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엌에서 콧노래가 흘러나온다. 누가 봐도 좋은 일이 있는 게 분명하다. 반찬을 만드는 손은 지휘봉을 들고 있는 듯 박자를 탄다. 몇 분 전까지 새로고침을 반복했던 손가락은 미션을 바꾸어 한없이 올라가는 입꼬리를 막고 있다. 기쁨에 요동치는 심장은 잔뜩 쫄렸던 순간을 이미 잊은 지 오래다.
브런치 작가가 되신 것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입이 근질거린다.
'엄마의 꿈은 뭐였어요? 지금은 뭐예요?' 가끔 질문 날리는 오복이에게 대나무 숲에 온 기분으로 크게 외치지는 못했지만 귀에 대고 상큼하게 말해보았다. '엄마가 얼마 전에 작가가 되고 싶다고 했던 말 기억나지. 이제 휴대폰에 오 작가로 저장해 보자. 당장은 완성되지 않아 보여주지는 못해 안타깝지만, 곧 나의 독자가 되어주렴.' 신기하게도 아이에게 토스한 듯 근질거림이 멈췄다. 어째서 나만 못 보냐고 잠시 토라졌던 오복이는 방문을 닫고 한동안 나오지 않았다. 그 모습을 보니 완전 삐질 최애씨가 상상이 되고 한숨이 나왔다.
비밀 일기장. 궁금한 표정을 지어본다.
'나도 글 쓰려고요.'싱글거리며 장군 걷 듯 다가온다.몇 년 지난 아빠 회사다이어리를 앞뒤로 과하게 꾸며 나왔다.'비밀일기라 아무도 볼 수 없어요.'라며 도도한 척 한다. 그러고는 책가방에 넣는다. 아무도 안 보여 주는 비밀 일기라 강조하더니 자랑하고 싶은가. 그 마음 알 것만 같다. 기뻐하고 응원해 줄 최애씨, 가족들이 눈에 선하다. 그래도 지극한 관심과 열렬한 피드백의 모습은 상상만으로도 몸 둘 바를 모르겠다. 이 작은 마음을 언제 극복하려나.
티가 안나는 적극성을 가진 나는 무언가 계속 도전하고 배우고 참여하는 것을 좋아한다. 늘어지는 성격을 알기에 무의식적으로 하고 싶은 것을 찾고 있음이라. 회사 다니느라 바쁘면서도 학원, 운동, 자격증을 취득했다. 딱히 결과물로 직업을 바꾸거나 하지는 않았지만 다양한 경험들은 오로지 나에게 투자하는 시간이었다. 당시에 나에게 주는 선물이자 힐링이었다. 임신과 육아 중에도 시험에 응시하고 아이들이 자라면서는 아이와 함께할 수 있는 프로젝트에 참여했다. 도전하는 습관을 보여주고 싶었다. 실패와 작은 성공의 기쁨을 알려주고 싶었다. 추억에 함께 남고 싶었다.
SNS를 운영하지만 타인의 긴 글들을 보면 타이핑까지 느린 인간은 그들의 엄지손가락이 존경스럽기만 하다. 짧게 작성한 글조차도 몇 차례 수정하는 나로서는 그사세니까. 수정한 시간이 뜨는 것도 싫어 스토리 기능을 애용하며 글쓰기와 더 멀어졌던 요즘이다. 과거에도 나만의 일기장을 만들어 봤지만 의례적으로 구입해 몇 자 적은 새해맞이였고, 임시로 만든 감정쓰레기통일 뿐이었다. 세 곳의 회사를 다녔어도 글 쓸 기회라고는 보고서가 최대한의 글이었고, 길게 늘이는 대신 간단명료하게 줄이고 줄여서 쓰기만 했다. 기억나는 건 로운(은혜로우셨던 분이라) 임원은 해외에서 막 출간된 책을 읽고 사장님께 드릴 보고서를 작성하셔서 나에게 맞춤법이나 퇴고를 부탁하셨다. 그나마 떠오르는 글 관련 경험은 이게 다이다.
슬초브런치프로젝트는 1기에 신청하고 싶어 눈독 들이고 있었다. 마음 아프게도 당시 주위를 돌아봤을 때 한곳에 오롯이 집중할 수 없다고 판단되었다. 객관적으로, 이성을 가득 품고 나를 보려고 노력하는데 이리저리 생각해도 불가능했다. 2기를 기약하는 수밖에. 반드시 도전하리라. 회사 생활은 물 건너갔으니 인생의 새로운 타이틀 하나 달아보리라. 드디어 그날이 왔다. 알람을 1분 전으로 설정한 날. 프로젝트 신청을 하고 기분 좋은 두근거림이 시작되었다.
첫 만남은 언제나 기대되고 부끄럽다. 3주 차를 건너뛰고 처음으로 제시간에 접속한다. 하늘이 주신 기회처럼 마지막일지도 모르는 시간이라 소중하다. 아이들도 잤고, 어미는 함께 잠이 들지 않았고, 새벽에 눈 뜨지 않았다. 가장 중요한 최애씨가 약속이 있었다. 이은경 선생님과 동기들을 만나 그저 행복하기만 했다. 띠띠띠 듣고 싶지 않았던 현관문 소리가 들린다. 숙련자와 같이 볼륨을 줄이고 노트를 덮는다. 밤에 몰래 간식 먹다 들킨 것만 같은 느낌이다. 왜 이렇게 빨리 들어오셨나.
든든한 전투 식량
아쉬움도 잠시, 좋아하는 서브웨이를 품에 안긴다. 미션을 완수한 듯 그는 아무 말이 없이 방을 나갔다. 안녕히 귀가한 사람에게 왜 빨리 왔나 생각하다니. 이기적인 나를 미워하는 동시에 역시 사람은 좋아하는 게 있어야 해 엄마의 말이 떠오른다. 바이킹 타듯 오락가락한 감정에 쓴웃음을 짓는다. 얼마 전, 몇 차례 퇴고 중 집중력이 높은 시간을 유지하고 있을 때이다. 늦게 귀가하신 최애씨는 자주 못 보던 모습을 몹시 궁금해했다. 관심이 필요하지 않을 때 관심주는 사람. 정말이지 천생연분이다. 별거 아니라 못 보여 준다는 말도 안 되는 변명에 기분 상한 그는 한동안 삐져있더니, 이제는 본인의 호기심을 외면하나 보다. 야호.
과거에 브런치 가입의 기억은 있었다. 앱을 설치하니 기억에 없는 세 개의 글이 눈에 들어온다. 굳이 읽어보지 않아도 제목에서 나쁜 기운이 스멀스멀 올라온다. 이내 삭제 버튼을 눌러 쓰레기들을 휴지통에 버린다. 작가 타이틀로 명징한 곳간에서 시작하고 싶으니까.
몇 편의 글을 발행한 요즘, 글 쓰는 시간이 순삭 되는 경험을 하고 있다. 고개를 들어 시계를 확인하면 오복이 하교할 시간이거나 어두웠던 거실은 빛이 조금씩 다가오고있다. 나의 행동, 생각 모든 것은 머릿속에 문장으로 정리되어 옆에 떠다니며 동행한다. 그 하루는 고함량 활력 비타민을 먹은 듯 흥이 난다. 글이 읽히는 짜릿함과 글 쓰는 시간으로부터의 힐링을 경험하고는중독되었다. 스스로에게 솔직하고 쉽고 잘 읽히는 글을 어떻게 잘 써볼까 질문을 던지며 다시 한번 부단한 노력을 다짐한다. 베스트셀러 작가 가자!
이은경 선생님, 매니저님, 슬초브런치프로젝트 2기 작가 대표 143인.
가장 좋은 때에 좋은 인연을 만나 그저 감사하다. 서로를 비추며 훨훨 나는 모습을 그려보며, 끊임없는 박수와 응원을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