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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로맨스(2): 가족 로맨스의 동기

가족로맨스에서 심리적 부친살해까지

5m 거인인 아버지


5~8세의 아들은 아버지를 5미터 거인으로 생각한다. 

아들은 아버지를 이렇게 전능한 존재로 여기는 것이다.

아들이 그렇게 하는 것은, 결국 자신이 그런 거인이 되고자 하는데, 먼저 아버지를 그렇게 높여 놓아야 아들인 내가 그렇게 높아질 수 있다는 전능감을 얻고자 함이다. 


그런데 아들의 청소년기의 최종적인 과제는 아버지를 넘어서는 것이다. 

아버지는 전능한 아버지였지만, 다른 한편 6세가 되면서 아버지 어머니의 문제를 다 안고 살아온 것이다.

청소년기에 들어서면서, 자신의 성격을 돌아봐도, 자신이 가진 증상을 살펴봐도, 심지어는 조그마한 습관과 말투까지도 아버지를 닮은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그리하여 아들은 그동안 절대적으로 여겼던 아버지의 권위를 의심하기 시작한다.  

사춘기에 접어든 아들은 5미터 거인이던 아버지를 아주 낮게 평가하면서, 자신의 진짜 아버지는 상류사회에서 높은 지위와 많은 재산을 가진 사람일 것이라는 백일몽을 꾼다.


동시에 아들은 자신의 어머니를 성적으로 은밀한 부정을 저지르는 상황으로 몰아가는 욕구를 가진다.


"어쩌면 어느 재벌회장이 나의 어머니를 몰래 사랑하여 낳은 아들이 바로 나 일지도 몰라. 그래서 그 재벌 그룹의 회장님이 언젠가 나를 몰래 소환하여 내가 자신의 아들이라는 어떤 징표를 요구할지도 몰라."


라든가...


또는 그에게 형이나 누나가 있다면, 그들의 특권을 박탈하기 위해 어머니가 부정한 정사로 나의 경쟁자인 그들을 낳았다는 상상을 서슴지 않고 하게 된다.

프로이트는 이런 식으로 형제자매들을 서자로 만들어 제거함으로써 자신이 영웅이 되고 자신만이 합법적인 아들이 되는 등의 가족 로맨스 변형 버전을 만들어 내기도 한다는 것을 제시한다. 


또 한 가지 가족 로맨스는, 자신이 부모를 사랑하는 것만큼 부모가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면서, 자신은 입양아이거나 의붓자식이라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이 점에서 프로이트가 강조하는 바는, 가족 로맨스를 꿈꾸는 아들은 표면적으로는 부모에 대한 불신과 배은망덕으로 표현하지만, 조금 들춰보면 부모에 대한 깊은 애정을 깔고 있다는 점이다. 


결과적으로, 아들은 아버지를 제거하려는 것이 아니라 높이는 것이며, 어머니를 타락시키는 것이 아니라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여성다운 사람은 바로 나의 어머니라고 느꼈던 시절, 하지만 이미 사라진 그 시절에 대한 갈망을 표현하고자 하는 것이다.     



심리적 부친살해


프로이트 시대에는 아버지에 대한 존경이 아들의 사회적 권위를 얻는 데에 있어 매우 중요한 주제였다.

그렇지만 아들이 아버지를 높이고자 하는 것은 하나의 이상일뿐이다.

대부분의 아들들은 아버지를 넘어서고자 한다. 


특히 오늘날처럼 기술발달이 빠른 시대에는 젊은 세대일수록 아버지의 권위에서 벗어나고자 노력한다. 

사춘기 청소년이 자기 정체성을 형성하는 과정에서 어릴 때부터 자신에게 많은 문제를 안겨 아버지를 부정하지 않으면 안 되는 입장에 있다. 

이미 40년 전에 입력한 것을 지금 자녀세대에게 출력하여 받아들이라고 하면 반발하지 않는 아들이 이상한 것이다. 

아버지는 더 이상 5미터 거인이 아니라, 아들의 사춘기적 사고와 갈등이 깊어질수록 아버지는 초라한 아버지에 불과한 것이다. 

이러한 아버지를 넘어서야 아들은 비로소 어른이 되어 가는 것이다. 


청소년기가 깊어갈수록 가족 로맨스는 심리적 부친살해로 가닥을 잡아가게 된다.

어른이 되어 가는 마지막 길목에 자기의 고유한 존재를 확인하고 자기 정체성을 형성하는 과정에서 자기 긍정을 위한 아버지 부정을 감행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프랑스 철학자 폴 리쾨르는 청소년기에 아들이 부친살해를 감행하느냐 못하느냐에 따라, 부친살해 환상에 머물러 살 것인가, 아니면 부친살해 상징으로 넘어갈 것인가의 기로에 서게 된다는 점을 강조한다. 


이처럼 청소년의 자기 정체성 찾기는 가족 로맨스로 시작하여 심리적 부친살해로 마무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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