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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로맨스(3) : 금수저와 흙수저

흙수저가 현대적 영웅

개천에서 용 난다고?


옛말에 '개천에서 용 난다'는 말이 있었다. 

그 옛말이라는 것이 불과 2000년 전에는 통했던 말이다. 

그런데 지금은 그런 경우란 불가능에 가깝다. 


우스갯말로, 사회적으로 성공하기 위한 조건이 있다. 

돈 많은 친할아버지와 무능한 아버지, 그리고 치마바람이 거센 어머니가 있어야 한다. 


어떤 젊은이는 알바로 월 100만 원을 겨우 벌면서, '돈 많은 부모 만나는 것도 능력'에 속하는 것을 부러워한다. 

그러면서, 자신의 부모를 원망한다.


"우리 아버지는 왜 재벌이 아닐까?"


그것은 내가 재벌이 될 수 없는 조건과 똑같은 것이다. 

그래서 금수저로 태어나는 것이 성공의 필수적 조건인 것처럼 되어 가고 있다. 


2000년 이전에는 평범하게 태어났어도 얼마든지 성공할 수 있는 여건들과 선택지들이 내 앞에 놓여 있었다. 

그런데 얼마 전부터인가 금수저가 아니면 성공할 수 없다는 회의감에 시달리는 젊은이들이 갈수록 많아지고 있다.


금수저가 아니어서 자살한 서울대생


2015년 12월 18일 새벽 3시 서울 관악구 신림동 소재 옥탑방 건물에서 한 서울대생이 투신하여 숨진 사건이 발생했다. 온라인 커뮤니티에 남긴 그의 유서에는 


“나 자신과 세상에 대한 분노가 너무 큰 고통으로 다가온다. 생존을 결정하는 건 결국 수 저 색깔이었다” 


라고 적혀 있었다. 당시 네티즌들 사이에서는 수저 색깔론이 회자하고 있었고, 그는 유서에 


“서로 수저 색을 논하는 세상에서 나는 독야청청 ‘금(金) 전두엽’을 가진듯했다. 하지만 생 존을 결정하는 건 전두엽 색깔이 아닌 수저 색깔이다…. 내가 일생 동안 추구했던 가치는 ‘합리’지만 이 세상의 합리는 나의 합리와 너무나도 달랐다. 먼저 태어난 자, 가진 자, 힘 있는 자의 논리에 굴복하는 것이 이 사회의 합리다. 저와는 너무도 다른 이 세상에서 버 티고 있을 이유가 없다”


라는 말을 남겼다. 그는 서울의 과학고를 조기 졸업하고 서울대에 입학할 때는 전액 장학금을 받을 정도로 공부 능력에는 탁월했다. (출처: 2015년 12월 18일 자 중앙일보)


자신이 흙수저 출신이라 비관한 젊은이의 아버지는 대학교수였고, 어머니는 중학교 교사로 재직 중이었기에 경제적으로 전혀 어려움이 없는 상황이었다고 한다. 굳이 태생을 따지자면 금수저는 아닐지라도 최소한 은수저는 되었음에도 스스로 흙수저로 평가절하한 결과 자살까지 이어졌다는 점은 세간의 사람들에게 안타까움을 더한다. 

(인용: [불안한 부모를 위한 심리수업], 졸저)


금수저와 흙수저


현대 사회에서 성공은 어려워졌다. 

경쟁이 더욱 치열하고, 전문성과 경험의 필요성이 증가함에 따라 적은 시간과 노력으로는 성공하기 어렵다. 이러한 상황에서 부모의 경제적인 배경을 그대로 물려받지 못한 젊은이들은 더욱 어려움을 겪는 것은 당연한 결과다.

금수저로 태어난 젊은이들을 부러워하는 것은 사회가 발달할수록 더욱 심화될 가능성이 높다.

이러한 사회적 현상은 부모의 경제적 상황과 관련이 있다. 

알바로 월 150만 원도 채 받지 못하는 젊은이들은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돈이 많은 부모를 만나는 것이 편안하고 부조리한 것으로 여겨지는 현상도 존재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부모의 경제적 상황에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경제적으로 안정되어 있는 가정에서 태어나고 자란 젊은이들은 자연스럽게 더 좋은 교육 기회와 경제적인 지원을 받게 된다. 

이런 젊은이들은 많은 기회와 자원을 활용하여 더욱 성공적으로 행동할 수 있다. 

그러나 부모의 경제적인 영향을 받지 않는 젊은이들은 경제적인 불편함과 한계를 직면하게 된다.


따라서 금수저로 태어난 젊은이들의 성공은 부러움을 자아내는 일은 당연한 일이다. 

그들은 부모로부터 배운 경제적인 안정과 가정에서의 교육 기회 등을 활용하여 적절한 기회와 재원을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젊은이들은 이러한 점을 보고 금수저로 태어난 사람들을 부러워하고, 그들에 대한 로맨틱한 상상을 펼치기도 한다.


내게 지금의 부모보다 훨씬 경제력 있고, 사회적 능력이 탁월한 부모, 재물이 많은 부모를 만났다면, 지금쯤 나는 얼마나 달라져 있을까?

또는 나의 미래가 얼마나 화려하게 전개될 것인가 하는 상상을 하게 될 것이다.

그러한 상상은 바로 프로이트의 가족 로맨스에 해당한다.  


흙수저의 높은 가치


잘 알려져 있듯이 예수는 나자렛에서 태어났다. 당시 나자렛이란 전혀 알려지지 않았던 곳으로 눈길을 끌만한 것은 아무것도 없었고, 대부분의 사람들에겐 잊힌 땅이었다. 누가 감히 웨일스가 우리들이 지금까지 겪고 있는 이런 고통에 대한 해답을 찾을 수 있는 장소가 되리라고 상상할 수 있었겠는가?

           (출처: [파르치팔의 모험])
            

오늘날 금수저 흙수저 타령하여, 내가 누구의 아들이냐에 따라 자신의 미래가 결정되어 있다는 비관론을 가지고 사는 사람이 많다. 


누구나 인생의 고통은 다 있다.

사람은 고통과 환란을 경험하면서 성숙을 이루어간다.


금수저는 누구나 마땅히 겪어야 하는 고통을 겪지 않는 특권을 가지고 태어난 것이다. 

하지만 금수저는 누구나 겪는 고통을 겪지 않음으로써 미성숙한 상태로 머물러 발달할 기회를 가지지 못할 수 있다.  


흙수저가 고통에 대한 답을 진지하게 가질 수 있다.

금은 금일뿐이지만, 흙을 잘 다루면 그 가치는 상상을 초월할 수 있다.

금 한 돈에 28만 원 한다면, 흙으로 빚은 고려자기는 값으로 따지기 힘들다. 


흙은 나를 어떻게 빚어내느냐에 그 가치가 달려 있다. 바로 고통으로 빚어져야 가치 있다.


인간은 흙에서 와서 흙으로 돌아가는 존재임을 기억한다면, 흙수저라고 비관할 이유가 없다. 


역대로 영웅은 금수저에서 나오는 법이 없다. 

영웅은 대개 버려지고, 무시당해 온 사람이지만, 원래 영웅의 혈통을 가지고 태어난 사람이다.

고려청자, 조선 백자가 흙으로 빚어지듯이,  바로 영웅은 바로 흙에서 나온다. 


과거의 영웅은 나라를 건국하거나, 나라를 비극에서 건진 사람이다. 

오늘날에는 모든 사람이 다 영웅이 될 수 있다. 

오늘날에는 '나'라는 나라를 온전하게 세우는 사람이 바로 '현대적 영웅'이다.


즉 가장 나답게 살아가는 사람이 바로 자기 시대의 영웅인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나만의 고유한 삶을 찾아내야 한다. 

이를 위해 내 안에 있는 남성성과 여성성을 찾아내어 자기(self) 발달을 이룩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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