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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부소유 Sep 26. 2024

여행자의 필요

어디서 온지 모르는 이 사람은 불란서에서 왔다고 하고, 어린애 피리를…

홍상수 감독의 신작이다. 많은 작품들이 있지만 그의 예전 작품 ‘지금은 맞고 그때는 틀리다.’로 적잖이 충격을 받아서 모처럼 그의 신작이 궁금했다. 지방의 중소도시에서는 상영관을 찾기 힘들었고 총 아홉 개의 극장 중에 유일하게 한 곳에서 오직 한 타임만 상영하고 있었다. 개봉일이 일주일도 안되었는데 대부분의 상영관은 대기업 상업영화가 잡고 있는 모습이 안타까웠다.


집에서 다소 거리가 있는 극장에 시간에 겨우 맞춰 도착했다. 이 극장은 딱 한 번 와본 곳이다. 최근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괴물을 감상하러 왔었다. 당시에도 유일하게 영화를 상영하던 극장이다. 소극장이 아니고 대형극장에서 독립영화에 가까운 작품의 상영관을 확보해 주고 있는 것에 감사한 마음이다.


상업영화처럼 많은 투자를 받지 못해서 그런지 영화는 곧바로 시작했다. 어떤 외국인과 한국인이 나와서 영어회화 연습을 하는 장면이다. 외국인이 과외 선생님인 모양이다. 한국인 여자는 갑자기 악기를 연주하다가 어색한 실력으로 상투적이며 통념적인 표현을 몇 마디 한다. 아버지를 생각한다. 그리고 다음.. 또 반복..


아이리스가 아니고 이리스라고 불러야 하는 나이 많은 외국인 여자는 거리를 걷다가 맨발로 물가에 발을 담근다. 느닷없이 넓은 돌 위에 누워서 낮잠도 자고 생막걸리를 마시는 낙을 즐긴다. 공원에서 피리를 불다가 젊은 남자와 만나서 함께 지내기로 한다. 이리스가 어떤 삶을 살았고 어떤 이유로 대한민국의 낯선 땅을 떠돌고 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저 영어를 할 줄 아는 프랑스인이라고 알고 있을 뿐이다.


영화는 90분의 짧은 러닝타임을 끝냈다. 홍상수 감독의 영화는 역시 갖고 있던 편견과 논리를 깨버리는 영화였다. 도로의 오토바이 소음, 자동차 소음, 지나가는 행인의 소음 등이 모두 영화와 함께 녹음되었다. 연출의 엄청난 꾸밈은 없었지만 장면의 철학이 있었다. 옥상에서 젊은 여자가 발레를 하는 장면, 강아지가 영상의 정면을 응시하는 장면, 이리스가 양손을 나풀거리며 자유롭게 걷는 장면 등은 모두 꾸밈없는 편안함을 전달해 줬다.


우리는 이유를 알고 싶지만 그녀는 그저 현재에 존재하고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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