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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로맨스(4): 리플리 증후군

자기도 속이는 리플리 증후군

자신도 속는 리플리 증후군


내가 중학교 다닐 때는 '가정 방문'기간이 있었다.

새 학년이 시작되면 담임 선생님이 자신이 맡은 반 학생들의 가정을 일일이 다 방문하는 프로그램이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 당시로서는 매우 탁월한 교육 프로그램인 것 같다.

당시에는 한 클래스에 학생이 70명이 넘었다. 담임 선생님은 모든 학생들의 가정을 방문해서 부모님을 만나고, 학생 각자의 가정 형편과 부모님들의 자녀에 대한 교육의 열정이 어느 정도인지를 파악할 수 있었다.

가난했던 시절이었지만, 담임선생님은 그 많은 학생들 하나하나 가정을 다니면서 형편을 살피는 사명을 감당해 냈기 때문에 선생님들은 학생에게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었다.  

학생 입장에서도 가정방문이 끝나면, 저 멀리 계시던 선생님이 마치 내 옆에 붙어 계시는 느낌을 받았다.

이런 가정 방문을 하기 위해서는 70명의 학생을 지역별로 여러 구역으로 나누어야 했다. 구역별 학생들은 서로 가까이 사는 친구를 파악하여 비상연락망을 구성하여 선생님께 제출하였다.

그래서 선생님이 우리 집을 방문했으면, 나는 다음 방문할 학생의 집으로 선생님을 모시고 가야 하는 것이었다.


내가 중학교 2학년 때, 내 짝은 덩치도 우람했고, 뿔테 안경을 써서 다른 친구들에 비해 꽤 위엄이 있어 보였다.

아무나 그에게 감히 접근하지 못하는 카리스마를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그런 친구가 내게는 아주 친절하게 대해 줬다.

그는 니를 매우 특별한 친구라도 되는 듯이 대접해 주었다.

나에 대한 대접은 자기 만의 비밀을 이야기해 주는 것이었다.

지금은 잘 기억나지 않지만, 그는 내게 자기 집안 이야기를 하면서, 아버지 어머니를 특별한 존재처럼 소개했다.

그의 아버지는 당시 중앙정보부의 국장의 자리에 있어 외국을 자주 왔다 갔다 하고, 심지어 북한도 비밀리에 들락거릴 수 있는 특권을 가진 매우 특별한 사람으로 언급하였다.

매일 그는 자신의 아버지를 자랑하였고, 그래서 그런 아버지를 뒷바라지하는 어머니는 고생도 많이 하지만 어머니도 아버지를 매우 자랑스러워한다는 말도 하였다.

그의 이야기가 계속되면서, 나는 나의 아버지와 어머니를 초라하게 여기기 시작하였다.

나도 그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나름대로 가족 로맨스를 꿈꿔 본 것 같다.

나도 그렇게 능력 있고, 높은 고위직에 있는 아버지를 뒀으면 내가 얼마나 뿌듯할까 하는 상상도 해 보았다.


어느 날 학교에서 특활활동시간에 가정방문 비상연락망을 짜는 시간을 가졌다.

공교롭게도 내가 그 친구의 집으로 담임선생님을 모시고 가도록 연락망이 짜였다.

참 좋은 기회를 가지게 되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 친구는 나를 데리고 자기 집으로 가는 길을 인도했다.

이태원의 어느 시장길을 지나가면서 어떤 아주머니가 이 친구이름을 불렀다.

그 아주머니는 시장거리 한 구석에 자리 잡아 연탄불화로 위에서 설탕을 녹여 여러 가지 모양을 만들어 아이들을 모아 뽑기 장사(오징어 게임에 나오는 달고나)를 하는 분이었다.

이 친구는 이 아주머니에게 나를 인사시켰다.


"인사드려. 우리 엄마야."


그 순간 나는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

그 충격은 지금까지 그 친구가 이야기해 오던 엄마와 내 눈앞에 나타난 엄마는 전혀 연결성을 가지고 있지 않았기 때문에 받은 충격이었다.  

놀라운 것은, 그 친구는 한 입에서 두 말을 한 혼란을 겪는 것이 아니라, 아무 일이 없었다는 듯이 너무나도 해맑게 자신의 어머니를 소개하더라는 것이었다.

그때부터 이 친구는 지금까지 이야기해 온 가족과는 전혀 다른 차원의 가족관계를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아버지는 자기가 초등학교 1학년 때 돌아가셨고, 어머니는 시장에서 설탕과자를 팔면서 형제들을 교육시키고 먹여 살린다는 말을 했다.

그 친구의 집은 다 쓰러져 가는 판잣집이었다.


그 친구는 학교에서 가족 이야기를 하던 모습과는 전혀 다른 모습을 보였다.

그의 모습은 초라하게 보이기 시작했고, 매우 유약한 심성의 소유자였다.

놀라운 것은, 학교에서 그렇게 자랑스럽게, 그리고 나에게만 비밀스럽게 전해주던 그 이야기는 완전히 잊고 있는 듯이 보였다는 점이다.

두 이야기가 서로 연결이 되지 않았지만, 그 이유를 나는 중년이 되어서야 알게 되었다.


그는 바로 리플리 증후군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당시 그 친구는 리플리 증후군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쏟아내는 순간에는 매우 치밀한 이야기를 이어가고 있지만, 그 이야기는 현실의 기억과는 전혀 다른 차원에 있는 환상 안으로 들어가서 꾸며 댄 이야기였다.

환상 안에서 지어낸 이야기로 누군가에게 거짓말을 하고 있지만, 나중에 현실로 돌아왔을 때 그는 자신이 거짓말을 했다는 사실을 잘 기억하지 못하였다.


지금까지 내가 겪어 본 여러 리플리 증후군 환자들을 봐 오면서 특이한 점을 빌견할 수 있었다.

그것은 내가 그가 리플리 증후군 환자라는 것을 이미 알고 있는 경우 그가 내게 무슨 이야기를 하면, '이 사람이 지금 내게 거짓말을 하고 있구나' 하는 것을 나는 이미 알고 있지만, 정작 본인은 자신이 거짓말을 하는지를 그 순간 모르고 있다는 점이다.

즉 내가 그의 거짓된 이야기를 들으면서


'10분 후면 거짓말이라는 것이 들통이 날 텐데, 왜 이렇게 이야기를 할까?'


하는 의문을 가지게 되지만, 정작 본인은 자신이 지금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이것은 내가 경험한 리플리 증후군을 가진 사람들을 이해하는 맥락 중 중요한 핵심에 해당한다.


 가족 로맨스와 리플리 증후군


리플리 증후군은 Patricia Highsmith의 소설 "The Talented Mr. Ripley"에 나오는 주인공의 이름을 따서 명명된 것으로, 종종 이상화된 가족 관계에 기반한 거짓 현실을 만드는 것이 특징인 심리적 장애이다.

리플리 증후군을 가진 개인은 자신의 삶에서 필사적으로 누락되었다고 생각하는 가족 로맨스를 갈망한다.

리플리 증후군을 가진 사람은 매우 복잡한 이야기를 정교하게 꾸며내야 하는 매우 복잡한 심리구조를 가지고 있다.


리플리 증후군의 핵심은 사랑, 따뜻함, 수용을 구현하는 가족 단위에 대한 갈망이다.

영향을 받은 개인은 깊은 공허함과 버림받은 느낌을 가지며 그들이 원하는 현실을 형성하기 위해 정교한 거짓말과 속임수의 그물을 구축하도록 촉구한다.

이 대체 세계에서 그들은 이상화된 가족들에게 무조건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사랑받는다.

이러한 조작된 관계는 실제 삶에서 경험하는 고통과 불만으로부터의 피난처 역할을 한다.


리플리 증후군의 기원

리플리 증후군의 기원은 어린 시절의 경험, 특히 부모와 관련된 경험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경우에 따라 이 증후군을 가진 개인은 형성기 동안 방치, 학대 또는 정서적 연결 부족을 경험할 수 있다.

양육하고 안전한 가족 환경의 부재는 종종 이 장애의 발달에 기여한다.

가족의 사랑과 수용에 대한 열망이 너무 강해서 과거의 가혹한 현실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대처 메커니즘으로 환상의 세계를 구성한다.


리플리 증후군의 증상은 다양한 방식으로 나타나며, 모두 거짓 현실의 생성 및 유지를 중심으로 한다.

이 장애를 가진 사람들은 그들의 거짓말이 그들이 원하는 가족 로맨스가 구축되는 토대를 형성하기 때문에 종종 조작과 속임수에 뛰어난 기술을 보인다.


그들은 자신과 다른 사람들에게 대체 현실의 진정성을 확신시키기 위해 가족 구성원, 관계 및 공유 경험을 발명할 수 있다.

또한 영향을 받은 사람들은 조작된 관계가 사랑과 수용에 대한 욕구를 충족시키기 때문에 통제에 대한 강박적인 욕구와 타인과 진정한 감정적 연결을 형성할 수 없는 능력을 보일 수 있다.


결론


결론적으로 리플리 증후군은 가족의 사랑과 수용에 대한 깊은 갈망을 나타내며, 이는 거짓 현실의 창조로 나타난다.

어린 시절의 경험과 버림받은 느낌에 뿌리를 두고 있는 리플리 증후군의 영향을 받는 개인은 원하는 가족 로맨스를 구축하기 위해 거짓말과 속임수에 의지한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혼자의 노력만으로는 부족하다.

왜냐하면 스스로의 노력으로 할 수 있는 것은 자신의 증상을 앓고 있는 현실을 자각하는 정도에 그칠 수밖에 없다.

사람이 현실에서 삶을 산다는 것은 지금-여기만이 전부가 아니다.

현실의 나는 유아기부터 지금까지 겪어 온 모든 삶을 다 짊어지고 현재에 살아가는 것이다.

나의 삶의 역사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전문가의 도움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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