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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현 Aug 01. 2020

‘스쿨 미투’가 도전하는 학교의 질서

성폭력·성차별을 낳는 학교의 권력관계

2018년과 2019년에 가장 이슈화된 학생인권 문제 중 하나는 ‘스쿨 미투’였다. 미투 운동은 주로 권력형의, 위력에 의한 성폭력(성폭행·성추행·성희롱)을 고발하고 연대하는 의미를 담은 운동이다. 미투 운동의 영향으로, 한국의 중·고등학교에서는 ‘스쿨 미투’라는 이름으로 교사에 의한 성폭력을 사회적으로 고발하는 운동이 등장했다. 언론에 따르면 2018년 11월 초까지 69개 학교에서 스쿨 미투 운동이 일어난 것으로 집계되는 등 전국적으로 적지 않은 학교에서 고발이 있었다.(스쿨 미투 후에도 변한 건 없었다”, 〈경향신문〉, 2018년 11월 4일.) 학교 현장에서 그리 드물지 않은 일이라는 방증일 것이다. 10여 년 전 영화 평론가이자 작가인 듀나가 “(교사들이) 자기들을 성추행하거나 자기 성질에 못 이겨 멋대로 구타하거나 엄마, 아빠한테서 뇌물을 뜯어먹지만 않아도 아이들은 고마워할 것이다”(“‘스승의 노래’는 환상, 존경심 없는 게 학생 탓이랴”, 〈한겨레〉, 2006년 4월 20일.)라고 신랄하게 썼던 것이 떠오르는 현실이다.


스쿨 미투라는 이름의 전국적인 운동은 최근에 일어났지만, 학교 안 성폭력에 학생들이 저항하는 예는 오래전부터 있어 왔다. 1987년, 경기도 파주여자종합고등학교(파주여종고) 투쟁은 학생들이 나서서 교사에 의한 성폭력을 처음으로 공론화시킨 사건이었다는 의의를 가진다. 당시 파주여종고에서는 사학 비리 척결과 학교 민주화를 요구하며 학생들이 시위와 농성을 벌였다. 투쟁의 와중에 체육 교사가 다수 여학생들을 강간·성추행했다는 사실이 피해자들의 고발을 통해 알려졌다. 학생들은 학교 민주화와 비리 척결, 폭력·성폭력 교사의 퇴출을 요구하며 투쟁을 이어 갔다. 여성의 전화, 민주교육실천협의회, 서울YMCA중등교육자협의회 등의 단체들이 공동대책위를 결성하여 법적 대응을 돕고 투쟁을 지원했다.(양돌규(2006), 〈민주주의 이행기 고등학생운동의 전개 과정과 성격에 관한 연구〉, 성공회대학교 일반대학원 석사 논문.) 그 이후에도 교사에 의한 성추행·성희롱에 대한 고발은 계속 있었다. 그만큼 고질적인 문제였던 것이다.



다양한 문제들에 비판을 제기하는 스쿨 미투


최근 스쿨 미투 운동으로 공론화된 사건 내용들을 살펴보니 한 가지 특징이 눈에 띈다. 교사에 의한 신체 접촉과 성추행, 성적으로 모욕감을 느끼게 하는 성희롱 등도 다수이지만, 그에 못지않게 교사가 성차별적 발언을 했다거나 여성, 성소수자 등에 대해 혐오 발언을 했다는 것도 고발 내용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용의·복장 단속 과정에서 불쾌감을 느꼈다는 내용들도 있다.


사회적으로 이슈가 되는 미투 사건이 보통 강간이나 지속적인 성추행인 경우가 많은 것과는 대조적이다. 교사의 그러한 발언이 수십 명의 학생들 앞에서 이루어지고 교사의 권위 때문에 반박을 제기하기 어렵다는 특성 때문에 특히 중하게 받아들여지는 것일 수도 있을 것이다. 혹은 학교 교사에게 우리 사회가 요구하고 기대하는 규범의 수준이 높아서 성차별적 발언 등이 더욱 비판받는 것일 수도 있겠다.


문제는, 이처럼 스쿨 미투가 제기하는 사건 내용과 성격이 다양하다 보니, 가해자로 지목된 교사에 대한 처벌이나 조치도 세간의 기대만큼 명쾌하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가령 차별적 발언 등은 현행법상 처벌 대상이 아니며 중징계 사유도 되기 어렵다. 비판이나 시정, 반성의 대상이 되어야 할 편견이나 차별적 인식이 ‘고발’이라는 형식을 거쳐 징계나 사법 절차로 다루어지게 되면 적절한 결과를 기대할 수 없다. 가해자로 지목된 교사 입장에서는, 자기 말이 오해받거나 잘못 전달되었다고 생각하는데 이를 무작정 처벌 대상으로 삼는다며 반감만 가지는 경우도 있을 수 있다. 반면 학생들의 입장에서는 학교나 교사에 불만을 표현하여 진지하게 응답받을 수 있는 길이 없기에, 폭로와 고발밖에는 수가 없다고 느끼는 것이 현실이다. 스쿨 미투 운동이 꺼내 놓은 문제들에 대해, 다른 영역에서의 미투 운동에 비해 더 세심한 대응이 요구되는 이유다.



학생인권 보장 그리고 더 평등한 관계


스쿨 미투 운동은 학교 안에서 일어나던 교사에 의한 성폭력, 재생산·전파되던 성차별 문화와 편견을 지적하며 학교교육에 경종을 울리고 있다는 점에서 사회적 의미가 크다. 스쿨 미투의 이름으로, 주로 여학생들이 페미니즘의 문제의식에 의거해 그동안 말하지 못했던 폭력과 차별의 경험을 이야기하고 고발함으로써 변화를 촉구하는 주체로 나서고 있다. 전 사회적인 미투 운동의 영향을 받아 학교 안에서도 변화가 시작되는 모습은, 학교의 담장이 과거에 비해 한층 낮아졌음을 실감케 하기도 했다.


다만 스쿨 미투를 바라보는 우리 사회의 시선에는 아직 한계가 있어 보인다. 스쿨 미투 때문에 교권이 추락한다거나 어떻게 학생이 교사를 고발하냐는 종류의 적대적 반응은 잠시 치워 두더라도 말이다. 스쿨 미투 운동에 우호적인 사람들도 많이 보이는 반응이 ‘어떻게 교사가 학생에게 그럴 수 있느냐’라는 등 가해자로 지목된 교사가 교사로서의 자질이 부족하다는 비난이다. 페미니즘운동 지지층에서는 ‘남성’ 가해자의 후진적인 인식이나 행태를 비판하는 의견이 커지기도 한다.


그러나 스쿨 미투가 고발한 현실을 이렇게만 이해한다면, 가해 교사를 엄벌하고 퇴출시키는 것만이 해결 방법으로 부각될 것이다. 학교 안에서의 일상적인 성폭력 문제는 그동안 왜 이야기될 수 없었는지, 학생들은 왜 침묵해야 했는지, 스쿨 미투 운동을 하면서도 왜 학교 밖 온라인 공간에 익명으로 고발해야 했는지는 관심에서 멀어지게 된다. 교사에게 ‘찍히는 것’을 두려워해야 하는 학교생활, 벌점·징계나 학교생활기록부 작성 등 교사가 직접 사용하여 학생들의 입을 막을 수 있는 자의적인 권력들, 존경하고 따라야 할 대상이라며 교사를 의심하고 고발하는 것을 부정적으로 보는 이데올로기의 문제는 잘 논의되지 않는다.


더군다나 앞서 말했듯 스쿨 미투로 고발된 사건들의 성격이 다양하기 때문에 가해자에 대한 처벌을 강조하는 것의 한계는 더욱 분명하다. 교사 개인의 문제라기보다는 학교의 문화와 구조에서 조장된 문제들도 많기 때문이다. 예컨대, 중·고등학교의 성별 고정 관념에 따른 두발 및 용의·복장 규제 그리고 체벌 등은 학생들의 신체에 대한 침해, 간섭이 일상적으로 일어나게 한다. 학생들의 신체와 인격에 대한 존중이 없는 이러한 환경 속에서는 성폭력이나 모욕적 언행도 더 쉽게 일어나게 된다. 교사의 차별적 발언에 대해 학생들이 자유롭게 비판하는 의견을 말할 통로가 없을 때, 그것은 교사의 개인적 편견 문제가 아니라 학생들이 일방적으로 견뎌야 하는 폭력이 된다.


미투 운동은 미국에서 시작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미국 학교에서의 미투 운동은 대개가 교사에 의한 것이 아니라, 학생들 사이의 강간 문화, 남학생의 성차별·성폭력에 대한 고발인 것으로 보인다.(“스쿨미투 해결책? 소녀들의 목소리를 들어라”, 〈경향신문〉, 2019년 10월 28일.) 한국의 스쿨 미투가 대부분 교사에 의한 성폭력·성차별을 고발하는 것이 된 것은, 한국 학생들의 열악하고도 낮은 사회적 위치와 학교 안의 권력관계, 교사와 학생 간의 위계를 반영한 현상은 아닐까. 


여성 노동자의 일터에서의 성추행·성희롱 등의 문제가 개선되기 위해선 노동조합이 결성되고 노동자의 권리가 향상되는 과정이 필수적이었다. 학교에서도 마찬가지다. 파주여종고에서 학교 민주화를 요구하는 투쟁을 통해 성폭력 문제도 밝혀진 것이 단지 우연은 아니었다고 생각한다. 스쿨 미투 운동을 해 온 ‘청소년 페미니즘 모임’(현 청소년 페미니스트 네트워크 위티)이 발표한 요구 중에는 ‘〈사립학교법〉 개정’과 ‘학생인권법 제정’이 포함되어 있다. 학생들이 존중받는 문화, 더 평등한 관계, 자유롭게 말하고 비판할 수 있는 학교를 만드는 것이 스쿨 미투 운동이 가리키는 방향일 것이다.






올해 3월, 청소년인권에 관련해서 쓴 여러 글들을 엮어서

《유예된 존재들 - 청소년인권의 도전》(교육공동체 벗, 2020, 16,000원)이라는 책을 냈습니다.

과거 쓴 글들 중 고쳐 쓴 글들이 많고, 아예 새로 쓴 글도 몇 있습니다.

위의 글은 이 책에 실린 스쿨 미투 운동의 의의를 짚은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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