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정론은 운명론이 아니야
얼마 전, 신앙이 깊은 친구와 나눈 대화는 나를 낯선 사색의 입구로 이끌었다. 그는 늘 그렇듯 진지한 얼굴로 물었다.
"나는 예정론이 도무지 이해가 안 돼. 하나님이 모든 것을 미리 정해두셨다면, 인간의 자유의지는 대체 어디에 설 자리가 있는 걸까?"
이 질문은 성경적 진리와 인간 실존 사이의 오랜 딜레마다. 때로 하나님의 주권과 나의 선택 사이에서 균형을 잡는 일은, 마치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는 모래를 붙잡으려는 것처럼 허무하게 느껴진다.
나는 잠시 침묵하다가, 차분히 말했다.
"네 삶의 궤적을 한번 거꾸로 돌아봐. 그게 바로 예정론이야."
친구는 고개를 갸웃했지만, 그 말은 곧 우리 삶의 근원을 탐색하는 긴 대화의 시작이 되었다.
우리의 하루는 무수한 선택의 연속이다. 아침에 어떤 옷을 입을지, 업무 중 어떤 프로젝트를 선택할지, 퇴근길에 누구의 전화를 받을지. 우리는 이 모든 결정이 오롯이 나의 자유의지의 결과라고 믿는다.
하지만 지금의 '나'를 만든 결정적인 순간들을 돌이켜보자. 스무 살에 무심히 선택했던 전공, 절망의 순간에 우연히 잡았던 책의 한 구절, 전혀 예상치 못한 순간에 고백했던 사랑의 말 한마디. 그 수많은 선택의 갈림길 중 단 하나라도 달랐다면, 지금 이 순간의 나는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 사실 앞에 서면, 문득 섬뜩한 깨달음이 찾아온다.
"내가 자유롭게 선택한 줄 알았던 이 모든 우연이, 어쩌면 처음부터 나의 삶이라는 그림을 완성하기 위해 예정되어 있었던 것은 아닐까?"
마치 흩어져 있던 퍼즐 조각들이 제자리를 찾아 하나의 거대한 그림을 완성하는 것처럼 말이다.
삶은 때로 설명되지 않는 우연들로 가득하다. 늦잠을 자 놓친 비행기, 예상치 못하게 고장 난 자동차, 문득 떠올라 들른 낯선 도시의 작은 서점. 당시에는 그저 불편하거나 무의미한 순간으로 치부된다.
그러나 시간이 흐른 뒤, 우리는 깨닫는다. 그 놓친 비행기 덕분에 더 중요한 인연을 만났고, 고장 난 자동차 앞에서 새로운 용기를 얻었으며, 서점에서 발견한 책이 삶의 방향을 완전히 바꿔놓았음을.
때로는 내가 선택하고자 했던 그 우연을 놓치고 다른 선택을 하게 되면서 내 삶 속에 어색한 손님처럼, 때로는 침략자처럼 들어온 우연조차도 필연이 되는 경험을 우리는 수없이 해 왔다. 이 대목은 바로 드라마 <사랑의 불시착>에서 이정혁(현빈 분)이 윤세리(손예진 분)에게 다음과 같은 말을 한다.
"잘못 탄 기차가 목적지로 데려다준다"
어떤가?
나의 인생에도 그런 필연의 순간들이 있었다.
우연히 들어간 카페에서 만난 평생의 멘토, 우연히 받은 기차표 한 장이 이끈 새로운 직장, 우연히 겪은 실패가 역설적으로 만든 성공. 그 모든 '우연'은 결코 무작위가 아니었다. 그것은 내 존재의 밑그림을 채워나가는 섭리였다. 예정은 저 멀리 초월적인 곳에 존재하는 엄격한 계획이 아니라, 우리가 살아가는 우연의 순간들이 시간을 통과하며 필연으로 변해가는 과정인 것이다.
예정론을 이해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나 자신의 '존재의 기원'을 거슬러 올라가 보는 것이다.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나기 위해서는 부모님의 만남이 필요했고, 그 만남을 위해서는 그들의 부모님의 수많은 선택이 필요했다. 내가 태어나기 위해서는 수많은 조상들 각자의 삶에서 각자의 선택의 결과, 그들 중 한 번의 만남, 단 한 번의 결정이 어긋났다면, 이 글을 쓰고 있는 나,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생각할수록 소름 끼치는 이 '존재의 기적'은 무엇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 수많은 확률과 우연의 사슬처럼 보이지만, 그 속에는 태초부터 나를 향해 흐르는 묘한 질서와 방향이 숨어 있다. 그리고 우리는 그 질서와 방향을 신앙의 언어로 ‘예정’이라 부른다. 예정은 나를 억압하는 운명이 아니라, 나의 존재 자체를 축복하는 기원의 언어인 것이다.
사람들은 종종 예정론을 오해한다.
"모든 것이 정해져 있다면, 나는 인형이나 다름없는 것 아닌가?"
하지만 예정은 우리의 삶을 굴레 속에 얽매는 '미리 정해진 결과'가 아니다. 그것은 오히려, 우리가 자유롭게 사랑하고, 원치 않는 실수를 하고, 다시 일어설 수 있는 '하나의 큰길'이다.
우리는 매 순간 최선을 다해 선택하고, 때로는 성공하기도 하지만 가끔은 처절하게 실수한다. 그러나 그 모든 선택과 실수 속에서 하나님은 우리가 '나답게' 될 수 있는 미래의 길을 함께 그리고 계신다. 우리는 예정된 길을 '자유롭게' 걷는 존재이다. 이 상반된 두 개념이 모순 없이 공존할 때, 우리는 비로소 삶의 깊은 안정감과 의미를 발견하게 된다.
예정론은 책상 위 교리가 아니다. 그것은 삶을 살아내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체험되는 하나님의 섭리의 언어이다. 누군가를 만나는 일, 고통 속에서 의미를 찾는 일, 예상치 못한 상실을 견뎌내는 일. 이 모든 순간을 통과한 뒤, 우리는 고개를 끄덕이며 속삭인다.
"아, 이 모든 것이 나를 위해 연결되어 있었구나."
예정론은 가장 먼 신학의 언어가 아니라, 우리 삶의 가장 가까운 숨결 속에 깃들어 있는 비밀이다. 우리가 지금 여기에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 그리고 이 글을 읽으며 삶의 의미를 찾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우리는 수많은 필연의 결과이다.
하나님은 우리가 어떤 '결과'에 도달할지를 정하신 것이 아니라, 우리가 자유롭게 사랑하고, 실수하고, 성장하며 나아갈 수 있는 '방향'을 예정하셨다.
우리는 오늘도 우연을 만나며 하루를 시작한다. 하지만 이제 우리는 안다. 그 우연이 결국 필연이 되어 우리를 이끌어갈 것이며, 그 모든 과정이 우리를 '가장 나다운 나'로 완성해 가는 예정된 기적이라는 것을.
이렇게 볼 때 나와 당신의 삶은 그 자체로 예정된 기적이다.
- to be continu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