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 ‘어찌해야 할까(如之何)’를 품고 걷는 길.
전문직원으로 전직하고 첫 발령을 받은 곳은 인천광역시교육청교육연수원이었다. 연수원은 영종도에 위치해 있으며, 그 뒤로는 200여 미터 높이의 백운산이 병풍처럼 서 있다. 연수원 아래에는 내가 7년간 근무했던 인천국제고등학교가 있어 나는 영종도에서만 9년을 보낸 셈이다.
교사는 점심시간도 근무 시간에 포함이 되기 때문에, 이 시간에 학교 밖을 나서 산책하거나 개인적인 볼일을 보는 것은 복무 위반으로 간주될 수 있다. 외출을 하려면 반드시 신청과 승인을 받아야 한다. 그러나 전문직원은 지방공무원 신분으로 점심시간이 근무 시간에 포함되지 않는다. 대신 8시간 근무제로 인해 교사보다 1시간 늦게 퇴근한다.
전문직원으로 전직하고 갑자기 주어진 점심시간의 여유가 낯설어 어찌할 바를 몰라 하고 있을 때, 교원연수부장님께서 충청도 말투로 “백운산에 올라갈텨?”라고 제안하셨다. 백운산은 그리 높지 않아 20여 분만에 정상에 오를 수 있고, 정상에서는 영종도 전역과 인천대교, 송도신도시 그리고 서해의 바다가 한눈에 펼쳐진다. 또한 연수원에서 연수를 받는 연수생을 위해 조성해 놓은 둘레길은 점심시간 산책로로 안성맞춤이었다.
인천국제고 재직 시절, 국제청소년성취포상제 신체활동 프로그램으로 매주 학생들과 백운산을 올랐기 때문에 나에게는 낯설지 않은 산이었다. 부장님과 함께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산을 오르기 시작했고, 점차 나는 이 시간을 기다리게 되었다.
높지 않은 산이지만 점심시간에 오른 백운산은 의외로 땀도 나고 무엇보다 오전 내내 고민하던 것들이 산에 다녀오면 생각보다 술술 잘 풀린다는 것을 느꼈다. 그때부터 나는 꾸준히 백운산에 올랐다. 연수원 둘레길을 시작으로 백운산 초입에 이르러 20분 정도 가파른 경사를 올라가면 정상에 다다른다. 정상을 지나 운북동 방향으로 돌아 인천하늘고등학교 쪽으로 내려가서 동아시아국제교육원을 지나 연수원으로 돌아오면 40~50분 정도가 소요된다.
특히 오전 내내 하나의 문제가 머릿속을 맴돌 때는 점심도 먹지 않고 백운산을 오른다. 그러면서 이 문제는 어떻게 해결하면 될까? 어떻게 해결하면 될까 하고 계속 생각을 하며 걷는다.
생각보다 가파른 길을 오르다 보면 헉헉대는 숨소리에 머릿속이 잠시 비워진다. 그리고 정상에 올라 넓은 풍경을 마주하는 순간, 오전 내내 복잡했던 고민들이 신기하게도 정리되기 시작한다. 갑작스럽게 엄청난 아이디어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떠오르고, 새로운 아이디어뿐 아니라 내가 한 일들 중에서 혹시라도 잘못 처리한 일들은 없는지 돌아보게 되는 시간이 펼쳐진다. 그리고는 하산 길을 걸으며 생각을 정리하면 오후의 업무는 늘 가볍게 풀리는 것이다.
연수원에서 2년을 근무한 뒤, 인천광역시교육청으로 발령받아 영종도를 떠나게 되었다. 9년을 지낸 영종도에 대한 아쉬움 중 가장 컸던 것은 백운산이었다. 점심시간마다 생각을 정리할 수 있었던 고마운 장소였다.
본청은 인천 시내 중심에 있어 산은 없지만, 인근에 중앙공원이 있다. 육교로 연결된 공원을 한 바퀴 도는 데 약 20분이 걸리기에, 점심시간에 산책을 시작했다. 그런데 놀랍게도 백운산에서처럼 생각이 정리되고, 막혔던 아이디어들이 자연스럽게 떠올랐다. 나는 산에 올랐기 때문에 좋은 생각이 끊임없이 나타났다고 생각했는데, ‘꼭 산이어야 했던 것이 아니라 자연이었던 것’임을 깨달았다.
그때 문득 『논어』 위령공(衛靈公)편의 글귀가 떠올랐다.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어찌해야 할까? 어찌해야 할까?라고 말하지 않는 사람은 나도 이미 어찌할 수가 없구나.
나는 이 구절을 교사 시절, 학생들에게 자주 인용했었다. 우리 학생들이 항상 적극적인 태도를 가지고 자기주도적으로 공부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 그리고 어떤 문제에 대해 깊게 탐구하여 스스로 해결 방안을 도출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아이들에게 자주 사용하였고 이 책에도 학생들에게 하고 전하고 싶은 『논어』 구절로 활용하려고 했었다. 하지만 전문직원이 되어, 백운산을 오르고 중앙공원을 걷고, 스스로에게 끊임없이 “어찌해야 할까?”라고 묻는 과정을 통해 나는 비로소 이 말의 진정한 의미를 이해하게 되었다.
그런데 내가 백운산을 오르면서 그리고 중앙공원을 걸으면서 항상 머릿속에 ‘이 일은 어찌해야 할까?’ ‘이것은 잘한 것이 맞을까?’ ‘잘못한 것은 없을까?’라는 생각했기에 새로운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나타났던 것처럼 ‘어찌해야 할까? 어찌해야 할까?(如之何如之何)’야 말로 항상 중요한 결정을 해야 하고, 그 말 한마디의 무게가 무거울 뿐 아니라 그 책임까지도 막중한 교육행정가들에게 적합한 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공자님과 같은 세기적인 성현도 스스로 어찌해야 할까를 생각하지 않은 사람은 어떻게 가르치고 깨우칠 방법이 없다고 한 말을 나는 학교에서는 말로만 아이들에게 했었고, 어쩌면 학업적 성취가 부족함을 가르치는 나의 잘못이 아니라 제대로 자기주도적으로 탐구하지 않은 아이들 탓으로 돌리는 책임 회피로만 활용했던 것이다. 하지만 전문직원이 되어 백운산과 중앙공원을 걸으면서 이제야 “어찌해야 할까?”의 진정한 의미를 깨달았다.
학교를 책임지고, 기관을 책임지고, 국가를 책임지고 있는 관리자들은 항상 모든 일에 “어찌해야 할까?”를 머릿속에 두고 살았으면 좋겠다. 아니 그렇게 살아야 한다. 다만 그 “어찌해야 할까?”가 아랫사람이나 다른 사람을 향하는 생각이 아니라 스스로에게 깊게 질문하고 넓게 대답하는 “어찌해야 할까”의 질문일 때 우리 교육이 올바른 길을 갈 수 있는 교육정책을 수립하는 교육행정가로서 한 걸음 더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