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로비전이 진짜 대회라고? 영화로 배우는 유럽인의 송 콘테스트
K-POP이 워낙 강세이다 보니 우리나라는 음악시장 규모에 비해 팝의 인기가 떨어지는 편이다. 그런 점을 감안하더라도 유럽발(빌보드차트 또는 UK차트 진입곡 제외) 대중가요의 인지도는 처참한 편이다. 매년 약 40여개의 유럽 국가가 참가하는 음악 축제 '유로비전 송 콘테스트(Eurovision Song Contest 이하 유로비전)'. 유럽의 축제이기는 하지만 호주도 2015년부터 참가하기 시작했고, 모로코, 터키도 참여한 세계적인 행사이다. 다른 대륙에서도 큰 인기가 있는 편은 아니지만, 우리나라에서는 한국계 호주인 '임다미'의 2등 소식말고는 거의 화제가 되지 않았다. 자신의 국가를 대표해 나오다보니 모든 아티스트가 출중한 실력을 자랑하지만, 유로비전 특유의 웅장한 스타일이 우리 나라 정서에 어필하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뉴페이스를 찾는 즐거움, 국가별 특징, 색다른 스타일 때문에 매해 기다리는 팬이 있는 경연대회다.
유로비전은 유럽간의 문화교류를 통해 냉전 이후의 사회 혼란을 잠재우고 관계를 개선시키기 위해 1956년 처음 시작됐다. 그 당시 기술로 생방송에 도전한다는 것 자체로 큰 의미가 있었기에 정치적으로도 기술적으로도 큰 도약인 셈이었다. 유럽 전역에서 지금까지도 생방송으로 진행되는 이 행사는 긴 역사만큼이나 많은 스타들을 배출했다. 가장 성공한 아티스트로는 1974년 우승자, 우리에게도 익숙한 이름 '아바(ABBA),' 1988년 우승자 '셀린 디옹(Celine Dion)'이 있다. 최근 스타로는 '수염난 여인'이라고 우리 나라 언론에 소개된 2014년 우승자 '콘치타 부어스트(Conchita Wurst)'가 있다.
[Live] ABBA - Waterloo @1974 Eurovision Song Contest
올해도 어김없이 공연을 기다리고 있었으나, 유럽은 물론 전세계를 강타한 코로나 바이러스로 콘테스트가 전면 취소됐다. 대신 공연 형식으로 진행되어 참가자들을 만날 수는 있었지만 65년 유로비전 역사상 대회 취소는 최초의 사건이었다. 그럼에도 여전히 많은 화제를 낳고 있는 데, 올해는 넷플릭스 영화 [유로비전 송 콘테스트: 파이어 사가 스토리]로 드디어 한국에서도 인기를 끌 수 있지 않을까 기대된다.
자신만의 코미디 장르를 끌어가고 있는 '윌 패럴(Will Ferrell)', 로맨스 영화 대표 배우 '레이첼 맥아담스(Rachel McAdams)'가 출연한 코미디 음악 영화다. 제목에서부터 알 수 있다시피 이 영화는 유로비전에 참가한 아이슬란드의 듀오 '파이어 사가(Fire Saga)'의 이야기이다. 본디 유로비전 2020과 맞춰 공개하기로 했으나 코로나의 여파로 6월 26일 공개된 따끈따끈한 신작이다. 윌 패럴이 각본에도 참여했으며 보다 높은 완성도를 위해 직접 2018년 유로비전을 참관했다고 한다.
[예고편] 유로비전 송 콘테스트: 파이어 사가 스토리
코미디 영화이다보니 줄거리 자체는 간단하다. "촌스러운 아이슬란드 듀오의 유로비전 도전기!" 내용은 단순하지만 워낙 흥미로운 소재라 실제 유로비전과 비교하는 재미가 있다. 주인공 라르스(윌 패럴 분)와 시그리트(레이첼 맥아담스 분)는 영화 내내 아이슬란드식 억양을 구사한다. 미국인과 캐나다인의 '모국어 어색하게 하기,' '외국억양 따라하기'를 듣고 있자니 매 대사마다 실소가 터진다. 더불어 러시아 대표 알렉산더(댄 스티븐스(Dan Stevens) 분)의 외모만큼이나 느끼한 억양, 스타일링까지 보고나면 유로비전을 너무나 제대로 재연시켜 반가운 웃음이 끊이질 않는다.
[Movie Clip] Erik Mjönes - "Lion of Love"
유로비전을 접해보지 않은 사람들은 과장이 심하다 생각할 수 있겠지만 놀랍게도 음악, 무대 연출 등 '유로비전 고증을 아주 잘 한 영화'이다. 아이돌 영상에 익숙해진 우리나라에서는 다소 촌스럽다고 느낄 수 있는 카메라 무빙이지만 유로비전은 유럽을 비롯 전세계적으로 약 2억명이 동시에 시청하는 프로그램이다보니 이보다 더 적절하게 모든 시청자를 만족시킬 수는 없을 것이다.
다양한 사람들이 보는 공연으로서 모두가 즐길 수 있는 장르, 모두가 이해할 수 있는 음악, 무엇보다 국가대항전으로서 애국심을 끌어올려 줄 (영화 속 바이킹과 같은)스타일링은 사실 필수인 것이다. 장르 역시 팝페라, 힙합, 댄스, 발라드 등 아주 다양하지만, 처음 곡을 들어본 사람도 즐길 수 있도록 테크노비트가 가미된 팝튠이 다수를 이룬다. 물론 영화 중간부분(피아노 버스커)과 엔딩 크레딧에 사용된 '살바도르 소브랄(Salvador Sobral)의 "Amar Pelos Dois" 같은 멜로우 발라드 곡도 더러 우승한 바 있다.
이렇게 경연을 마치면 득표수에 따라 우승국이 결정되고 이듬해 대회를 유치한다. 영화에서도 잠깐 언급됐지만 종종 국가의 재정상태나 정치적인 이유로 일부러 우승하지 않도록 아티스트를 선별해 내보내기도 한다. 그럼에도 유로비전이 꾸준히 사랑받는 이유는 차별없는 화합이라는 정신과 노래경연 그 이상의 의미를 이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 우승자 및 참가자들이 영화에 카메오로 출연해 함께 노래하는 장면이 있는 데, 우리에게 익숙하지 않은 비주얼과 사연들을 갖고 있다. 위에서 언급한 수염난 여인 콘치타를 비롯해 퀴어 참가자 빌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령 크림반도 병합을 비판한 우크라이나의 자말라 등이 있다.
[Song Along: "Believe", "Ray Of Light", "Waterloo", "Ne Partez pas Sans Moi" and "I Gotta Feeling"]
실제 유로비전 참가자(등장 순서순): 스웨덴의 존 런드빅(John Lundvik), 몰도바의 아나 오도베스크(Anna Odobescu), 프랑스 빌랄 하사니(Bilal Hassani), 스웨덴의 로린(Loreen), 프랑스의 제시 마타도르(Jessy Matador), 노르웨이의 알렉산더 리박(Alexander Rybak), 우크라이나의 자말라(Jamala), 에스토니아의 엘리나 네차예바(Elina Nechayeva), 오스트리아의 콘치타 부어스트(Conchita Wurst), 이스라엘의 네타(Netta)
이 영화의 하이라이트는 유로비전 본선 장면이다. 파이어 사가가 부르는 "Husavik"은 영화가 전달하고자 하는 메세지를 함축해 전달한다. 많은 사람들이 배우 레이첼 맥아담스가 직접 불렀나 궁금해할텐데, 결론부터 말하자면 아니다. 호텔에서 혼자 피아노를 치며 노래하는 장면을 제외하고는 모두 립싱크다. 직접 녹음한 부분도 있지만 실제 가수의 목소리와 함께 믹싱되어 레이첼의 목소리를 듣기는 힘들다. 하지만 유로비전 음악 영화인만큼 주니어 유로비전에서 3위를 차지한 '몰리 샌든(Molley Sanden)'의 목소리가 더욱 어울리는 것은 사실이다. 안타깝게도 실제 가수인 몰리는 스웨덴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떨어져 유로비전 본선에는 진출하지 못했지만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
"스웨덴을 위해 경쟁했지만 결국 목표는 '나 자신의 우승'이었기 때문에 실패였다. 이 영화에 참여하며 나의 준비 과정이 생생히 떠올랐다. 이 싱글 "Husavik"으로 새롭게 도전하게 되어 기쁘다." 비록 국내전에서 떨어졌지만 몰리는 영화 OST에 참여하며 라르스, 시그리트와 함께 자신만의 새 유로비전 스토리를 쓰게 됐다.
[Movie Clip] Will Ferrell, My Marianne(Molley Sanden) - Husavik
Where the mountains sing through the screams of seagulls
Where the whales can live 'cause they're gentle people
In my hometown, my hometown
Thought I made it clear, do I have to sing it?
It was always there, we just didn't see it
All I need is you and me and my home
갈매기 메아리 사이에서 노래하는 산들
다정한 사람들과 살아가는 고래들
나의 고향에서, 나의 고향에서
이젠 알겠어 더 노래해야할까?
언제나 한 곳에 있었던 거지, 우린 보지 못했던거야
내가 필요한 건 오로지 너와 나 그리고 우리집 뿐
유로비전에도 영어노래가 많긴 하지만 모국어를 섞거나 아예 모국어로 경연을 펼쳐 자신의 정체성을 전달하기도 한다. 음악은 언어의 장벽을 뛰어넘어 마음으로 이해하는 언어다. 곡의 내용이 어떻건, 곡의 언어가 어떻건, 어떤 형태로라도 감동을 전달한다면 그 노래는 제 기능을 다 한 것이다.
그런 이유에서 단순 재미로 볼 수 있는 코미디 영화가 유럽 외의 대륙에 유로비전을 전파한다는 것 자체로 큰 의미가 있다. 혹시 모르지 않나. 매해 40팀이 넘게 참여하는 국제 경연대회에서 나의 영혼을 위로해 줄 노래를 찾을 지도.
123분짜리 영화로 그치지 않고 단 한 명의 한국인 팬이라도 이 영화를 통해, 이 노래들을 통해 앞으로도 유로비전의 아름다운 시들을 즐길 수 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