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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성호 Sep 06. 2023

'협녀: 칼의 기억'이 기억될 수 없는 세 가지 이유

오마이뉴스 게재, <협녀: 칼의 기억> 영화평

[김성호의 씨네만세 74] '협녀: 칼의 기억'

▲ <협녀: 칼의 기억>의 포스터 ⓒ 롯데엔터테인먼트


순제작비 90억 원, 이병헌·전도연이라는 검증된 조합, 거대 배급사 롯데 엔터테인먼트의 든든한 지원까지. 성공으로 가는 탄탄대로가 눈 앞에 펼쳐진 듯했던 <협녀, 칼의 기억>이 개봉 닷새 만에 절망에 빠진 모습이다.


<협녀, 칼의 기억>은 개봉 첫날인 13일 7만 9801명의 관객을 동원하며 3주 앞서 개봉한 <암살>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기록으로 출발하더니 광복절 연휴 마지막 날인 16일에는 6만 1999명의 관객을 모았다. 박스오피스 1위인 <베테랑>의 10분의 1에도 미치지 못하는 성적이다. 주연배우 이병헌의 사생활로 인한 악재, 무협이라는 생소한 장르, 최동훈·류승완이라는 거물 감독과의 맞대결 등 부정적 요소가 적지 않았지만 그 성적은 예상보다 훨씬 초라한 수준이다.


이대로라면 4대 배급사가 나란히 내놓은 <암살> <베테랑> <협녀, 칼의 기억> <뷰티 인사이드> 가운데 꼴찌로 처질 수도 있는 상황. 이토록 큰 부진의 이유는 무엇일까.


주연 배우의 문제-문제가 많거나 정체되었거나

  

▲ 예전같지 않은 건 유백(이병헌 분)과 월소(전도연 분)만이 아니다 ⓒ 롯데엔터테인먼트


티켓파워는 맡은 배역을 충실히 소화해내는 역량과 함께 주연배우가 가져야 할 필수적 덕목으로 평가받는다. 많게는 한 주에도 10여 편의 영화가 동시에 개봉하는 치열한 경쟁구도 가운데 검증된 티켓파워를 지닌 배우의 존재는 배급사의 어깨를 한결 가볍게 한다. 물론 배우의 기본은 연기력이겠으나 이왕이면 다홍치마. 티켓파워를 무시할 수 없는 게 현실이다.


그런 의미에서 <협녀, 칼의 기억>은 주목받아 마땅한 영화였다. 이병헌과 전도연, 손꼽히는 젊은 여배우 김고은, 아이돌 출신 가운데는 그나마 눈여겨 볼만한 성과를 거두고 있는 준호, 안정된 연기로 뒤를 받치는 김태우·이경영 등 검증된 조연까지 말 그대로 갖출 것 다 갖춘 캐스팅이 아니던가. 특히나 영화를 이끄는 양대 축, 이병헌과 전도연의 존재감은 <협녀, 칼의 기억>을 다른 대작과 어깨를 나란히 할 만한 작품으로 여기게 하는 결정적 요소였다.


특히 이병헌은 동급최강이라는 수식어가 어울리는 훌륭한 배우다. 사생활과 관련한 논란으로 홍역을 치렀지만 그의 재능과 실력을 무시하는 사람은 찾아보기 어렵다. 이병헌의 필모그래피를 살펴보면 전도연과 함께한 <내 마음의 풍금>부터 박찬욱의 출세작 <공동경비구역 JSA>, 천만 영화 <광해, 왕이 된 남자> 등 평단과 관객을 동시에 사로잡은 성공작이 많다. 특히 김지운 감독과는 <달콤한 인생>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 <악마를 보았다>까지 세 편을 함께하며 인상적인 경력을 쌓아왔다.


어디 그뿐인가. 이병헌은 할리우드에 성공적으로 안착한 유일한 국내 배우로 보아도 무방하다. <스피드 레이서> <닌자 어쌔신>의 비가 있긴 하지만 <지 아이 조> 시리즈, <레드: 더 레전드> <터미네이터 제니시스> 등을 통해 할리우드 일류 배우들과 호흡을 맞춘 이병헌에 비할 바가 아니다.


올해 들어 그는 더욱 바빠졌다. 할리우드 흥행대작 <터미네이터 제니시스>에서 비중 있는 조연으로 활약한 데 이어 안소니 홉킨스, 알 파치노와 <비욘드 디시트>의 촬영을 마쳤고, 크리스 프랫, 덴젤 워싱턴, 에단 호크 등과 함께 <황야의 7인>도 촬영 중이다. 적어도 할리우드에서의 이병헌에겐 승승장구라는 표현이 어울린다.


하지만 국내 분위기는 전혀 다르다. <황야의 7인> 촬영 도중 입국해 제작보고회에 참석할 만큼 의욕을 보였으나, 그를 향한 시선은 냉랭하기 그지없다. 앞서 개봉한 두 대작에 비해 <협녀, 칼의 기억>의 오프닝스코어는 참담하고, '이병헌 때문에 영화를 보지 않는다'는 이들도 심심치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영화의 부진을 한 배우 탓으로 돌리는 건 가혹한 일이지만 이 같은 상황에 이병헌의 책임이 없다고 볼 수는 없을 것이다. 그가 이 영화에 출연한 모든 이들 가운데 가장 돋보이는 연기를 펼쳤다고 할지라도.


흥행에 관해서라면 전도연의 상황도 썩 좋지 않다. 한국 영화계에서 김혜수 등과 함께 특별한 위치를 점하고 있는 그녀지만 최근 작품 가운데는 성공작을 찾아보기 어렵다. <카운트 다운> <무뢰한> <집으로 가는 길>이 모두 손익분기점을 넘지 못했다는 사실이 이를 증명한다.


평생토록 유백을 증오하며 덕기를 그리워한 비련의 여인. 사랑에 눈멀어 저지른 자신의 잘못을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에게 업보로 짊어지게 한 이기적인 여자. 덕기의 그림이 제 모습을 드러내는, 어쩌면 영화의 하이라이트가 되어야 했을 장면이 오히려 실소를 자아내게 된 데는 월소라는 공감되지 않는 캐릭터의 영향이 절대적이었다. 온전히 스스로의 역량으로 불완전한 캐릭터마저 설득력 있게 표현할 자신이 없었다면 배역을 선택하는데 더욱 신중해야 했던 게 아닐까.


감독의 문제-대작액션 처음 찍어요

  

▲ 어설픈 건 홍이(김고은 분)와 율(준호 분)만은 아니다 ⓒ 롯데엔터테인먼트


영화는 감독의 예술이라고들 한다. 배우와 스태프에게 각자 표현의 영역이 있다고는 하지만 이 모두를 자기 영향 아래 두고 최종 책임을 지는 것은 감독이다. 일부 예외가 있긴 하지만 대개 뛰어난 감독은 뛰어난 작품을, 졸렬한 감독은 졸렬한 작품을 내놓게 마련이다.


박흥식 감독은 박광수, 허진호 감독의 조연출을 거쳐 <나도 아내가 있었으면 좋겠다>로 데뷔했다. 15년의 감독 생활 동안 이렇다 할 명작을 내놓지는 못했으나 잔잔한 드라마에 강점을 보인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그런 그가 대작 무협영화를 연출한다는 건 제작사와 감독 모두에게 쉽지 않은 도전이었을 것이다.


결과적으로 <협녀, 칼의 기억>은 박흥식 감독의 미숙함이 적나라하게 드러난 작품이 되었다. 이 영화에서 와이어를 타고 날아다니며 서툰 칼질을 하는 배우들의 모습은 세계적인 무술감독 원화평의 <와호장룡>이나 이연걸, 견자단이 주연한 <영웅>이 이룩한 경지가 얼마나 높은 것인지 새삼 깨닫게 한다. 무려 10년 이상의 시차를 두고 있음에도 이 영화들과 <협녀, 칼의 기억>의 기술적 차이는 엄청난 수준이다. 김고은의 대나무밭 액션이나 전각 아래서 벌어지는 처절한 칼부림 신이 <와호장룡>이나 <킬빌>의 아류처럼 느껴진 것도 이 때문이다.


영화는 액션이나 성장보다 남녀의 감정과 그들의 감춰진 사연에 집중하다 어느 순간 길을 잃었다. 익숙하지 않은 설정과 구성 속에서 감독은 이를 통제하지 못했고, 극 중 인물들은 관객보다 빨리 울고 괴로워하며 막장을 향해 치달았다. 지독한 사랑 이야기는 그냥 지독한 이야기가 되어버렸다.


개봉 시기의 문제-왜 하필 지금이야

  

▲ 한국영화 좀 보는 관객이라면 이젠 우리반 담임처럼 느껴질 스승(이경영 분) ⓒ 롯데엔터테인먼트


사실 <협녀, 칼의 기억>은 올여름을 겨냥하고 만들어진 작품이 아니다. 2012년부터 이어져 온 사극 전성시대 속에서 사극에 무협의 색깔을 입힌 개성 있는 작품으로 2014년 겨울 즈음 개봉할 것으로 예견된 영화였다. 만약 예정대로 지난겨울 개봉했다면 <국제시장> <기술자들> 등과 함께 흥미로운 대결구도를 이뤘을 것이다.


한국 영화계에 무협이란 장르가 씨가 마른 상황에서 나온 작품이라는 점이나 비슷한 시기 제작된 롯데엔터테인먼트 라인업(<역린> <해적: 바다로 간 산적> <간신>)을 놓고 보면 롯데엔터테인먼트의 투자가 어떤 방향으로 진행되었는지 짐작할 수 있는 흥미로운 기대작이기도 했다.


하지만 주연배우의 소송 등과 맞물려 영화의 후반 작업이 한없이 늘어졌고, 마침내 여름 성수기 롯데엔터테인먼트의 대표주자로 등장하기에 이르렀다. 더는 개봉을 늦출 수 없었고, 이병헌의 소송 사건이 사실상 마무리됐으며, 먼저 개봉한 출연작 <터미네이터 제니시스>가 무탈하게 흥행에 성공한 점이 영향을 미쳤다는 평이다.


함께 무대에 올랐거나 오를 작품으로는 일찌감치 천만 관객을 달성한 최동훈의 <암살>(쇼박스), 그 뒤를 맹렬하게 쫓고 있는 류승완의 <베테랑>(CJ엔터테인먼트), 곧 개봉할 <뷰티 인사이드>(NEW),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미션 임파서블: 로그네이션>(롯데엔터테인먼트) 등이 있다. 이 가운데 앞의 세 작품은 롯데엔터테인먼트의 <협녀, 칼의 기억>과 함께 한국 4대 배급사의 자존심을 걸고 치열한 대결을 벌이고 있다.


지난해의 승자가 CJ엔터테인먼트의 <명량>과 롯데엔터테인먼트의 <해적: 바다로 간 산적>이었다면 올해의 승자는 일찌감치 <암살>과 <베테랑>으로 귀결되는 느낌이다. NEW의 <뷰티 인사이드>가 아직 개봉하지 않았고 롯데엔터테인먼트가 <협녀, 칼의 기억>의 부진을 <미션 임파서블: 로그네이션>으로 메우는 모양새지만 천만 관객을 모은 <암살>과 그에 뒤지지 않는 흥행속도를 보이는 <베테랑>을 넘긴 아무래도 무리다.


지난해와 달리 포문을 연 쇼박스의 <암살>이 일찌감치 치고 나가며 성수기 관객이 초반 개봉작에 쏠렸다고는 해도 <협녀, 칼의 기억>의 부진은 단연 눈에 들어온다. 배급사로서는 일찌감치 흥행에 크게 성공한 경쟁작에 가려 언론의 주목도가 높지 못했다는 점이 아쉬울 것이다. 더욱이 경쟁작을 연출한 최동훈과 류승완 감독이 자신의 장기를 십분 활용한 것에 반해 박흥식 감독은 첫 액션 대작에 도전한 상황이라는 점도 불운하다.


주연배우로 인한 악재와 감독의 연출력, 좋지 못한 개봉 시기까지 <협녀, 칼의 기억> 관계자에게 올여름은 견뎌내기 힘든 계절일 것이다.

  

▲ 아무리 노력해도 대세에 영향이 없는 건 율(준호 분)뿐이었을까 ⓒ 롯데엔터테인먼트



김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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