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대 이전, 그리고 10대엔 행복이라는 것에 대한 의미를 몰랐다. 살아있음의 의미도 모르던 시절이다. 가난했기에 그저 돈이 많은 집이 행복해 보였다. 마음껏 고기를 먹고 과일을 먹는 사람들이 행복해 보였다. 난 언제나 고기를 아껴먹었다. 그것이 지금 내가 제육덮밥을 좋아하는 이유인 것 같다.
20대 초반에는 가난했지만 마음은 행복했다. 마음 통하는 친구들이 곁에 있었고 함께 그룹사운드를 결성해서 밴드부를 운영한다는 것이 행복했다. 일 년간 기타 연습과 공연을 하는 낙으로 시간을 보냈다. 연습이 끝난 뒤 친구들과 쓰러져 가는 분식집에서 같이 먹던 라볶이가 맛있었다. 집에서는 게임에 중독되었다. 하루에 10시간씩 게임한 적도 있었다. 음악과 게임을 하며 살아있음을 느꼈다. 부모님께서는 생각보다 잔소리를 안 하셨다.
20대 중반에 복학을 미루던 대학교를 자퇴하고 다시 대학교 입시를 준비했다. 어려움을 겪었지만 마침내 대학교에 가게 되었을 때 행복했다. 인정받는 사람이 되는 기분을 처음 느꼈다. 티는 안 냈지만 대한민국에서 알아주는 대학교의 구성원이라는 자체로 살아있음을 느꼈다.
30대에 거대 기업에 입사했다. 거대 기업의 구성원이라는 자부심으로 행복했지만 오래 가지는 못했다. 10대, 20대에 잠깐이나마 고민하고 느껴본 행복에 대비해서 상당히 짧았다. 13년의 회사 생활을 보낸 것치고는 입사 2개월 만에 불행하다고 생각했다.
30대 후반. 정확하게는 37살에 우울증을 앓았다. 30살부터 이미 우울했던 것인지도 모른다. 37살에 심리적 탈진으로 번아웃이 되어버린 것이다. 그로 인해서 보낸 6개월의 병가 휴직이 내게는 행복했다. 참으로 오래간만에 느끼는 휴식이었다. 아무런 걱정과 고민 없이 6개월을 온전하게 휴식에 집중했다. 이때 시작한 독서와 명상은 내 삶의 진정한 행복을 찾는 데 도움이 되었다.
40대, 난 아직도 독서를 한다. 글쓰기도 한다. 좋은 선생님들을 만나서 독서와 글쓰기에 대한 이야기와 고민도 함께한다. 바로 지금. 현재. 이렇게 보내는 시간이 그 어떤 시간들보다도 행복하다고 생각한다. 죽음에서 깨어나고 있다. 결국 살아있음을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