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네시아 바탐 팜 스프링스 골프장 답사후기-
폭염의 절정인 8월 초순, 자정 무렵에 출발하는 싱가포르행 대한항공에 올랐다. 최종 목적지는 인도네시아 바탐이다. 여름 출장은 시원한 곳이 제일인데 적도를 향해 가다니? 싱가포르에서 바탐까지 40여분 뱃길, 파란 아침 하늘과 짙푸른 바다가 수평선에서 만나 누가 청출어람인지 뽐내는 듯하다. 가벼운 파도에 흔들리는 규칙적이고 적당한 롤링에 몸을 맡긴다. 페리의 안락의자 속으로 온몸이 빨려 드는 듯하다. 6시간 밤비행의 피로가 오히려 편안함을 더해준다. 곧 만나게 될 인도네시아 땅 바탐과 27홀 팜 스프링스 골프장에 대한 기대감으로 마음이 살짝 들뜬다.
서울이 워낙 무더워서 그랬을까? 바탐의 날씨는 섭씨 28도에 바닷바람이 불어와 전혀 덥지 않았다. 기후변화의 역설일까? 한여름에 한국에서 동남아로 피서를 오다니? 믿기지 않는다. 바탐은 <인도네시아의 숨겨진 보석>으로 불릴 만큼 많은 매력이 있다. 싱가포르와 바다를 경계로 20여 Km 떨어져 있어 싱가포르와 호주 골퍼들이 이곳으로 많이 몰려든다. 좋은 리조트들이 즐비하고 그린피가 싸고 물가가 저렴하기 때문이다.
골프 외에도 아름다운 해변에서 해양 스포츠를 즐기고, 쇼핑과 마사지 스파, 나이트 라이프 등 다양한 활동을 체험할 수 있다. 신선한 해산물과 여러가지 현지 음식을 저렴하게 맛볼 수 있다. 바탐 시내 중심가의 나고야 힐 몰은 바탐에서 가장 인기 있는 쇼핑장소이다. 명품에서부터 짝퉁 상품에 이르기까지 저렴한 가격에 구매할 수 있는 곳이라 많은 사람들이 찾아온다.
바탐섬 페리 선착장에서 15분 거리에 있는 27홀 코스다. 사흘간 매일 27홀 코스를 라운드 하며 골프장 전반을 샅샅이 살폈다. 넓고 평평한 페어웨이가 특징인 동남아 코스들과는 많이 달랐다 오르막 내리막이 많고, 페어웨이 언듈레이션도 제법 심한 편이다. 곳곳에 배치한 워터 해저드와 벙커가 난이도를 높이고 있다.. 코스 레이아웃이 훌륭하다. 같은 곳을 3번씩 라운드 해도 지루하지 않았다. 각각의 코스가 개성이 있고 코스별로 난이도를 적절하게 조절하고 있기 때문이다.
열대 우림 속에 위치한 코스라 수목이 우거져 시원한 그늘을 제공하고 있고, 밀림이 뿜어내는 피치스톤이 청량감을 더해 준다. 다행히 많이 덥지도 않았고, 비도 하루만 잠깐 내렸다. 비가 와도 베수가 잘 되어 질퍽대지 않았다. 2인 1승 전동카터는 페어웨이 안으로 진입할 수 있어 하루 27홀 라운드도 그리 힘들지 않게 즐길 수 있다.
캐디는 1인 1캐디 서비스인데 영어로 소통이 가능하고 더러 짧은 한국어도 구사할 수 있다. 유니폼을 일곱 벌씩 준비해 매일 다른 복장으로 나와 팔색조 같은 분위기를 연출한다. 레깅스 같은 유니폼 때문에 시선을 어디에 두어야 할지 더러 민망스러울 때가 있지만 남성 골퍼들의 눈을 즐겁게 하기 위한 서비스라니 더 이상 노 코멘트.
라운드 중에 멀리서 스피커를 통해 은은히 들려오는 알 수 없는 소리에 잠시 귀를 기울인다. 이맘이라 불리는 이슬람 사제가 기도하러 오라 부르는 소리가 처연한 노래처럼 들린다. 이 경건한 소리에 차분해진 마음으로 샷에 임한다. 어김없이 굿샷이다.
팜 스프링스는 아일랜드 코스, 리조트 코스, 팜 코스 등 총 27홀로 구성된 골프장이다. 코스 설계는 Larry Nelson과 IMG에서 맡았다..
팜 코스 ( Palm Course )는 세 개 코스 중에서 가장 인기가 높다. 비치코스로 6ㆍ7ㆍ8번 홀의 씨 사이드 홀은 멀리 바다 건너 싱가포르와 말레이시아가 눈에 들어오는 아름다운 코스이다. 6번 홀에 이르면 기막힌 풍광 앞에 숨이 막힐 듯하다. 288 미터로 길지 않은 홀이지만 이곳의 시그니쳐 홀이다.
열대의 상징인 야자수 몇 그루가 마치 실루엣처럼 푸른 바다를 배경으로 존재감을 드러낸다. 세 국가 이름이 오르내리는 인터내셔널 홀이다. 세컨 샷 지점에 오면 경기는 잠시 중단된다. 풍광에 매료되어 넋을 잃고 사진을 찍기 바쁘다. 싱가포르 항으로 향하는 화물선의 긴 뱃고동 소리가 정겹다.
리조트 코스 (Resort Course ) 리조트형 코스는 평이한 곳이 많은데 이 코스는 이름과는 전혀 다르다. 업 다운이 심한 데다 구릉지에 위치해 있어 난이도가 제법 높다. 보기 플레이어가 가장 짜릿하게 라운드 할 수 있는 코스이다. 물론 좋은 스코어 기대는 다소 힘들 수 있다. 난이도가 가장 높은 Index 1 홀은 5 번 홀로 거리가 그리 길지 않은 파4홀 인데 설계자의 숨은 의도를 잘 찾아서 샷 해야 한다.
아일랜드 코스 (Island Course )는 곳곳에 미소를 자아내게 만드는 재미난 코스이다. 특히 1번 홀 파5 홀은 웬만한 장타자가 아니라도 투온을 시도하고 싶은 마음이 들도록 설계한 인상적인 홀이다. 역 기역자 도그레그 홀로 해저드와 숲 사이로 그린이 보여 투 온을 유혹한다. 포대 그린 바로 앞에 큰 벙커가 입을 벌리고 있어 또 다른 압박감을 준다. 한 번도 성공하지 못했지만 짜릿하고 재미있었다.
이 코스는 여섯 개의 티박스로 다양한 수준의 골퍼들이 즐길 수 있도록 배려하고 있다. 두 아들과 함께 호주에서 온 골퍼를 만났다. 여덟 살배기 큰 아들이 어엿한 동반자디다. 서너 살 되어 보이는 막내는 장난치기에 바쁘다. 부인과 두 딸은 쇼핑을 갔다며 지갑이 자꾸 얇아진다고 너스레를 떤다. 짧은 시간에 골프장이 아니면 외국인과 이런 내밀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까? 골프클럽을 들고 그린에 서면 동질감을 넘어 형제애 같은 느낌을 가진다. 골프가 가진 강력한 힘이다.
이런 드라이빙 레인지는 처음 봤다. 천연잔디 연습장은 많이 봤지만 이런 연습장은 처음이다. 저수지에 여러 개의 섬을 만들고 아일랜드 홀을 만들어 두었다. 아일랜드 홀을 향해 정교한 연습 샷을 할 수 있는 드라이빙 레인지는 보지 못했다. 좋아 보인다. 비용도 싸다. 볼 한박스 70개에 50만 루피 ( 한화 약 5천원 정도) 장박곺퍼나 전지훈련 팀에게 인기가 높다고 한다..
숙소 바로 옆 바탐 아일랜드CC (구 터링베이CC)는 전형적인 동남아형 코스로 넓은 페어웨이와 평평한 코스가 특징이다. 호주의 백상어 그렉 노먼이 설계한 곳 치고는 평이하다. 신형 전동카터가 최고 시속 25 킬로 속도로 페어워이를 질주한다. 기복이 있는 페어웨이를 달릴 때면 마치 놀이기구를 타는 듯 동심으로 돌아가 깔깔거린다. 숙소인 바탐뷰 리조트에서 채 5분이 걸리지 않는다. 팜 스프링스 코스만 라운드 하기가 지루하면 이곳에서 라운드 할 수 있다.
숙소인 바탐뷰 리조트는 객실 220여 개를 갖춘 준 특급 리조트다. 풀빌라, 수영장, 해변, 바, 카페, 가라오케, 해양스포츠 등 다양한 부대시설을 갖추고 있다. 골프텔이 아닌 휴양 리조트로 코로나 기간 동안 전면 리모델링해 깨끗하고 쾌적했다.
세끼 식사 중 호텔에서는 조식만 뷔페식으로 제공되고, 중/석식은 클럽하우스에서 한국인 주방장이 한식 위주의 식사를 준비해 제공한다. 비수기 평일인데도 적지 않은 투숙객이 있었고, 호텔 뷔페식은 무난하고 먹을만했다. 베트남과 태국과 같이 쌀농사를 짓는 곳인데 아쉽게도 쌀 국수는 없었다.
사족) 이슬람 국가라 돼지고기나 술을 구하기 어려울 것이란 생각은 기우. 다민족 국가의 포용성을 보여 주는 듯 느슨한 이슬람법 적용으로 음식문화도 음주도 여느 이슬람국가에 비해 자유롭다. <인도네시아의 별>이란 빈탕 맥주가 특히 시원하고 맛있었다.
팬데믹 동안 골프는 야외 활동이라 비교적 제약이 적었다. 덕분에 국내외 대부분 골프장은 오히려 큰 호황을 누렸다. 안타깝게도 이 기간 인구 100만 남짓한 작은 섬 바탐은 거의 고립되다시피 했다. 모든 외국인들은 물론 본토의 자국민들 조차 발길이 끊어진 채 자력갱생으로 버티어 왔다. 장자 우화의 대붕(大鵬) 새 처럼 3년간 날지도 울지도 못한 채 비상을 기다려야 했다.
그날을 기다리며 바탐 뷰 리조트는 호텔 전체를 리모델링하고, 팜 스프링스 골프장은 한국으로부터 거액을 투자받아 코스를 업그레이드했다. 특히, 인천공항공사에서 바탐공항 건설에 힘을 쏱았고, 이 공항으로 인천에서 직항 항공편이 날아 올 예정이다. 2024년 10월 중순부터 주 4회 인천 바탐간 직항 편이 바탐에 새로운 날개를 달아 줄 것이다. 날개 짓 한 번에 구만리장천을 난다는 대붕새처럼 이제 바탐도 제주항공을 날개 삼아 불비불명(不飛不鳴)의 아쉬움을 털어내고 높고 멀리 비상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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