿는 자만큼 불합리한 종자가 없다고 믿는다. 세상을 사는 건 술 댓 잔 마신 뒤 말 안 통하는 외국의 밤거리를 홀로 걷는 것과 같아서 당장 어떤 일이 벌어질 지를 내다볼 수 없는 일이다. 운이 좋으면 강도인 줄 아는 이가 은인일 수 있고 떠오르는 말 하나 없어서 온갖 이름들을 아무렇게나 주워섬기고 그 덕분에 저녁식사와 술 대접까지 받고 번화가 싸구려 바에서 불현듯 지나간 실수들을 떠올리게 되는 것이다.
누군가는 생각하는 대로 세상을 살아간다고 믿고, 누군가는 그저 확률게임을 할 뿐이라고 말하는데, 나는 삶에 대한 인간의 무력함만을 확인할 뿐이다. 그게 또 그대로의 인생이니 나쁠 것도 없다.
2022. 9
김성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