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을 하면 행복만 이어질 줄 알았다. 함께 밥을 먹고, 같은 지붕 아래서 잠들며, 하루의 이야기를 나누는 것만으로도 충분할 것 같았다. 그러나 막상 살아보면, 가장 사소한 문제들이 불쑥 갈등의 씨앗이 되어버린다. 주방에 쌓인 설거지, 외식 비용을 누가 조금 더 냈는지, 서로의 부모와 관련된 일들, 심지어 옷차림이나 말투까지도. 신혼의 설렘은 금세 일상의 불편으로 바뀌고, “왜 이렇게까지 서운할까?” 하는 의문이 쌓여 간다.
10월이면 결혼 후 첫 명절 추석이 있는데, 벌써부터 가느냐 마느냐 라는 이슈로 설왕설래하고 있다.
신혼인 부부, 특히 신부는 종종 갈등을 ‘사랑이 식은 증거’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갈등은 오히려 사랑이 진짜로 시작되는 자리일지 모른다. 연애 시절에는 보이지 않던 서로의 성격이 드러나고, 배경과 습관이 충돌하며, 각자가 간직해 온 욕구와 결핍이 표면으로 올라오기 때문이다. 결혼은 단순히 사랑을 확인하는 제도가 아니라, 두 사람이 자기 자신을 새롭게 알아가는 장이다.
누군가는 작은 일에도 쉽게 서운해한다. 배우자가 자신의 기분 변화를 알아차리지 못할 때, 집안일을 분담하지 않을 때, 대화 속에서 세심하게 반응하지 않을 때, 마음속엔 금세 불만이 차오른다. 이때 “왜 이렇게 예민하냐”라고 단순히 치부해 버리면 갈등은 깊어진다. 사실 그 예민함 뒤에는 오래된 욕구가 숨어 있기 때문이다.
어릴 적부터 충분히 돌봄 받지 못한 경험, 스스로 표현하기 어려웠던 마음, 혹은 늘 비교당하던 기억 등이 겹쳐져 성인이 되어서도 ‘나를 인정해 달라’는 갈망으로 이어진다. 그 갈망이 안전한 공간에서 가장 강하게 드러나는 것이 바로 결혼 생활이다. 그러니 반복되는 서운함은 단순한 투정이 아니라, 내면에서 들려오는 “제발 내 마음을 좀 알아 달라”는 간절한 요청인 셈이다.
막상 결혼하고 나니, 아내가 결혼 전보다 더 예민하다. 조금만 관심을 놓으면, 아내는 '사랑이 식었다.' '왜 날 사랑해 주지 않느냐?' '벌써 마음이 떠났느냐?' 며 닦달한다.
신랑은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짜증이 나고 화가 치밀어 오른다. 연애 때도 짜증을 내 본 적이 없고, 여자가 화나면 화가 그칠 때까지 기다리는 데 능숙했던 자신은 어디 갔는지, 예전에 없던 짜증과 분노라 올라온다. 그렇지만 다 표현도 못하고, 내 본 적이 없는 짜증이라 그마저 참게 된다.
그러면서, 각자 이런 생각을 한다.
"이게 결혼이란 말이야? 이렇게 더럽고 치사한 이야기로 밀어붙이고, 변명해야 하고, 인상 써야 하고... 예전에는 이렇게 해 본 적도 없었고, 이렇게 하고 싶지도 않은데, 내가 도대체 이런 결혼을 왜 한 거야?"
라고 자조 섞인 불평을 품고 살아간다.
상담자로서 나는 신랑의 이런 이야기를 듣고, 미소를 지으며 다음과 같이 말한다.
"결혼하지 않았더라면, 화낼 일도, 짜증 날 일도 없었을 텐데, 결혼하고 나니까 예민해지고, 억울하고, 괘씸하고, 울분을 토하고 싶고... 바로 이런 사소한 짜증과 화를 이제는 마음껏 낼 수 있기 위해 결혼한 것입니다. 지금까지 살면서, 또는 직장에서, 교회 공동체에서, 이런 짜증, 화, 분노를 낼 일이 없이 살았다면. 당신은 결혼이 아니었다면 내 안에 있는 자신의 감정, 특히 사소한 감정이 뭔지 모른 채 살아가야만 했을 겁니다. 이제부터 두 사람 사이에 감정의 세계가 시작된 것입니다. 그동안 자신이 잊고 지냈던 생생함을 경험하기 위해 지금의 배우자를 찾아 결혼하게 된 것입니다."
"내가 점잖고, 의젓한 사람이며, 품위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해 왔던 나를 이제는 접으십시오. 이제 배우자와의 관계에서 사소한 감정으로 갈등하고, 서운해하고, 티격태격하면서 삶의 소소한 일상을 찾으십시오. 이제 자신을 대단한 존재로 여기지 말고, 내가 이것밖에 안 되는구나 하는 자신의 새로운 모습을 발견하십시오. 이제야 비로소 한 인간이 되고, 자신을 세속화시킬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이것을 해 내지 못하고, 서로 눈치 보면서 잘 지내려고만 하는 중에 사소한 감정을 참고 억압하다가, 나중에 어느 순간 사소한 일에 부딪히면서 순식간에 서로의 운명을 가르는 큰 사고를 치게 될 것입니다. 평소에 사소한 감정으로 부딪히고 갈등하고 서운해하고, 실망하는 일을 그때그때 감당해 내면, 나중에 사소한 일로 시작하여 큰 사건으로 비화되는 일이 없게 될 뿐만 아니라, 큰 일을 당하여도 사소한 일처럼 분해를 시킬 수 있는 능력으로 거듭날 겁니다."
"이제부터는 문제가 발생하면 반드시 싸우되, 대충 싸우지 말고 끝까지 싸워서 결론이 나는 싸움을 싸우십시오. 또는 문제가 발생했는데 더 이상 침묵 속에 파묻어 두지 마십시오. 찔끔찔끔 싸우다가 싸움을 일주일씩, 한 달씩 끌고 가지 마십시오."
"서로 약속하십시오. '우리는 싸우면 그날로 끝낸다'라고 약속하십시오."
"아무리 격렬하게 싸워도 상처 주는 말은 삼가십시오. 나중에 수습할 수 없는 말은 절대 금물입니다. 싸우되, 지옥문을 닫아 놓고 싸우십시오. "
"싸우되, 싸움이 끝나면 더 좋은 관계로 승화된다는 전제로 싸우십시오.
우리는 흔히 갈등 없는 관계를 이상적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부부 사이에서 갈등은 결코 불필요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서로의 상처와 욕구가 드러나는 장이자, 진짜 대화가 시작되는 신호다. 갈등이 없다면 서로의 내면은 영원히 가려진 채 남아 있을 것이다.
싸움은 아프다. 그러나 그 싸움 속에서 두 사람은 서로를 더 깊이 이해할 기회를 얻는다. 상대가 왜 그렇게 반응하는지, 그 뒤에는 어떤 이야기가 숨어 있는지, 그제야 비로소 눈을 뜨게 된다. 싸움 없는 평화보다, 싸움을 통해 단단해지는 관계가 더 진짜다.
어떤 부부는 누가 봐도 잉꼬부부다. 그렇게 30년 이상을 살았다. 한 번도 싸워 본 적이 없다고 한다. 서로를 이해하는 태도를 가지면 싸울 일이 없다고 한다. 한쪽이 화가 나 있으면, 화가 가라앉을 때까지 기다리면 된다고 한다. 그러는 중에 어느 날, 이 부부는 이혼했다. 주변 모든 사람들에게 충격을 줬다.
특히 남자는 여자를 절대로 이해할 수 없다. 남자가 여자의 말을 이해하기 위해 언어학적 노력이 필요하지 않다. 부부간 과거의 똑같은 사건에 대한 기억이 다르고, 감정 표현이 다르다. 남자는 여자의 감정과 사고, 언어를 절대적으로 이해할 수 없다. 남자가 여자의 말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싸워야 한다. 싸우는 만큼 서로에 대한 이해력이 높아진다. 이처럼 남녀 간에는 알 수 없는 높은 벽이 있다.
결국 결혼은 두 사람이 서로를 완전히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포기하지 않고 계속 이해하려고 애쓰는 과정이다. 서로 다르고, 불완전하고, 싸움과 서운함까지 모두 안고 살아간다. 싸움이 고통스럽지만, 각자 마음속 오래된 갈망과 상처까지 마주하면서 진짜 상대의 모습을 조금씩 알아가는 시간이다.
갈등은 피할 수 없는 현실이다. 그 현실을 외면하지 않고 같이 마주 설 때, 비로소 진짜 인연으로 성장하는 길에 들어선다. 결혼생활의 사소한 일상 속에서 조금씩 더 넓고 깊은 사랑을 배우게 된다. 오늘 또 한 번 다퉜더라도 괜찮다. 그 싸움 끝에서 서로를 바라보고, 다시 손을 잡을 수 있다면, 우리는 아직 함께 살아가는 법을 배우는 중이다.
결혼 전, '바로 저 사람만이 내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는 사람이구나.'라는 관점에서 눈이 맞아 결혼까지 이르게 되었다는 사실을 기억하라.
부부가 싸우는 이유는, 오랫동안 내 안에 응어리져 있던, 혼자 해결할 수 없었던 감정의 문제, 정서적 문제, 관계의 문제를 부부라는 틀이라는 안전한 제도 안에 들어왔기 때문이다.
결혼의 목적은 행복이 아니라, 서로를 통하 성화의 과정을 겪어 가는 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