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암과 무의식, 그리고 노벨의학상

생명과 정신의 경계를 묻다

소개글


2025년 노벨 생리의학상은 암 면역 회피 메커니즘(PD-1, CTLA-4 등)을 규명한 연구자들에게 돌아갔다. 이들은 암세포가 어떻게 면역세포의 공격을 피하고, 스스로를 ‘자기(Self)’로 위장하여 생존하는지를 밝혀냈다. 과학은 생명의 가장 깊은 전략을 해독했고, 우리는 그 전략 속에서 인간 정신의 구조와 놀라운 유사성을 발견한다.

이 글은 암세포와 면역세포의 생물학적 전쟁을 정신분석학적 은유로 풀어낸다. 암세포는 억압된 욕망의 그림자, 면역세포는 도덕과 규율의 검열자, 그리고 그 사이에서 흔들리는 자아. 생명과 정신은 서로를 비추는 거울이며, 그 경계에서 우리는 인간 존재의 본질을 다시 묻게 된다.

“나는 너를 지키기 위해 태어났지만, 너를 파괴하는 데 쓰이고 있다.”

이 한 문장으로 시작되는 무의식의 왕국 이야기. 지금부터 함께 들어가 보자. 독자는 의학적인 이야기를 내면의 심리이야기로 바꾸면서, 사실적인 측면을 가지고 어느 정도의 은유적 표현으로 바꾸어 서술하고 있다는 점을 유의하기 바란다.


무의식의 왕국 : 암세포와 면역의 정신분석학적 전쟁


“나는 너를 지키기 위해 태어났지만, 너를 파괴하는 데 쓰이고 있다.”


면역세포가 암세포 앞에서 속삭이는 이 문장은, 인간 내면의 구조를 들여다보는 정신분석학적 은유로 읽힐 수 있다. 생물학적 전쟁의 현장인 인체는, 사실 우리의 정신 구조와 놀랍도록 닮아 있다. 자아(Ego), 이드(Id), 초자아(Superego)로 구성된 정신의 왕국은, 매 순간 생존과 파괴 사이에서 줄다리기를 한다.

Whisk_10ce05a958f5adbba8342755464da723dr.jpeg

생명의 왕국: 자아, 이드, 초자아

인체는 하나의 왕국이다. 이 왕국의 현실적인 통치자는 자아(Ego)다. 자아는 매 순간을 살아내며, 외부 세계와 내부 충동 사이에서 균형을 잡는다. 그러나 왕국의 깊은 지하에는 이드(Id)가 숨어 있다. 이드는 쾌락과 욕망, 충동과 본능의 덩어리다. 이성이나 도덕은 없다. 오직 “원한다”는 감각만이 존재한다.

왕국의 질서를 유지하는 것은 초자아(Superego)다. 초자아는 도덕과 규율, 검열과 심판을 담당한다. 이드의 충동이 현실을 위협할 때, 초자아는 즉시 개입하여 그것을 억압하거나 제거한다. 이 구조는 면역 시스템과 놀랍도록 닮아 있다. 자아는 인체의 정상 세포, 이드는 암세포, 초자아는 면역세포다.


암세포의 탄생: 억압된 이드의 폭발

암세포는 이드의 그림자다. 통제되지 않는 증식, 분화 거부, 자원 독점, 파괴적 확장. 암세포는 자아의 질서를 무시하고, 초자아의 검열을 피해 왕국을 잠식한다. 이들은 과거 억압된 충동, 해결되지 않은 트라우마, 무의식 속에 잠재된 욕망의 잔재다.

암세포는 이성의 언어를 거부한다. 그들은 “왜?”라는 질문에 답하지 않는다. 오직 “더 많이”라는 욕망만을 반복한다. 이드의 본질은 바로 그것이다. 자아가 감당하지 못한 욕망은 무의식 속에 숨어 있다가, 어느 날 암세포라는 형태로 폭발한다.


초자아의 공격: 면역의 검열과 타자 인식

면역세포는 초자아의 군대다. T세포, NK세포는 왕국을 지키는 검열자들이다. 그들은 매일 수천 개의 암세포를 제거한다. 이는 초자아가 이드의 충동을 성공적으로 억압하고 있다는 증거다. 그러나 이 검열은 완벽하지 않다. 때로는 이드가 초자아를 속이고, 자아를 침범한다.

초자아는 암세포를 ‘나’가 아닌 ‘타자’로 인식한다. 이질적인 존재, 제거해야 할 위협. 그러나 이 인식이 흐려질 때, 왕국은 혼란에 빠진다. 초자아가 타자를 나로 착각하면, 검열은 멈추고 파괴는 시작된다.


조절 T세포와 면역 관영 : 초자아의 자기 파괴

암세포는 교활하다. 그들은 초자아 내부의 조절 T세포를 포섭한다. 조절 T세포는 초자아의 과도한 엄격함을 조절하는 완충 장치다. 이들은 자아가 스스로를 공격하지 않도록 막는다. 그러나 암세포는 죄책감, 자기 비난, 혼란 같은 신호 물질을 조절 T세포에게 제공한다.

조절 T세포는 이 뇌물에 현혹되어, 암세포를 공격하는 것이 오히려 자아를 해치는 일이라고 판단한다. 초자아는 마비되고, 면역 관용이 시작된다. 이는 정신분석학적으로 ‘자기 파괴적 방어 기제의 고착’이다. 초자아가 타자를 나로 착각하고, 검열을 멈추는 순간, 왕국은 무너진다.


태아기 퇴행 : 원초적 동일시와 면역 관문


암세포는 태아기로 퇴행한다. 이드의 충동이 가장 순수했던 시기, 어머니와 내가 분리되지 않았던 시절. 암세포는 그 시기를 모방한다. 면역 관문(PD-1, CTLA-4)은 암세포가 초자아에게 보내는 메시지다.


“나는 너의 일부다. 나를 공격하지 마.”


초자아는 이 원초적 동일시에 마비된다. 암세포는 더 이상 타자가 아니다. T세포는 태아세포를 가진 암세포를 보호해야 한다고 생각하며, 타자로 여기지 않는다. 자아는 과거의 상처와 충동에 굴복하고, 왕국은 잠식된다. 이는 인간 정신이 무의식의 그림자에 삼켜지는 순간이다. 억압된 욕망이 현실을 지배하고, 자아는 무너진다.


생명과 정신의 경계에서


암은 단순한 질병이 아니다. 그것은 인간 정신의 구조를 반영하는 거울이다. 억압된 욕망, 실패한 검열, 혼란스러운 동일시. 암세포와 면역세포의 전쟁은, 자아와 이드, 초자아의 전쟁이다. 우리는 이 전쟁 속에서 살아간다. 때로는 이기고, 때로는 지며, 때로는 그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는 사실조차 모른 채 살아간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이 전쟁을 인식하는 것이다. 내면의 구조를 이해하고, 무의식의 그림자를 직면하는 것. 그것이야말로 생명과 정신을 지키는 첫걸음이다. 억압된 감정과 욕망을 단순히 밀어내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왜 생겨났는지, 어디에서 비롯되었는지를 묻는 것. 그리고 그 질문을 통해, 우리는 비로소 자기 자신과 화해할 수 있는 가능성의 문을 연다.

암은 생물학적 반란이지만, 동시에 존재론적 질문을 던지는 사건이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무엇을 억누르고 살아왔는가? 내 안의 어떤 목소리가 침묵당했고, 어떤 욕망이 왜곡되어 나타났는가? 이 질문들은 단지 철학적 사유가 아니라, 치유의 시작점이 된다.

면역은 단지 세포의 방어 체계가 아니다. 그것은 자기 인식의 은유다. 나와 타자를 구분하고, 나를 지키기 위해 무엇을 받아들이고 무엇을 거부할지를 결정하는 능력. 이 능력이 흐려질 때, 우리는 외부의 위협뿐 아니라 내면의 혼란에도 무방비가 된다. 암은 그 혼란이 물질화된 형상일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생명을 지키기 위해, 정신을 돌보아야 한다. 무의식을 억압의 공간이 아니라 이해와 통합의 공간으로 바라볼 때, 우리는 비로소 이드와 초자아 사이에서 균형을 잡는 자아로 성장할 수 있다. 그것은 단지 병을 이기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회복하는 여정이다.

Whisk_272e7387685ef4897dc432c247bc9119dr.jpeg

마무리


암은 단순한 질병이 아니다. 그것은 인간 정신의 구조를 반영하는 거울이다. 억압된 욕망, 실패한 검열, 혼란스러운 동일시. 암세포와 면역세포의 전쟁은, 자아와 이드, 초자아의 전쟁이다. 우리는 이 전쟁 속에서 살아간다. 때로는 이기고, 때로는 지며...

그러나 중요한 것은, 이 전쟁을 인식하는 것이다. 내면의 구조를 이해하고, 무의식의 그림자를 직면하는 것. 그것이야말로 생명과 정신을 지키는 첫걸음이다.

생명과 정신은 분리된 것이 아니다. 하나는 다른 하나의 반영이며, 서로를 비추는 거울이다. 우리는 그 경계에서 살아간다. 그리고 그 경계에서, 우리는 매일 선택한다. 억압할 것인가, 이해할 것인가. 외면할 것인가, 직면할 것인가. 파괴할 것인가, 통합할 것인가.

그 선택의 반복 속에서, 우리는 조금씩 배운다. 생명을 지키는 것은 단지 몸을 치료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이해하고 사랑하는 일이라는 것을. 그리고 그 깨달음이야말로, 암이라는 어둠 속에서 피어나는 가장 깊은 빛일지도 모른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이병철 회장의 두 도덕: 가난한 도덕과 부자도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