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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OMU Nov 14. 2023

달달한 오작가와 함께하는 풍성한 삶의 여행

2028년 11월 13일 월요일, 날씨 맑고 또 맑음

자연스레 눈이 떠진다. 새벽 447분. 보일러를 틀었는데도 창가에 앉아 그런지 찬 기운이 느껴진다. 겨울이 또 가까이 왔다. 담요를 어깨에 대충 두르고 A4다발을 집어든다. 몇 번의 퇴고를 마쳤지만 또다시 페이지를 넘기기 시작한다. 따뜻한 차 한 모금에 움츠렸던 어깨는 긴장이 풀리는 듯하다. 테이블 주변이 조금씩 선명히 보이기 시작한다. 천장을 바라보다 밖의 풍경을 바라보다 책꽂이에 꽂힌 내 자식 같은 책들과 현대문학상 스크랩 기사들에 한동안 시선이 머문다. 멍 때림 타임은 꼭 필요하다. 글을 쓰고부터는 사색에 잠기는 시간을 많이 갖고 있다. 얼마나 지났을까, 집 안의 알람들이 제각기 일을 시작한다. 비슷하지만 어제와는 조금씩 다른, 역시나 기분 좋은 하루의 출발이다.

원하던 중학교에 입학한 오복이는 본인이 걱정했던 사춘기와 달리 낭만으로 잔뜩 채우며 알차게 생활하고 있고, 4학년이 된 어엿한 숙녀 오팔이는 머리숱도 많아지고 눈은 여전히 반짝거리며 갈수록 더 예뻐진다. 선생님과 친구들의 칭찬이 자자하니 둘 다 학교 생활을 훌륭히 하고 있는 것 같다. 분발해야겠지만 원석이 다듬어져 된 사람이 되어가는 모습에 감사한 매일을 보내고 있다.




작가로 모니터 앞에서 타이핑을 하며 글을 쓰기 위해 피 흘리게 노력한 적은 없었다. 시작부터 꾸준히 연습해 온 덕분일까. 아니면 아직 부족해서 피를 흘리는 경험을 못 한 것일까.

세월은 많은 것을 바꿔 놓는다. 분명한 것은 글을 써온 지난 5년여 동안 행복만이 가득했다는 것이다. 책상에 앉은 날들이, 어둠 속에서 모니터를 바라보았던 시간들이 그랬다. 머리가 커져가는 아이들과의 관계에서도, 과거와 현재, 미래의 나를 끄집어내는 작업을 할 때에도, 주변을 바라보고 경험하는 인생의 작디작은 것들에 대한 이야기를 한 자 한 자 채워가는 순간들이 참으로 뿌듯하고 가치 있는 일이었다. 가끔 글의 소재가 떠오르지 않거나 키보드 위의 손가락들이 운동할 생각을 하지 않을 때면 브런치에 발행했던 첫 글을 찾아 읽어본다. 프로젝트 참여를 시작으로 오직 최애씨가 잠이 들었을 때나 약속 있을 때만이 글에 집중할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었던 날들. 주저하며 제출했던 첫 글의 결과를 확인했을 때, 부엌에서 홀로 무음 샤우팅을 지르며 기쁨의 뜀박질 해대던 생생한 내 기억에도 가끔 찾아가 본다. 정돈되지 않은 글을 몇 자 적어 내려가는 작은 일이었지만 당시 육아에 지치고 힐링이 필요했던 한 인간에게는 세상에 존재하는 하나뿐인 특효약이었다.



엄마가 올빼미 루틴이었던 우리 집의 아침 풍경은 아이들의 우렁차고 반복되는 '엄마' 소리에 올빼미는 눈을 떴고, 최애씨는 이미 출근해 있었다. 스스로 옷을 챙겨 입은 아이들은 침대 위에 겨우 몸을 일으켜 앉아있는 엄마에게 그날의 패션과 컨셉을 소개하고 확인받으려 했다. 무기력했던 나는 그러한 매일 만나고 있었다. 첫 발행 후 세네 달이 지나고부터인가. 루틴의 변화가 시작되었다. 잠자리 독서를 마치고 올빼미 애미는 그대로 잠이 들었고 일찍 눈 뜨기를 반복한다. 물론, 새벽의 설거지와 빨래 정리의 특근이 사라진 덕분에 상쾌와 청결의 아침과 저녁을 자주는 기대하지는 못했다. 감사하게도 최애씨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원래도 하지 않았지만 어쨌든 고마웠다. 허나, 그렇다고 본인이 집안일을 직접 하지는 않았다. 


최애씨나 가족들은 브런치 글의 존재를 아직도 알지 못한다. 출판된 책들에 대해서는 당연히 알고는 있고, 인터뷰나 강의에서도 잘 걸러 말하고 있다. 솔직히 자세히 내용을 들여다보는 것 같지 않아 천만다행이고 오히려 고맙다. 초반에 발행한 글들이 주변인들에게 읽힌다고 생각하니 급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른다. 계속 모르기를 바랄 뿐이다.



내가 취미 갖기를 진심으로 원하던 최애씨는 어느 날 '글쓰기 연습을 하고 있고, 작가라는 꿈이 생겼다' 지나가며 툭 던져진 나의 말에 쫑긋 귀를 기울이고 진심으로 기뻐하고 응원해 줬다. 틈틈이 이야기 소스를 제공하기도 했고, 전자기기 업그레이드를 즐기는 그는 뭐가 필요한지(필요할 것 같은지) 사진을 보내고 추천해 주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에게 이미 브런치 작가 타이틀을 달았다고는 말하지 않았었다. 아직은 군데군데 구멍이 많은 나인 것을 알기에. 최애씨나 아이들에게 완벽하고 멋져 보이고만 싶었나 보다. 젊은 작가상이 모두에게 알려진 작가로서의 첫 발자국이었다.


지금도 머릿속에는 최애씨와 대화한 날이 또렷이 기억난다. 정확히 2023년 11월 10일 금요일에서 토요일로 넘어가는 시점이었다. 아이들이 잠들었기에 거실은 어두웠고 TV에서 새어 나오는 빛에 의지하며 나는 빨래를 개고 새벽같이 라운딩 나갈 최애씨는 문 앞에 짐을 챙기며 다음날을 준비 중이었다.

"오빠, 5년 후의 오빠 모습을 말해줘 봐. 최대한 성공했다고 상상해서."

원래 뜬금없이 주제에서 벗어나는 말을 하고, 말도 안 되는 상상을 하고, '만약'이 등장하는 질문을 자주 하는 와이프의 질문에 웬일로 하던 일을 멈춘다. 이내 진지한 표정을 장착하더니 답한다.

"지난번에 처남이랑 술 마실 때도 이야기했지만, 생각 중에 있어. 내가 확실히 결정하지 못해서 게 말을 못 하는 것뿐이야. 계획대로 된다면 엄청나게 성공할 거야. 그런데 왜 갑자기 물어보는 거야?"

"그냥, 내 5년 후가 궁금해서."

입이 근질거렸지만, 차마 출판 작가,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겠다는 꿈만 같은 이야기는 전하지 못했다.

준비를 끝낸 최애씨는 안방에 들어갔다가 도로 나와 툭 튀어나온 본인 배를 쓰다듬으며 말한다.

"정확히 말해 줄 수 있는 건, 지금 우리 집이랑 차 있지? 5년 후에도 똑같으면 그게 워스트야."

"응, 우리 오빠는 다 잘할 거야. 복된 자니까. 내가 돈덩어리지만 동시에 복덩이거든. 그리고 어떤 상황이든 오빠를 믿고 응원해 왔고. 지금도 많이 예뻐해 주잖아. 맞지?" 하며 얼른 들어가 자라고 손짓한다.

"그럼, 이만 들어가 보겠습니다." 임무 완수한 듯 부끄러워진 최애씨는 공손한 배꼽인사를 하고 방으로 사라졌다.




다시 현재, 최애씨와 멋진 야경을 배경으로 술잔을 부딪힌다.

"오빠, 기억나? 우리 예전에 5년 후 계획 말했던 거."

"알지, 그 뒤로도 몇 번 더 말했었지."

"정말 신기한 것 같아. 다 이루어졌다는 게 말이야."

"그렇지. 거의 다 됐지. 나도 회사 나와서 자리 잡고. 타이밍을 잘 잡은 것 같아. 이제 안정 궤도에 올랐으니까. 비록, 그때 'GOMU'작가님에 대한 이야기는 못 들었었지만 말이야. 네가 책을 주면서 '오빠가 첫 독자야'라고 했을 때 내 벙쪘던 표정 기억나지? 장난인 줄 알았거든. 정말 놀랐어."

"하하, 서운해하지 마. 어쩔 수 없었지 뭐. 당시에 내 글 읽었으면 아마 '내 스타일 아니야'라고 기운 잔뜩 빼놨을 거자나. 그렇지?"

"아니거든요. 아직도 나를 모르는고만." 최애씨는 멋쩍은 웃음을 지으며 한 모금 들이킨다.

"오빠, 내가 20대 때 회사 면접에서 자기소개 처음 문구가 뭐였는 줄 알아? '오랫동안 꿈을 그리는 사람은 그 꿈을 닮아간다'였어. 30대에도 그 문구는 변하지 않았었지. 그 말을 살면서 여러 번 경험하는 것 같아."

"늙었네." 변함없는 우리 최애씨에게 '너도'라며 눈을 한 번 째려준다.

"아무튼 아이들도 아프지 않고, 잘 자라줘서 고마워. 어제는 오팔이가 '엄마처럼 살고 싶어'라고 하더라고. 그 말이 지난 시간을 통째로 칭찬해 주는 것 같더라. 본인들 길을 스스로 찾아가는 것 같아서 하루하루가 감사하네."

"그러게, 내년에는 우리 사무실도 가까워지니까 데이트도 자주 하고 여행도 많이 다니고 그러자."

"응, 모두와 함께 하는 여행이 인생인 것 같아. 우리 같이 최고로 멋진 여행을 만끽해 보자. 최선을 다해서 할 수 있는 것 다 해보자. 오빠가 나를 많이 지원해 줬으니까 나도 더 열심히 할게. 우리 잘 늙고 있는 거 맞지? 건강해야 돼 오빠. 너나 나나 혼자가 아니잖아."

"자, 각설하고, 그러면 이번 잔부터는 또 다른 5년 후에 대해 그려볼까?"라며 잔을 채운다.

그렇게 둘은 한참 동안 공감 가득한 대화를 나눴다.


2028년 11월 13일 월요일.

오늘도 미래의 나를 위해 글 한 편을 선물하며 모니터 앞에서 감사한 하루를 마친다.





image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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