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손 필사
매일 필사를 하며 나도 모르게 나는 변하고 있다. 왼손으로 필사를 하겠다고 시작한 것은 글씨체에 대한 단순한 호기심 때문이었다. 오른손 글씨체와 확연히 다른 삐뚤빼뚤한 모양이 퍽이나 귀여웠다. 예뻐서 반한 게 아니라 못생겨서 반했다. 그리고 미운 글씨를 예뻐하며 서서히 내 안에 있는 못생긴 부분도 나의 일부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게 됐다. 뜻하지 않던 귀한 선물 같은 시간이었다. 왼손으로 쓰는 것이 익숙해지자 글씨체도 조금씩 정돈되어 갔다. 속도나 힘조절은 아직 서툰 면이 있지만 오른손 글씨체와 비교했을 때 어색하거나 삐뚤거리는 정도는 거의 없어졌다. 매일 하는 손가락 운동에 왼손도 적응한 것이 틀림없었다.
며칠 전 왼손이 한 일을 오른손이 알아버렸다. 조용한 새벽에 연필 사각거리는 소리가 컸던 듯하다. 한두 번도 아니고 매일 움직여대는 통에 경력을 앞세우며 한껏 게을러져 있던 오른손이 짜증을 내며 눈을 떴다. 낌새를 채지 못하고 있던 나도 최근에 일기를 쓰며 글씨체가 변했다는 사실을 알았다. 늘 흐트러진 채로 흘러내리던 오른손 글씨체가 또박또박 정자 모양으로 허리를 꼿꼿하게 펴고 있는 것을 보고 있자니 괜히 나도 허리에 힘을 줘서 앉은 자세를 고쳐야 할 것만 같았다.
최근에 약간은 어이없는 걱정이 올라오기도 했다. 왼손이 오른손처럼 충분한 힘을 가지게 된다면 지금의 사랑스러운 글씨체가 서서히 흘러내리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서였다. 오른손도 처음부터 게을렀던 것은 아닐 테니 왼손도 스스로 가진 힘을 믿고 건방지게 굴 날이 있을 것이다. 오른손이 한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를 고민했다. 어린아이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더 가지고 싶어 괜히 잘 움직이고 있는 왼손에 힘을 빼고 글씨를 엉망으로 만들어보기도 했다. 어색하게 삐뚤해진 글씨 속에 퇴행하려는 내 마음이 보였다.
계속 아이로 남고 싶은 마음 뒤에는 점점 더 커지는 사회적 책임감에 대한 부담감이 있다. 잘하고 싶고 도움이 되고 싶어 애쓰지만 정작 나는 어릴 적 나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으므로 내가 교사라는 사실이 가끔은 부담스럽다. 경력이 붙으면 다른 사람들은 여유가 생긴다는데 나는 딱히 그렇지도 않다. 그래서 마음 놓고 서툴 수 있는 왼손 필사는 나를 편안하게 해주는 건지도 모른다. 흔히 어른 글씨라 불리는 약간 날려 적는 오른손 글씨체가 있기 때문에 왼손의 무능함은 관심 밖이기도 할 것이다. 무심함의 영역이 내 안식처인 셈이다.
무슨 일이 있을지 잘 알지 못한 채 시작한 필사였다. 그저 사람들이 하는 말을 몇 개 주워들은 후 호기심으로 움직이던 왼손은 더듬거리며 시간을 따라 말 그대로 꾸역꾸역 걸었다. 그리고 며칠 전, 나의 우려와는 달리 왼손이 오른손에 영향을 주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조금 전 내가 쓴 일기임에도 불구하고 변한 글씨가 내 것이 맞는지 다시 봐야 할 만큼 믿기지 않았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글씨체에 신경 쓸 필요가 없게 되었을 때부터 흘려 쓴 글씨였으니 꽤 오랫동안 흐르던 것이 왼손을 따라 다시 몸에 힘을 주기 시작한 것이다.
필사는 왼손과 오름손을 연결시켰다. 그리고 오늘도 나를 어딘가로 움직이게 한다. 필사를 하며 느끼는 책에 대한 감사함은 왼손의 정성스러움과 맞닿아 합이 잘 맞다. 처음에 내가 가졌던 단순한 호기심이 여러 방향으로 가지를 뻗어 의미를 찾고 그 속에서 더 큰 삶의 동력을 얻고 있다는 것을 안다.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그래도 그중 내가 가장 소중히 생각하는 것은 정성스러움이다. 필사에 정성이 빠지면 베껴쓰기가 되고 말기 때문이다. 내용에 대한 그리고 글씨에 대한 정성을 필사 시간에 집어넣는다. 작은 네모 속에 연필과 책으로만 만들어 내는 움직임에 불과하지만 그 힘으로 나는 천천히 변한다. 힘줘야 할 때는 힘을 주고 풀어야 할 때는 풀어가며 혼자서 춤을 추는 듯하다. 종이 위에서 추는 나만의 춤이 제법 흥을 돋운다. 오른손이 혹할 만하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