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능력주의의 대안을 묻는다면(책 3권 리뷰)

《한국의 능력주의》, 《공정 이후의 세계》, 《시험능력주의》

by 공현


2020년 11월에 교육공동체 벗에서 《능력주의와 불평등》을 발간한 뒤 책을 소개한 언론 기사 중 이런 대목이 있었다. “국내에서도 능력주의를 주제로 다룬 책이 처음으로 출간됐다.”(“‘능력주의 논쟁’… 국내 출판계로 옮겨 붙나”, 〈매일경제〉, 2020년 12월 8일) 정말 최초라면 큰 영광이고 성과였겠지만 틀린 내용이었다. 예컨대, 강준만의 《개천에서 용 나면 안 된다》(2015)는 당시 사회적 화두이던 ‘갑질’ 현장의 배경에 능력주의 문제가 있다는 분석을 담고 있다. 이경숙의 《시험국민의 탄생》(2017)도 상당 부분이 시험-평가 제도와 결합한 능력주의 문제를 지적하는 것이다. 장은주의 《시민교육이 희망이다》(2017)의 전반부 절반 정도는 ‘메리토크라시(meritocracy)’와 그것이 초래한 사회 현상에 대한 비판에 할애되고 있고, 장은주는 이전 저작에서도 한국의 메리토크라시 비판을 연구 주제로 삼았다. 박남기의 《실력의 배신》(2018)은 주로 교육 영역에 천착해 ‘실력주의’ 문제를 제기했다. 성열관의 〈메리토크라시에서 데모크라시로 : 마이클 영의 논의를 중심으로〉(2015)라는 논문은 내게 능력주의 비판을 공부할 때 큰 도움이 된 텍스트였고, 《비판적 실천을 위한 교육학》(2019)이라는 단행본에 실렸다.


바로 떠오르는 것만 이 정도이지, 아마 능력주의 비판을 주제로 삼은 책들, 글들은 더 많이 있었을 것이다. 번역서나 학술 논문, 칼럼 등까지 포함하면 능력주의에 대한 문제의식은 한국 사회에서도 제법 오랫동안 축적되어 왔다. 다만 열거한 책 제목들을 보면 ‘능력주의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전면에 내세운 경우는 별로 없다. 동일한 현상과 이데올로기를 두고 ‘능력주의’, ‘능력중심주의’, ‘능력지상주의’, ‘실력주의’, ‘업적주의’, ‘메리토크라시’ 등 각기 다른 용어를 사용하고 있는 점도 눈에 띈다. 추측건대, 능력주의에 반대한다는 제목을 다는 것이 별로 대중에게 먹힐 만하지 않다고 여겨졌던 것 아니었을까. 그러니 변한 것은 논자들이라기보다는 수용자, 즉 대중이다. 능력주의에 뭔가 문제가 있다는 생각이 널리 퍼지고 ‘meritocracy’를 한국어 ‘능력주의’라는 개념으로 이해하게 되면서 능력주의 비판이 한층 더 활발해지고 시대의 화두가 된 것이다.


한국 사회에서 능력주의 비판이 부상한 직접적 계기는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논란이었다. 사실 전부터도 유사한 조짐은 있어 왔다. 2017년, 공공 기관 블라인드 채용 도입이 역차별이고 불공정하다는 목소리가 불거졌다. 2013년, 오찬호의 《우리는 차별에 찬성합니다》는 20대 대학생들에게 개인 책임론과 자기 계발 논리를 내면화하고 비정규직 차별, 학력 차별을 옹호하는 경향이 있음을 드러냈다. 말하자면, 능력과 노력에 따른 차등을 이야기하며 공정성을 강조하는 것이 그리 긍정적인 결과로만 이어지지 않는단 것을 깨닫게 하는 장면들이었다. 이런 사건들을 겪으며 능력주의를 성찰하고 보완하거나 극복해야 한다는 인식이 널리 퍼졌다. 그러면서 그동안 축적된 이야기들이 재조명되고, 마이클 샌델과 같은 외국 학자들의 비판론이 수입되며, 그 기반 위에서 한국 상황에 맞는 논의가 자라나기 시작한 것이 현 상황이라고 할 수 있겠다. 2021~2022년에 능력주의를 비판하는 논조의 책이 여럿 나왔는데, 그중 의미 있고 큰 흐름을 보여 주는 저작들을 살핀다.



K-능력주의, 무엇이며 왜 문제인가


한국의능력주의.jpg 박권일, 2021, 한국의 능력주의, 이데아


먼저 박권일의 《한국의 능력주의》는 이 주제를 선도해 왔던 저자가 연구를 집대성해 낸 책으로, 한국 능력주의 비판의 전환점이라고 할 만하다. 이 책은 한국 사회의 능력주의 이데올로기가 어떤 역사적 과정을 거쳐 형성되었는지를 정리한다. 그리고 현재 한국 사회에서 능력주의가 어떤 영향을 발휘하고 있는지, 왜 문제이며, 대안은 무엇일지 탐구한다. ‘이상적 능력주의’를 비판하는 롤스, 코헨, 랑시에르의 논변도 소개한다.


박권일은 조선 시대 과거 제도가 한국의 능력주의에 영향을 미치긴 했겠지만 직접적이고 단일한 기원은 아니라고 지적한다. 근대화 과정에서 들어온 사회진화론, 입신출세주의와 교양물신주의라는 개인화 담론, 그리고 학력주의가 한국의 능력주의를 형성해 왔다고 본다. 그 핵심적 특징은 ‘시험을 통한 지대 추구’의 정당화(124쪽)이고, 능력주의가 문제인 이유는 불평등을 정당화하고 재생산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능력주의의 영향이 사람들이 경제 민주화나 실질적 민주주의에 무관심하게 만듦으로써 민주주의를 지체시키고 있다고 말한다.


비유컨대 능력주의는 ‘화석 연료’다. 한때 그것은 성장의 필수 연료로 각광받았지만, 오늘날 막대한 사회적 비용을 발생시키는 족쇄가 되었다. 현장 역량보다 학업 성적 위주인 각종 공채 시험 제도, 소선거구제 등 승자독식적인 정치 제도, 제왕적 대통령제, 엘리트의 부정부패와 선민의식, ‘재벌’에 대한 특혜,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극단적으로 분절된 노동 및 고용 체제 등 사회 전 영역에 격차와 특권을 당연시하는 제도와 문화가 만연해 있다. 그 소산 중 하나가 ‘민주주의의 지체’다.(302쪽)


능력주의 비판을 주제로 토론할 때 사람들이 자주 혼란을 느끼는 부분이 학력·학벌주의와 능력주의의 관계이다. 박권일은 학력주의는 능력주의와 유사적·비례적 관계에 있고, ‘미완의 능력주의’이자 ‘도착(倒錯)된 능력주의’임을 분명히 한다.(78~79쪽) 또한 ‘한국은 능력주의가 아니라 시험주의(testocracy)’라는 주장도 반박한다. 나 역시 능력주의가 제도화, 전면화되면 시험주의·학력주의로 필연적으로 이어진다고 보고, 시험주의·학력주의는 능력주의의 부분 집합 내지는 구체화된 현실태라고 본다. 문제는 시험이라는 방식이 아니라, 능력을 평가하여 사람을 선별해 특권을 차등적으로 부여하는 체제이다.


대한민국이 ‘시험 공화국’이 된 건 사람들이 시험에 특별한 집착이 있어서가 아니며 그것이 최선의 방식이라 믿어서도 아니다. 다들 문제 많은 방식임을 안다. 알고 있지만 포기할 수가 없다. 그것이 논란의 소지를 가장 줄일 방법이기 때문이다. 역설적이게도, 공정성과 정의에 민감할수록 시험주의는 더욱 공고해질 수밖에 없었다. 시험주의는 능력주의와 다른 무엇이 아니라 능력주의의 최종 형태, 가장 전형적인 능력주의다. (……) 우리는 어떤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수단을 필사적으로 찾아 헤매다가 시험주의에 다다른 거다. 수단은 어디까지나 목표를 위한 것이므로 시험을 없앤다고 해서 궁극적으로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그럼 애초의 그 ‘목표’란 무엇인가? 아름답게 표현하면 ‘우수한 인재를 선발하는 것’이겠으나 그것은 적확한 기술이 아니다. 그럼 시험의 진정한 목표는 무엇인가? 그것은 ‘특권의 자격자를 선별하는 것’이다.(92~93쪽)



능력주의는 사회 계층 구조와 통로의 문제


시험능력주의.jpg 김동춘, 2022, 시험능력주의, 창비


어쨌든 한국 사회에서 능력주의가 시험과 특히 긴밀하게 결부되어 있다는 것은 확실하다. 시험주의냐, 능력주의냐 같은 질문에 대해 또 다른 방식으로 답하는 듯한 제목의 책이 바로 김동춘의 《시험능력주의》다. 김동춘은 한국의 능력주의를 ‘시험능력주의’라고 명명한다. 이 명명 역시 능력주의와 학력·학벌주의의 관계를 논하면서 제시된다. 능력주의에는 재능, 노력, 훈련, 실적 중 어떤 점을 중시하는가에 따라 다양한 유형이 있다. 예를 들면 순수 능력주의(지능이나 재능 자체를 중시), 시험능력주의, 학력주의(교육 이력을 중시), 크레덴셜리즘(학력이나 전문직 자격증이 절대적 영향력을 발휘함), 현능주의(능력과 실적이 있는 지도자가 지배하는 체제), 실적주의(실제로 이루어 낸 업적, 기여를 중시) 등으로 분류할 수 있다. 한국의 시험능력주의는 크레덴셜리즘과 순수 능력주의의 중간 정도에 위치한다.


이 책은 한국에서 능력주의가 강력하게 작동하는 원인을 사회 계층 구조와 동학으로 분석한다. 자본주의 체제에서 상층의 삶의 질이 높고 특권과 독점이 강한데 그러한 상층 지위를 획득할 수 있는 통로가 좁으면 병목 현상이 일어나고, 그 과정을 통과하려 하는 사람들의 고통이 가중된다. 능력주의 이데올로기 자체를 파고든다기보다는, 능력주의가 어떤 사회 구조 속에서 조장되고 또 어떤 현상과 관계로 나타나는지를 밝히는 데 주력한다.


능력 혹은 능력주의도 태도나 가치관, 그리고 지배 이데올로기인 동시에 사회 관계, 권력 관계와 지배 질서를 나타내 주는 용어이기도 하다. 즉 ‘능력이 있다’는 판단은 반드시 ‘능력이 없다’는 것을 전제로 성립하고, 능력의 여부는 법과 제도, 행정 등을 통해 현실화된다. (……)
그래서 능력주의는 서열, 등급, 지배와 복종 관계를 포함한다. 즉, 능력주의는 단순히 가치관, 태도, 문화, 일반화된 신념이 아니라 정책이자 실천이며, 행동 혹은 ‘행동의 결여’이고, 구체적인 삶에 지대한 영향을 주는 준종교적 교리이기도 하다.
시험능력주의에는 모두가 잘 알고 있는 앞면과 잘 알지 못하거나 부각되지 않은 뒷면이 있고, 그것이 낳은 여러 사회적 결과가 있다. 그 앞면을 지배 체제라 보면, 뒷면은 노동(배제) 체제이며, 그 결과는 부정적인 사회 병리들이다.(37~38쪽)


이어지는 이야기는 시험능력주의의 ‘앞면’으로서 지배층과 엘리트들이 어떻게 형성되고 어떤 존재가 되는지, ‘뒷면’으로서 어떻게 노동자들이 배제되고 지워지며 노동운동이 취약해지는지를 설명하는 내용이다. 엘리트 집단과 노동자라는 사회의 가장 주요한 구성원들에 초점을 맞춤으로써 한국 사회 능력주의의 폐해를 명료하게 드러내고 있다.



‘공정무새’를 탈출하라


공정이후의세계n.jpg 김정희원, 2022, 공정 이후의 세계, 창비


《한국의 능력주의》 뒤표지에는 “불평등은 참아도 불공정은 못 참는 한국 사회, 한국인”이라는 문구가 있다. 박권일은 불평등, 특권을 그대로 둔 채 그를 둘러싼 부패와 불공정에 분노하는 것은 한계가 뚜렷하다고 지적한다. 김정희원의 《공정 이후의 세계》도 비슷한 문제의식이다. 이 책은 한국 사회에서 반복되고 있는 공정 담론이 오히려 문제를 은폐하고, 잘못된 방향으로 논의를 이끌고 있다는 비판을 제기한다.


앞의 두 책이 능력주의라는 개념을 중심에 두고 이야기한다면, 《공정 이후의 세계》는 한국 사회에서 ‘공정’ 담론을 둘러싸고 일어나는 일들을 두루 살펴보며 그런 와중에 능력주의 문제도 주요하게 거론한다. 분량도 짧은 편이고 읽기 쉬운 편이지만 다소 산만한 인상이기도 하다. 쉴 새 없이 등장하는 학자·사상가들의 이름과 개념들을 전부 이해하며 읽으려면 버겁겠지만, 그런 것들을 대략적으로만 이해하며 넘어가면 그리 부담스럽지 않을 수 있다. 읽고 나니 우리에게 ‘공정무새(공정이란 말을 반복하는 앵무새)’를 탈출하기 위한 사유와 개념적 도구들을 제공하고자 쓰인 책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학문적 연구와 개념들을 소개하여 사회 현실을 바라보게 한단 점에서 《선량한 차별주의자》가 연상되기도 했다.


김정희원은 본래 공정성이란 정의와 평등에 관한 훨씬 포괄적인 개념임에도, 한국 사회에서 매우 협소하게 능력주의적 형평의 분배 원리로만 이해된다는 걸 지적한다. 그리고 그런 공정 개념에 왜 한국 사람들, 특히 청년들이 집착하게 되었는지 실업률 등의 배경을 따져 보고, 공정 담론의 폐쇄 담론적 성격과 문제점을 분석한다. 이어지는 3, 4장에선 능력주의와 공정 담론이 어떻게 계급을 재생산하고 다양한 정체성의 소수자를 차별하는지를 설명한다. 능력주의와 소수자 차별 문제를 말할 때 주로 혐오 조장에 방점이 찍히는 데 비해, 이 책에선 소수자 차별의 기제가 어떻게 능력주의와 결합하는지를 더 상세하게 정리한다. 특히 소수자 배려 정책의 의의와 한계를 모두 설명하는 부분이 인상 깊었다.


첫째, 소수자 배려 정책은 불평등한 구조는 혁신하지 못한 채 일시적으로 약자들에게 기회만 제공할 뿐이다. (……) 예컨대 명문대에 입학해 부와 성공을 획득한 소수자들이 ‘학벌 사회’ 그 자체를 사라지게 만드는 것은 아니다. 다소 모순적이지만, 여러 수정 조치를 통해 “소수자도 명문대에 보내자” “약자도 명문대에 갈 수 있다”고 선언하는 것은 결국 대학의 서열화를 공고하게 만드는 데 기여할 수밖에 없다. (……)
둘째, 소수자 배려 정책은 사회의 약자들에게 기회를 제공함으로써 자원은 재분배할 수 있었지만, 반대로 사회적 인정의 획득은 오히려 어렵게 한다. 진짜로 역설적인 문제는 바로 이것이다. 이를테면 지역균형선발 전형으로 ‘인서울’ 대학에 진학한 ‘지역 인재’가 있다고 가정해 보자. (……) 이들이 지역균형선발 전형 출신이라는 점이 알려지는 순간 이들은 다른 재학생들로부터 ‘지균충’으로 불리며 모멸적인 취급을 당한다.(107~108쪽)


발간된 날짜순으로 소개했지만, 한국 사회의 능력주의에 대한 탐구를 차근차근 하고 싶다면 《한국의 능력주의》, 《공정 이후의 세계》, 《시험능력주의》 차례로 읽는 것이 어떨까 싶다. 읽는 데 드는 부담으로 따지면 《공정 이후의 세계》를 가장 먼저 읽는 것이 허들이 낮을 수 있다. 쉽게 읽히게 하려 한 노고가 느껴진다는 것이 이 책의 장점이다.



대안은 ‘정치적 의지’


능력주의 비판 주장에 매번 따라오는 질문이 “대안이 무엇인가?”이다. 이를 의식한 듯, 세 책 모두가 대안에 대해 공들여 이야기하고 있다. 《공정 이후의 세계》는 아예 절반인 2부 전체가 ‘다시 쓰는 정의론’이라는 제목으로 돌봄, 보편적 존엄과 생존, 조직 정의, 변혁 정의(사회 변혁)란 제하에 공정 담론의 대안을 제안한다. 다소 추상적이고 덜 다듬어진 듯한 부분도 있고, 구체적 정책 변화 등은 빈약하지만, 공정과 정의 개념의 재구성이 주제이니 당연할지도 모르겠다.


《한국의 능력주의》는 마지막 5부에서 대안을 논하는데, 역시 원론적인 이야기가 많다. 그래도 노동, 군 복무에 대한 보상, ‘개천용’ 사회의 극복, 정치 영역 등 여러 논점들을 풍부하게 다루고 있다. 다음과 같은 구절은 능력주의의 대안을 찾는 데 중요한 출발점이 되는 통찰이다.


능력주의의 대안을 제시하려면 능력주의의 개념적 한계를 다양한 측면에서 분석해야 한다. 특히 능력주의가 당연시하는 전제들, 이미 상식이 되어 불변의 자연적 조건처럼 보이는 사실들을 모두 의심해야 한다. 그 상식이 더 이상 당연하지 않을 때, 비로소 대안은 현실에서 싹을 틔우기 시작한다. (……) ‘능력주의의 대안은 곧 불평등의 대안’이며, 더 이상 당연하지 않은 크고 작은 특권들을 해소하는 것으로 귀결된다. 요컨대 능력주의 대안의 주된 기조, 큰 방향은 특권의 해소여야 한다.(《한국의 능력주의》, 251~252쪽)


한편 《시험능력주의》의 대안은 보다 더 구체적이고 정리되어 있다. 상층과 하층 사이의 격차를 줄이고, 그 사이의 통로를 다양화하고 넓혀야 한다는 것이 한국의 능력주의 문제를 바라보는 이 책의 관점이다. 그런 도식에 근거해 시험능력주의 극복을 위해 ① 대학 서열을 완화하고 여러 ‘좋은 대학’을 만들어서 기존 대입 병목의 크기를 넓히는 것, ② 전문직의 특권과 독점을 해소하는 것, ③ ‘좋은 자리’에 대한 획일적인 사회적 가치 기준을 극복하는 것, ④ 지위 상승의 길로 몰리는 압력을 줄이기 위해 아래쪽 자리를 더 좋게 만드는 것, ⑤ 학력·학벌 없이도 취업, 승진, 좋은 지위와 보상을 성취할 수 있는 길을 만드는 등 통로를 다원화하고 패자 부활을 제도화하는 것, ⑥ 능력주의 이데올로기 자체를 극복하는 것을 제시한다.


그렇지만 책 속에서 완전한 대학의 평준화는 학부모들이 받아들이지 않을 거라 불가능하다며 국립대 통합 등으로 수평적 다양화를 꾀해야 한다고 단정하는 부분은 동의하기 어렵다. 지금까지 한국에서는 사실상 교육에서 능력주의적 경쟁과 서열화를 중단해야 한다는 주장으로 사회 구성원들을 설득하고 그에 근거한 제도 개혁을 추진해 본 사례조차 없었는데, 지레 불가능하다고 하니 그럼 과연 다른 개혁은 가능할까 하는 의문을 낳는다. 대학 평준화이든 노동자 권리 신장이든 불평등과 능력주의의 부당함은 설득하고 넘어서야 할 문제이다.


누군가 능력주의의 대안을 물으면, 이 책들을 보라고 하면 고개를 끄덕이게 될까? 그럴지도 모르고, 아닐 수도 있다. 사실 능력주의에 대한 비판과 대안은 옛날부터 여럿 제출되어 있었다. 그럼에도 많은 사람이 이를 외면한 이유는, 그것들이 ‘비현실적이다’, ‘불가능하다’라는 냉소 때문이 더 컸다. 그렇기에 세 책은 공히 말한다. 우리는 능력주의를 극복하고자 하는 “정치적 의지가 부족할 뿐”이며, “능력주의의 문제는 체제의 문제이자 정치의 문제로 귀결된다”라고. 그러므로 능력주의의 대안을 묻는 사람에게는 바로 자신의 마음속부터 들여다보라고 가리켜야 하는 것 아닐까? 요즘처럼 능력주의 비판이 사람들의 주목을 받게 되고 토론거리가 되는 일이 바로 우리의 정치적 의지를 고양하는 과정이 되기를 꿈꾸어 본다.





※ 《오늘의 교육》 72호(2023년 1+2월)에 실었던 리뷰를 조금 다듬었습니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어린이날 운동의 재평가 혹은 재발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