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 관계에서 균형 잡기
가족, 특히 원가족과의 복잡한 관계에서 우리는 종종 '착함'이라는 윤리적 덫에 빠지곤 한다. 한국 사회에서 '착한 아들', '착한 며느리'라는 수식어는 상대방의 불편함을 최소화하고, 전통적인 기대를 무비판적으로 수용하는 태도를 요구한다. 많은 사람이 갈등을 피하고 가족의 평화를 유지하기 위해 '나만 잘하면 된다'는 논리로 착함을 선택한다.
그러나 상담학적 관점에서 이러한 '착함'은 평화가 아니라 '자기 배신'이자 '호구(Pushover)의 함정'이다.
며느리로서의 '착함'은 곧 시어머니가 기대하는 역할의 '선(경계)을 지키는 행위'와 연결된다. 하지만 이러한 선 지키기는 주체적이지 못한 '집단적 사고'에 속하며, 대상(시어머니 또는 어머니)을 그 역할이나 기능의 일부로만 인식하는 '부분 대상관계'에 머물게 한다. 즉, 대상관계의 불완전성 속에서 관계를 유지하려는 방편인 것이다.
여기서의 '착함'은 자신의 감정, 권리, 그리고 배우자의 고통을 외면하고 오로지 상대방(원가족)의 감정적 안정, 즉 '서운하지 않음'을 최우선 목표로 설정하는 행위이다. 남편이 어머니와 형의 오랜 편애와 차별로 인해 받은 억울함이 분명함에도 불구하고, "그래도 어머니인데, 그래도 명절인데"라는 명분으로 무조건적인 이해와 양보를 택하는 것이 바로 이 착함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특히 시어머니가 두 며느리나 어머니가 두 아들에 대해 이중잣대를 가지고 대하는 불공평한 상황에서, '나만 잘하면 돼'라는 명분으로 선을 지키는 것은 당장의 충돌을 회피할 수 있다. 그러나 이 방식은 피해자로서 불공평한 대우와 편애를 당하는 아들(남편)과 며느리(아내)에게 억울함만을 가중시키며, 피해자 역할을 영속화시킨다.
착함은 결국 원가족과의 표면적인 관계는 유지할지 모르나, 부부 내부의 연대감이라는 가장 중요한 기반을 침식하여 결혼 생활 자체를 위협한다. 착함은 공평함을 담보하지 않는다. 착함은 일방적인 희생만을 요구하며, 그 희생의 대가는 결국 배우자의 고통으로 귀결된다. 따라서 지속가능하고 건강한 관계를 위해서는 '착함'이 아닌, 부부 중심의 새로운 '기준'을 확립해야 한다.
가족 관계에서의 '기준 세우기'는 흔히 오해되는 것처럼 단순히 '모든 것을 끊어내고 단절하는' 극단적인 행위가 아니다. 관계에 '기준을 세운다는 것'은 집단적, '집단적 사고'에서 벗어나 '개별적 사고'로 이행함을 의미한다. 이는 대상(어머니, 시어머니)을 그 역할과 동시에 한 인간의 불완전성을 포함한 전체로서 바라보고, 부분대상관계의 총체적인 불공평을 인식하는 '전체 대상관계'에서만 가능한 원칙이다.
기준 세우기는 '자기 존중(Self-Respect)'과 공평(Equity)'의 원칙에 입각하여, 부부 공동의 행복을 최우선으로 선언하는 주체적인 행동이다. 착함이 '원가족의 서운함'을 피하기 위한 수동적인 태도라면, 기준 세우기는 '부부의 평화와 안녕'을 지키기 위한 능동적인 원칙이다. 이 기준은 과거의 모든 불균형을 고려하여 현재와 미래의 관계를 어떻게 재정립할 것인가에 대한 합의이다.
둘째 아들이 결혼할 때, 어머니는, "네 형 결혼할 때 2000만 원 해 줬는데, 네 결혼 때는 돈이 없어서 아무것도 못해 준다." 어머니의 이 말씀은 단순히 돈이 있고 없고의 차이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어릴 때부터 늘 있어 왔던 형과 동생의 차별, 형에 대한 일방적인 편애를 드러내는 마음을 더 강하게 드러낸 말씀이었다.
어머니의 형에 대한 편애에서 소외된 동생은 단순히 감정적인 영역에만 머무르지 않고, 결혼 자금 지원의 차별과 같은 금전적, 실질적 영역까지 침범한 구조적 문제였다. 따라서 기준을 세울 때는 이 구조적 차별을 해체하는 것이 핵심이 된다.
기준 세우기는 다음과 같은 질문에 답하는 과정이다. 이 기준을 세울 때 더 이상 억울한 일이 없고, 편애와 편견에 저항하게 되면서 앞으로의 관계를 공평하게 만들어가게 된다.
감정적 기준: 과거에 경험한 차별과 억울함을 어머니나 형이 인정하고 사과하지 않는다면, 나는 어느 정도
의 감정적 교류를 유지할 것인가?
시간/접촉 기준: 어머니와 형이 변화하지 않았을 때, 명절, 생일, 집안일에 부부가 투자할 수 있는 시간과
노동력의 최소한의 상식적인 선은 무엇인가?
금전적 기준: 앞으로 발생할 어머니의 부양이나 기타 지원에 있어, 과거 형에게 제공된 편익을 고려하여
형제간의 공평한 비율을 어떻게 재정립할 것인가?
기준 세우기는 어머니나 형에게 '벌을 주기 위한' 행위가 아니라, 남편과 아내가 더 이상 '피해자의 역할'을 반복하지 않고, 스스로 '주도적인 결정권자'임을 선언하는 것이다.
가장 중요한 기준 세우기는 부부 내부의 합의로만 만들어져야 한다. 이 기준은 아내의 고통과 감정적 수위를 남편이 온전히 이해하고 수용했을 때만 진정으로 견고해진다. 앞의 글에서 남편이 자신의 '무덤덤함'을 해체하고 억울함을 분화하는 내적 작업이 선행되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남편이 자신의 억울함에 대해 진정한 분노를 느끼고, 이를 아내에게 "당신이 나를 위해 화내 준 것이 옳았다. 당신의 감정은 정당하다"라고 전달할 때, 두 사람은 비로소 하나의 단단한 연대감을 형성하게 된다. 이 연대감을 기반으로 세워진 기준만이 외부의 비난이나 압력에도 흔들리지 않고 지속될 수 있다.
기준을 세웠다면, 그 기준을 명확한 행동 강령으로 실천해야 한다. 이는 단순히 '명절에 안 가겠다'는 선언이 아니라, 관계의 간격을 조절하는 '거리 두기'를 의미한다.
최소한의 접촉 프로토콜: 명절이나 생신 등 사회적 의무가 요구되는 상황에서는 남편 단독 방문 또는 '극히
짧은 시간(인사 및 식사 후 즉시 복귀)'만을 허용하는 프로토콜을 설정한다. 이는 '착함' 때문에 머무르며
불필요한 감정 소모를 하던 과거 패턴을 단절시킨다.
비정기적/비필수적 관여 거부: 김장, 집안 대소사 등 노동력이나 깊은 감정적 관여가 필요한 일에는
'바쁘다'는 이유로 단호하게 불참을 선언한다. 이는 원가족에게 '당신들의 요구가 우리 부부의 기준보다
우선하지 않는다'는 명확한 메시지를 전달한다.
재정적 경계: 어머니나 형에게 금전적 요구가 들어올 경우, 부부 공동의 기준에 따라 공평한 비율(형과
동일하거나 형이 더 많이 부담하는 구조)을 제시하고, 과거의 편애를 이유로 부부가 희생하는 일은 단호
히 거부한다.
일부 사람들은 기준을 세우는 행위를 '이기적'이거나 '불효'라고 비난할 수 있다. 그러나 진정한 성인 관계에서 기준 세우기는 가장 건강하고 윤리적인 행동이다.
'착함'은 상대방의 일시적인 만족만을 추구하는 반면, '기준'은 관계의 장기적인 지속가능성을 목표로 한다. 기준을 명확히 할 때, 원가족은 더 이상 부부를 만만하게 보거나 과거처럼 함부로 대할 수 없게 된다. 이는 마지못해 부여하는 '착한 며느리/아들'이라는 수동적인 지위가 아니라, '독립적이고 존중받아야 할 한 가정의 주체'라는 능동적인 지위를 스스로 획득하는 일이다.
남편은 더 이상 '무덤덤함' 속에 갇히지 않고, 아내는 더 이상 남편을 대신해 고통받지 않는다. 부부는 스스로 세운 견고한 기준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평화를 찾고, 이는 원가족에게도 결국 새로운 차원의 존중을 요구하게 되는 성숙한 관계의 시작점이 된다. 기준 세우기는 착함을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과 배우자를 향한 진정한 착함을 실천하는 용기 있는 선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