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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블루베티 Apr 09. 2021

루이뷔통과프라다

“언니, 가짜 부자와 진짜 부자를 가려내는 방법이 뭔지 알아?”

“글세... 뭔데?”

“여기 에르메스 가방이 있다고 해봐? 그럼 가짜 부자는 이게 얼마 얼마인데 내가 어디서 샀고 한정판이고 자랑을 해. 근데 진짜 부자는 물어볼 때까지 아무 말 안 하지. 누군가 ‘이거 얼마야?’라고 물어보면 겸연쩍게 ‘어.. 글쎄 모르겠네. 얼만지. 그냥 이뻐서 산 건데.’ 하고 끝~!”

“와 그거 맞는 말이네. 깔깔깔.”

부자가 될 일이 없는 나로서는 h의 말에 사심 없이 웃었다. 그러나 h는 진지했을 거다. 그녀 자신이 부자를 두 부류로 나눌 수 있는 그런 세상에 살고 있었으니까.




h는 항상 깔끔한 면티나 블라우스 타입의 옷에 단을 예쁘게 접은 청바지에 굽이 높지 않은 스니커즈를 신고 다녔다. 플로랄 계열의 향수를 옅게 뿌리고 액세서리는 아주 심플한 목걸이 외에는 하지 않았다. 얼핏 보면 성숙한 중학생이 아닌가 싶게 작고 마른 체구에, 마른 손가락을 길게 뻗을 때면 우아하게 보였다. 동그란 안경에 동그란 얼굴, 작은 얼굴에 비해 다소 큰 코가 컴플랙스였는데 덕분에 본격 순정만화보다는 명랑 순정만화의 주인공처럼 보였다. 조용하게 영국식 억양을 구사할 줄 알았고 모든 일을 차분하게 처리했다.




그녀는 과 조교였고 나는 개인 조교였기 때문에 같이 있는 시간이 많은 우리는 금세 친해졌다. h는 새침한 첫인상과 달리 허당인 면이 귀여웠고 주변 사람들을 잘 챙기는 편이었다. 우리는 죽이 잘 맞아 여행도 가고 교수님 험담도 하고 연애상담도 하는 사이가 되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h가 내가 흔히 만나온 평범한 아이 중 한 명이라고 생각했다.



어느 날은 h가 검은색 가방을 새로 샀다면서 들고 온 적이 있었다. 흔한 재질에 로봇 모양 비즈가 붙은 것이었다. 가방이며 옷에 관심 없던 나는 진심으로 ‘와. 너 가방 귀엽다. 너랑 잘 어울린다’ 알은 체를 했다. h는 살짝 웃으며 ‘고마워 언니.’ 했다. h와 좀 친해지고 나서 우연히 그 가방의 안 쪽을 볼 일이 있었는데 잠시 멈칫했다.




삼각형 로고.

프라다였다.

그제야 그 재질이 왜 그렇게 시장에서 많이 본 것인지 알 수 있었다. 프라다 가방을 책가방으로 쓰다니. 그 애가 입고 다니는 그저 깔끔하게 보이는 면티, 청바지, 신발들이 다 명품이라는 것을 안 것 역시 그 후로 한참이 지난 후였다.



사실 나는 명품에 관심이 없었다. 지금도 그렇지만 소신의 문제를 넘어 그저 관심이 없을 뿐이다. 나의 그런 점들이 h에게는 신선하게 보인다고 했다. 그런 내가 명품에 눈을 뜨게 된 것은 오히려 엄마 때문이었다.



“내 친구들은 다 갖고 다니는데 나만 그 백이 없어. 루이뷔통 있잖아. 어디 가면 살 수 있어?”

“엄마 백화점 가면 있지.”

“아니 짝퉁 사게.”

엄마는 건물주였지만 가방에 몇십만 원을 쓸 수 있는 소비 회로가 발달되어 있지 않았다. 엄마와 나는 A급 짝퉁을 찾아 헤매기 시작했다. 문제는 루이뷔통이라고 다 같은 루이뷔통이 아니었다는 거다. 모노그램, 다미에, 에삐. 패턴부터 멀티 컬러, 모노톤 색깔도 달랐고 스피디백 25, 30 등으로 다 비슷해 보이는데 사이즈마다 이름도 달랐다. 엄마와 나는 멘붕에 빠졌다. 열쇠와 자물쇠가 제대로 달려있냐, 안에 박음질은 잘 되어있냐, 루이뷔통 로고가 제대로 붙여져 있냐에 따라서 상품 급이 달라진다고 했다. 이태원에 널렸다는 짝퉁 시장을 찾아가는 것도, 바가지를 쓸까 봐도 겁났다. ‘진짜’ 짝퉁은 정품의 반 가격으로 값도 비쌌다. 짝퉁도 사본 사람이 사는 것이었다. A급을 찾다 지친 우리는 싱가포르에 나가는 친구에게 부탁해 제일 무난한 정품 스피디백을 공수해왔다. 다른 엄마 친구들이 멀티 컬러로 넘어갈 무렵에야 엄마는 간신히 갈색 루이뷔통을 들고 다닐 수 있게 되었다. 그 한 차례 홍역을 치르고 나자 그제야 나는 내 주변 대학원 동기들이 들고 다니는 가방이며 옷들이 모두 그야말로 ‘명품’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장님이 눈뜬 것 같았다. 엄마의 말 ‘나만 없어.’가 무슨 뜻인지 이해하기 시작했다. 덧붙여 ‘나만 몰랐어.’까지.



대학원 동기들, 그것도 대학 졸업 후 곧바로 대학원으로 온 아이들은 다 풍족한 아이들이었다. 나도 외동딸에 풍족하게 자라왔다고 생각했는데 돈이 있고 없고의 문제가 아니었다. 뭐랄까. 생태 자체가 달랐다. 부모는 명문대를 나오고, 직함만 들어도 ‘와’ 소리가 나왔다. 거기에 사랑도 듬뿍 받고 자란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상실의 시대>에서 중산층 출신의 미도리는 상류층이 다니는 여학교에 다니면서 엄청난 괴리감을 느끼게 된다. 그녀가 생각하는 부자의 분류법은 이런 것이다.

‘돈이 없다고 말할 수 있는 것.’

h와 대학원 동기들이 속한 세상은 돈이 없다고 마음껏 말할 수 있는 세상이었다. 나 역시 돈이 없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 부끄럽지는 않았으나 미도리가 지적한 것과는 다른 이유에서였다. ‘나만 몰랐기’ 때문에 돈이 없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었다.



다시 h얘기로 돌아가 보자. h는 의외로 남자 학우들 사이에서 인기가 많았다. 워낙 조용하고 눈에 띄는 외모가 아니기 때문에 몰랐는데 이런저런 고백을 많이 받았다. h를 차지한 것 역시 의외의 인물, 현군이었다. 현군은 학과의 궂은일은 나서서 도맡아 하고  재능이 많아서 선생님들에게 많이 사랑을 받는 착한 아이였다. 비밀로 시작된 두 사람의 연애 과정을 옆에서 지켜보는 것은 꽤 위태로웠다. 사랑이라는 게임에 승자와 패자가 있다면 늘 h의 승리였다. h가 무례해도 현군이 사과했다. 현군은 사과를 했다는 것에 대해서도 또 사과했다. 저렇게까지 해서 h를 사귀어야 하나 싶을 정도로 비굴한 연애의 시기를 거쳐 어느덧 두 사람은 교내에서도 공공연한 커플이 되어 있었다. 현군은 박사과정을 하러 미국으로 떠나기로 예정되어 있었기에 자연스레 두 사람의 결혼 이야기가 오갔다. 평소에 워낙 현군을 마뜩지 않아했던 h인지라 결혼까지 간다는 게 놀라웠다. 양가의 인사를 드리러 가는 문제부터 현군의 비굴함은 다시 극에 달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 사랑게임의 진짜 승자는 따로 있었다.



“언니, 현군이 헤어지재.”

어느 날 밤 h가 울면서 전화했다.

“아니 갑자기 왜?”

“현군네 아버지가 잘 다니는 점집이 있는데. 거기 점쟁이가 내 사주를 넣어보더니 내가 현군 하고 결혼하면 현군 앞길을 가로막는다고 했다는 거야. 이게 도대체 말이 돼? 지금이 어느 시댄데 사주로 결혼을 막냐고.”

“아니. 그렇다고 이렇게 허무하게 헤어져? 뭐라도 해봐야지.”

“현군이 자기 아버지는 안된다고 하면 안 되는 거래. 아버지 때문에 날 힘들게 하기 싫대. 자기가 날 포기하겠대. 진짜 무슨 이런 경우가 다 있어. 그렇다고 걔는 날 이렇게 쉽게 포기해?”

이 게임의 승자는 결국 현군의 아버지였다. 현군네 집은 부동산으로 부자가 된, h가 말하는 전형적인 ‘가짜 부자’ 집안이었다. 집안의 돈줄이자 모든 걸 쥐고 흔드는 가부장적 아버지는 재산도 이만큼 있으니 자식을 교수로 만들어 가문을 세워보겠다는 야심을 추진 중이었다. 그 와중에 h가 나타났는데 어떤 이유에서인지 자신의 프로젝트에는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던 듯하다. 비굴함의 세월이 무색하게 현군은 한 달 후 미국으로 떠나버렸다.




그 이후로 h와 나는 취직을 하고 선 시장에 나섰다. h보다 나이도 더 많았던 나 역시 미래가 불투명하기는 마찬가지여서 둘이 만나 이번 선은 어땠나, 애프터는 들어올 것인가, 이번 선에서 개선해야 할 점은 무엇인가를 논하기 위해 만났다. 파릇하던 h도 30 초반을 지나던 중이었다. 뜻밖에도 h가 과외를 하던 학생의 어머니가 h의 소개팅을 주선해주었다. 그 어머니란 분이 유명한 분이라 h는 상대의 나이와 이름, 직업만 안 채 소개팅에 나갔다.

“누나가 둘이나 된다는데. 나랑 별로 통하는 것도 없는 것 같아. ”

상대는 잘 나가는 집안 외아들이라 그런지 불나방처럼 달려드는 무언가는 없었다. 그런데도 h는 그와 뜨뜻미지근한 만남을 이어갔다. h는 계속해서 그에 대한 불만을 토로했는데 현군을 만날 때처럼 사랑게임의 승자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너, 그 h라는 애 결혼은 어찌 되어가고 있어?”

S언니가 지나가는 말로 물어보았다.

“아. 글쎄.. 잘 안될 것 같기도 해. 그 시어머니라는 사람이 아들 몰래 h를 불러내어 너 결혼하고 일은 계속할 거니 뭐 이런 것도 묻고 장난 아니래.”

언니는 의미심장하게 웃었다.

“그 애, 결국 그 결혼하게 될걸?”

“왜? 본인도 갈팡질팡 하던데? 아버지가 뭐하는 분인지도 모른다고. ”

“그러니까 더 진짜지. 높은 사람일수록 자기가 뭘 하는지 떠벌리지 않는 법이니까. 아마 h도 그걸 알기에 그 남자를 계속 만나고 있는 걸 거야. 암튼 h로서는 지금 이 자리를 절대 놓치지 않을 거야. 내 생각엔 지난번에 만나던 그 애보다 h와 잘 어울린다. ”

“그건 그래. ”

“내가 지켜본 바로는... 그렇게 타고난 애들은 결국 자기 자리를 찾아가게 되어있어.”

S언니는 상류층 과외를 오랫동안 해왔었다. 언니가 가르친 애들은 어린 시절부터 아이비를 목표로 하는 애들이었다. 언니는 자기가 가르치는 아이들에 대해 말을 아꼈는데 딱 한번 ‘그렇게 타고난 아이들’에 대해 묘한 상실감을 얘기한 적이 있었다. 재력과 권력이 있는 부모 밑에서 사랑까지 받으며 자랐는데 아이들이 반듯하기까지 하다고 했다. 나는 그 상실감이 어떤 것일까 짐작조차 못했다. h가 결혼을 하기까지는.




h는 남편 명의의 강남 아파트를 리모델링을 해야 한다며 투덜댔다.

“손 봐야 할게 한 두 개어야 말이지. 몰딩부터 새시까지. 결혼 준비보다 인테리어 준비하느라고 더 바쁘다니까. 그 와중에 어머니는 이런 건 안되고 저런 건 되고 참견해서 더 짜증 나.”

남자의 부모가 재건축 때문에 사둔 거라 어차피 오래 안 살고 나올 거라고 했다. 우리는 그 아파트의 시세가 얼마인지 같은 건 아예 입밖에도 내지 않았다.





결혼식은 경기도의 조촐한 성당에서 했다. 차가 없으면 찾아가기도 힘든 곳이었다. 과연... 이 점에서 나는 또 한 번 감탄했다. h가 말한 진짜 부자의 분류법에 딱 들어맞는 격이 있는 결혼식이었다. 진짜 부자만이 이런 허름한 곳에서 결혼할 수 있다. 성당 앞에는 양가 부모의 입지를 입증하듯 내놓으라 하는 곳의 화환이 줄을 이어 있었다. 동행했던 남자 친구가 화환을 유심히 들여다보고 청첩장에 적힌 상대 남자 아버지의 이름을 보더니 갸웃거렸다.

“이 남자, 아버지가 뭐하는 분인지 모른다고 했어?”

“응. 왜. 유명한 사람이야?”

“김** 몰라? 강남에서만 삼 선 한 국회의원이야.”

남자 친구는 h가 엄청난 집안으로 시집간다면서 나보다 더 흥분하며 혀를 내둘렀다. 또 나만 몰랐군. 나는 그런 남자 친구에게 도대체 여기 ATM기는 어디 있는 거냐며 짜증을 부렸다.





h는 결혼을 하자마자 아들을 임신해 집안의 복덩이가 되었다.

“언니, 우리 아파트 상가에 되게 오래된 떡볶이 맛집 있어. 나 그거 볼 때마다 언니 생각나. 우리 집에 놀러 오면 내가 그 떡볶이 사줄게.”

h는 해맑게 말했다. h에게 느꼈던 것이 ‘가져본 것도 없는 것에 대한’ 상실감인지, 질투인지 모른다. 지나고 나니 그런 감정을 품고 있었다는 것조차 우스웠다. 짝퉁 루이뷔통을 가진 사람이 프라다를 가진 사람을 질투할 수는 없는 거다. 결국 나는 h의 집들이를 가지 않았다. 또다시 ‘나만 모르던’것을 알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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