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을 입으로 뜯는 습관 : 말더듬과 공격성이 나에게 보내는 경고
우리는 살면서 수많은 감정적 압력을 받는다. 부당함, 불만, 분노... 이러한 감정들은 '사회적 규범'이라는 이름 아래 꿀꺽 삼켜지곤 한다. 하지만 에너지는 사라지지 않는다. 입 밖으로 나오지 못한 공격성은 결국 가장 만만한 대상을 향한다. 바로 '나 자신'이다. 스트레스를 받는 상황에서 가해자에게 공격하지 못하면 결국 나 자신을 공격하게 되는 것이다. 이는 우울증이 들어오는 경로 중 하나이기도 하다. 나의 경우, 우울증 대신 말을 더듬고, 손톱을 입으로 뜯는 형태로 나타났다.
최근 나는 나의 내담자의 삶의 습관 중에 '안으로 향한 공격성'의 경로를 추적하는 과정이었다. 말 더듬는 문제, 그리고 손톱 주변의 거스러미를 습관적으로 뜯는 강박적 행동이 사실은, 내가 세상에 던지지 못한 '억울함'의 물리적 증거였음을 깨달았다.
분석가와의 심도 있는 대화를 통해, 나는 '말의 속도'를 늦추고 '주장의 속도'를 높이는 훈련이야말로 진정한 심리적 성숙으로 가는 길임을 배웠다.
나에게는 손톱 주변의 피부를 손이나 입으로 뜯는 습관이 있었다. 겉으로 보기에는 '외관상 안 좋은 걸 제거한다'는 합리적인 이유였지만, 분석가는 이를 전혀 다른 차원에서 해석했다.
"그거를 손톱깎이 같은 도구를 사용하지 않고 직접 손으로 뜯거나 이빨로 뜯고 하는 이게 문제인 거죠.... 공격성을 적절하게 외부에 표현하지 못하고 자기주장을 그때그때 하지 못한 결과 자기를 공격하는 거란 말이다."
'손 뜯기'는 단순한 버릇이 아니라, 외부 세계를 향해야 할 공격성(Aggression)이 자기 자신에게로 방향을 돌린 '자가 공격(Self-Attack)'이었다. 회사에서, 혹은 부부 관계에서 꾹 눌러 담아두었던 모든 억울함(Unfairness)이 손끝의 미세한 상처를 통해 분출되고 있었던 것이다.
상담자의 이 해석은 내 삶의 깊은 패턴을 드러냈다. 나는 갈등을 피하기 위해 양보하고 침묵하는 것이 미덕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 결과는 평화가 아니라, '내 안에서 쌓이고 있었던 억울함'의 고통이었다. 공격성은 사라지지 않고, 결국 가장 안전한 대상인 내 몸을 해치고 있었다.
이러한 '안으로 향한 공격성'을 외부로 돌리기 위한 분석가의 조언은 두 가지 측면에서 실질적이었다.
가장 중요한 심리적 처방은 '내 주장을 그때그때 잘하는 것'이었다. 이는 최근 내가 아내와의 금전적 갈등 상황에서 '말을 하고 싶은 충동'을 느끼고, 결국 섭섭했던 감정을 표현하며 오해를 풀었던 경험과 연결된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갈등상황이 발생하거나 나와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이 있으면, 그냥 양보해 주고 내 주장을 철회하는 것이 나의 패턴이었다. 그런데 이제 그러고 싶지 않게 되었다.
분석가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그 억울함을 그동안은 그냥 양보하는 걸로 대체한 것 같거든요.... 양보한 것 같지만 양보해서 억울함이 없어 보이는 것 같은데, 그 억울함은 내 안에서 쌓이고 있었던 거예요."
이제 나는 억울함을 참는 대신, 그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하고 '건강하게 잘 싸우는 법'을 배워야 한다. 이는 관계를 파괴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현실적이고 합리적인 경계를 세워 관계를 단단하게 만드는 핵심이다.
행동적인 차원에서 분석가는 강박을 통제하는 구체적인 방법을 제시했다.
도구의 활용: 손으로 뜯는 대신 '손톱깎이로 사용하라'는 조언은, 감정적이고 충동적인 자가 공격을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도구로 대체하는 상징적인 의미가 있다. 손톱깎이를 사용하는 순간, 나는 '강박적 자가 공격자'에서 '합리적인 자기 관리자'로 역할이 전환된다.
반강박 적용: 강박을 벗어나기 위한 가장 강력한 방법은 '반대의 강박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뜯고 싶은 충동이 들 때, 의식적으로 '뜯지 말아야 한다'는 강박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낡은 무의식적 패턴을 새로운 의식적 패턴으로 덮어쓰는 심리적 훈련이다.
말 더듬는 문제 역시 이 '충동적 패턴'의 연장선상에 있었다. 과거 나는 침묵을 견디지 못하고 빨리 말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기에, 내 생각의 속도보다 말이 앞서 나갔고, 이는 '버퍼링'과 같은 말 더듬을 유발 했다.
"그러니까 말하는 속도 하고, 생각하는 속도 하고, 뭔가 보조를 맞춰가면 지금 이 부분도 극복해 가는 방법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상담 말미에 교수님은 나의 말의 속도가 "굉장히 느려졌다는" 놀라운 변화를 포착했다. 이는 단순히 느려진 것이 아니라, 내가 "생각을 훨씬 많이 하면서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증거이자, 말의 속도를 늦춰 '생각의 속도'에 맞추는 내적 조절을 시작했음을 의미한다.
이는 정서적 성숙의 가장 중요한 징표이다.
과거의 나는 일이든 상황이든 '빨리 해결해야 한다(급한 일 처리)'는 충동으로 살았지만, 이제는 '말을 늦추고 침묵을 감당하며 숙고하는' 힘을 얻고 있다.
말이 느려진다는 것은 '빨리 말해야 한다'는 강박'을 이겨내고, 비로소 내면의 깊은 생각과 외현적 표현을 일치시키기 위한 노력을 시작했다는 선언인 셈이다. 마치 아이디어가 너무 많아 입이 하나로는 부족해 대통령 앞에서 말을 더듬었던 어느 장관처럼, 나는 이제 그 넘치는 생각을 다 담아낼 수 있도록 말의 그릇을 키우는 훈련을 시작한 것이다.
손톱을 뜯는 습관을 통해 나는 내 안에 쌓아두었던 모든 억울함과 공격성을 마주했다. 그리고 말의 속도를 늦추는 훈련을 통해, 그 억압된 감정들이 튀어나와 나를 다치게 하기 전에 '숙고(deliberation)'라는 안전망 속에서 걸러낼 시간을 벌었다.
이렇게 생각이 많아지고, 말이 느려진 나의 새로운 습관을 분석가는 놓치지 않고 피드백해 주었다. 그 결과 하나의 교훈을 얻게 되었다.
성숙은 '빨리' 가는 것이 아니라 '정확하게' 가는 것이다.
이제 나는 압박 속에서도 잠시 멈추고, 손톱깎이를 꺼내 들고, 말할 내용을 속으로 한 번 더 점검해 볼 것이다. 이 느려진 속도와 정돈된 주장은, 나를 향하던 공격성을 방향을 틀어 세상과 건강하게 소통하는 통로를 열어줄 것이다.
만약 당신의 삶에도 무언가를 끊임없이 뜯거나, 혹은 말문이 막히는 순간이 있다면, 잠시 멈춰 서서 스스로에게 물어보라.
"지금 내 안에 갇혀 있는 억울함은 무엇이며, 나는 왜 내 말을 내 생각보다 앞서 나가게 하고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