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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 후 끝나지 않은 투쟁: 모성자리에 남편자리를

오늘날 결혼이라는 사회적 경계가 그어졌음에도 불구하고, 성인 딸의 내면에서 어머니로부터의 심리적 분리(Psychological Separation)가 어려운 과제로 남아 부부관계까지 악영향을 미치는 경우가 많다. 직장 생활을 하는 딸 지연(가명)씨는 이제 독립된 가정을 꾸렸지만, 어머니의 수시 출입, 가사 개입, 그리고 끊임없는 비난에 시달린다. 이 물리적인 침입은 딸의 내면에 '내면의 어머니(Inner Mother)'라는 확고한 형태로 자리 잡아, 딸의 '개별화'를 방해할 뿐만 아니라, 부부 관계라는 새로운 심리적 구조의 정착마저 위협하는 핵심 요인으로 작동한다.


가사 개입의 역설: 통제와 비난의 상징적 언어


지연 씨의 어머니는 "김치도 갖다주고, 화장실 청소, 냉장고 정리 등"을 해주고 가는 행위를 통해 딸에 대한 사랑과 헌신을 표현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상담적 관점에서 이러한 행위는 순수한 도움이 아니라, 딸의 독립된 생활 방식에 대한 불신통제 욕구의 상징적 표현이다.

어머니는 딸의 집에 들어와 자신의 기준대로 냉장고를 재배열하고 화장실을 청소함으로써, "너는 이 정도도 제대로 할 줄 모르는 미숙한 존재"라는 무언의 메시지를 딸에게 각인시킨다. 그리고 이 행위는 "그렇게 살면 안 된다" 그리고 "너는 나 없이는 제대로 살 수 없다"는 직접적인 비난과 함께 딸의 일상에 대한 절대적인 심판관의 역할과 통제자 역할을 수행한다.


이러한 물리적 침입이 갖는 심리적 파장은 다음과 같다.


자기 주권의 박탈: 어머니의 손길이 닿는 모든 공간(주방, 화장실)은 더 이상 딸과 남편만의 '부부 공간'이 아니라, 어머니의 규칙과 질서가 지배하는 영역이 된다. 딸은 자신의 집에서조차 주인으로서의 권리를 잃고, 마치 여전히 어머니의 감시 아래 있는 미성년의 딸로 되돌아간다.


'내면의 어머니'의 각인: 어머니의 비난이 반복되면, 딸은 실제로 어머니가 물리적으로 없을 때조차 어머니의 목소리를 듣게 된다. 집안을 '이 상태로 두면 안 된다'는 강박적이고 비판적인 목소리는 딸의 내면 공간에 영구적인 '내면의 비평가'로 자리 잡는다. 딸이 잠깐 휴식을 취하거나 집안일을 미룰 때마다, 이 내면의 어머니는 죄책감과 불안을 유발하며 딸의 자율성을 억압한다.

어머니의 지속적인 경계 침범은 딸이 독립을 이루었음에도 불구하고 심리적 개별화를 훼손하는 핵심 기제가 된다. 물리적 경계가 무너진 것처럼, 딸의 내면 공간 역시 어머니의 그림자에게 점령당한 상태로 남아 있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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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 관계의 위협: 남편이 들어올 공간의 부재


가장 심각한 문제는 어머니가 딸의 내면 공간을 차지하고 있을 때, 남편이 부부 관계라는 심리적 구조에 확고하게 자리 잡을 공간이 없어진다는 점이다.


결혼은 딸이 어머니와의 '수직적 관계'에서 벗어나 남편과 '수평적이고 대등한 관계'를 형성하는, 심리적으로 중대한 전환점이다. 그러나 어머니가 딸의 내면을 지배할 때, 부부 관계는 '삼각화'되거나 '병존하는 두 개의 이인조 관계'로 분열된다.


내면 공간의 점유와 남편의 외부인화

딸의 내면이 어머니의 비난과 요구(규칙, 질서)로 가득 차 있을 때, 딸은 무의식적으로 어머니의 기대에 부응하거나 어머니에게서 벗어나려는 에너지 소모에 집중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남편과의 친밀감을 형성하고 배우자로서의 연결을 심화시킬 심리적 용량이나 시간이 부족해진다.


"엄마가 내면 안에 자리 잡고 있으면 남편이 들어올 공간이 없다."


이는 물리적 공간을 넘어선 정서적 공간의 문제다. 남편은 아내의 가장 내밀한 감정이나 진정한 자아가 아닌, '어머니와 싸우고 있거나 어머니의 눈치를 보는 아내'만을 마주하게 된다. 남편은 결혼했음에도 불구하고 아내의 가장 중요한 핵심 관계에 참여하지 못하고 주변인으로 머물게 되는 것이다.


남편의 '눈치 보기'와 관계 정착의 어려움

지연 씨의 남편은 이 복잡한 역동 속에서 두 여자의 눈치를 보게 된다.

어머니의 눈치: 남편은 시어머니가 집에 왔을 때 아내의 살림 능력을 비판할까 봐 불안해하며, 어머니의 기준에 맞춰 행동하게 된다. 이는 남편이 아내를 보호하거나 옹호하는 대신, 평화 유지군이나 중재자 역할에 갇히게 만든다.

아내의 눈치: 남편은 아내가 어머니의 비난으로 인해 예민해지거나 감정적으로 폭발할까 봐 두려워하며, 아내의 감정을 자극하지 않도록 조심하게 된다.

이러한 '눈치 보기' 상황은 부부간의 자발성과 진실성을 훼손하며, 건강한 성인 대 성인의 동반자 관계가 정착되는 것을 방해한다. 부부 사이의 중요한 의사 결정은 어머니의 기준이나 기대에 간접적으로 영향을 받게 되면서, 부부 이자관계만의 고유한 규칙과 문화가 형성되기 힘들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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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별화의 최후 과제: 내면의 '모성'을 떨궈내기


지연 씨가 어머니를 "떨궈내려고 애쓰는" 모든 행동은 자신의 자아를 지키기 위한 필사적인 투쟁이다. 그러나 물리적으로 어머니의 출입을 막거나 화를 내는 것만으로는 이 투쟁을 끝낼 수 없다. 어머니의 목소리가 이미 내면화되었기 때문이다.


궁극적인 개별화는 외부의 어머니를 막아내는 것을 넘어, 내면의 어머니'해고'하는 과정이다.

'내면의 어머니 해고'한다는 것은 딸이 어머니의 비난을 더 이상 '사실'이 아닌 '어머니의 의견(Opinion)'으로 재해석해야 한다. '네가 그렇게 살면 안 된다'는 말에 대해 '나는 내 방식대로 잘 살고 있다'는 자기 확신을 세우고, 이 확신을 자신의 새로운 기준으로 대체해야 한다. 딸의 내면에 어머니를 내보내야, 그 심리적 공간에 남편이 들어오게 되면서 확고한 부부의 자리를 만들어낼 수 있다.


내면의 어머니를 해고하는 것이 투쟁의 종결점이자 부부 관계의 회복 열쇠이다. 딸이 어머니의 비판적 시선이 아닌 남편의 긍정적 지지배우자로서의 신뢰를 자신의 내면의 권위로 받아들일 때, 비로소 어머니가 남긴 공백은 남편이라는 동반자의 사랑과 연대로 채워진다.


지연 씨의 내면에서 어머니가 완전히 떠나고 남편이 확고한 동반자로 자리 잡는 순간, 부부 관계는 진정한 의미에서 '이인조(Dyad)'로 정착되며, 비로소 성인으로서의 독립된 가정이 완성될 것이다. 이는 개인의 심리적 성숙과 결혼 생활의 안정성이 불가분의 관계에 있음을 보여주는 가장 중요한 증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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