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오늘도 나를 고치고 있다 6화

나만 이상한 게 아니었다

by 공인멘토
ChatGPT Image 2025년 8월 14일 오후 10_21_50.png

1절. 나만 이상한 것 같았다


아침에 눈을 떴을 때, 오늘도 피곤했다.
밤새 잔 듯 아닌 듯, 잠을 자도 쉰 것 같지 않았다.
어깨는 무겁고, 눈꺼풀은 말라붙은 것처럼 뜨기 싫었다.
그저 일어나는 것만으로도, 하루의 절반은 이미 소진된 느낌이었다.

출근길 지하철 안, 사람들은 말없이 서 있었다.
아무 일 없는 얼굴, 무표정.
그 틈에서 나만 이상한 사람처럼 느껴졌다.
나는 왜 이렇게 예민하고, 피곤하고, 반복되는 실수에 시달리는 걸까.
왜 이렇게 혼자만 망가진 느낌일까.

회의 시간, 누군가 내 말을 끊으면 속이 울컥했다.
누가 내 실수를 지적하면 얼굴이 달아오르며 숨이 턱 막혔다.
말은 “괜찮아요”라 했지만, 머릿속은 ‘또 이랬어, 또 못했어’라는 자책으로 가득했다.

사소한 말에도 상처받고, 사소한 눈빛에도 움츠러들었다.
혼자 있을 땐 무기력했고, 사람들과 있을 땐 어색했다.
낮에는 웃었고, 밤에는 침묵했다.
그 모든 순간마다 드는 생각은 딱 하나였다.

‘나만 이상한가?’

다른 사람들은 괜찮아 보였다.
멀쩡하게 일하고, 자연스럽게 대화하고,
하루를 무난히 흘려보내는 것처럼 보였다.
반면 나는, 매 순간 감정에 치이고,
속을 들키지 않기 위해 애써 ‘정상인 척’하는 데 온 에너지를 쏟고 있었다.

어쩌면,
나는 이미 고장 났는데도
그 사실조차 수치스럽게 느껴
나 자신에게조차 인정하지 않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왜 나만 이렇게 살아가는 걸까.”
이 문장을 마음속에 삼키고 삼켜, 결국 아무에게도 꺼내놓지 못한 채
또 하루를 살아냈다.

그게 나였다.
고장 난 줄도 모른 채,
그 고장을 **‘나만의 문제’**로 여긴 채,
조용히 혼자서 무너지고 있던 나였다.



2절. 타인의 고장에 눈이 닿다


그날은 별일 없이 지나가는 평범한 하루였다.
퇴근 후, 습관처럼 SNS를 켰다.
팔로우만 해둔 어떤 사람이 남긴 문장이 눈에 들어왔다.


“요즘은 아무 일 없는데도 너무 지칩니다.”
“별일도 없는데, 버거워요.”


짧은 문장이었지만, 그 안에 뭔가 묘하게 끌렸다.
이건 내 말 같았다.
나도 그랬으니까.
특별히 힘든 일이 있었던 것도 아닌데,
어딘가 자꾸 기운이 빠지고, 가슴은 묵직하고,
사람들과 섞이는 일조차 벅차게 느껴졌으니까.

스크롤을 내리다 보니,
한 친구가 올린 글도 눈에 띄었다.


“웃고 있지만, 사실 아무 기분도 없어요.”
“그냥 그게 편해서요. 기대도 없고, 실망도 없으니까.”


놀랐다.
그 친구는 언제나 유쾌하고, 밝고,
늘 먼저 말을 걸어주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그 사람도, 나처럼
안에서 뭔가 부서진 채 살아가고 있었던 걸까?

또 다른 지인은 커피를 마시다 말고 이렇게 말했다.


“요즘은 그냥 다 귀찮아. 좋은 일이 있어도 반응이 없더라.”
“그냥… 감정이 고장 난 느낌이야.”


그 말에 나는 괜히 마음이 찌릿했다.
내가 늘 감춰두었던 말을
누군가 먼저 꺼내놓은 것 같아서.

그제야 나는 조금씩 알기 시작했다.
나만 이상한 게 아니었다는 걸.
다들 고장 났지만, 조용히 숨기고 있었을 뿐이라는 걸.

우리는 각자의 자리에서
무기력함을 숨기고, 지친 티를 감추며
‘멀쩡한 척’ 살아가고 있었던 거다.

나는 처음으로 안도했다.
고장 났다는 사실이 덜 무서워졌다.
왜냐면, 나만 그런 게 아니었기 때문이다.

누군가의 고백을 통해
처음으로,
나의 고장이 특별하지 않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 깨달음이
나를 조금 덜 외롭게 만들었다.



3절. 언제부터 ‘정상인 척’이 습관이 되었나?


기억을 거슬러 올라가 보았다.
언제부터였을까.
‘괜찮은 척’이 내 일상이 된 것이.

어릴 적, 울음을 터뜨렸을 때
“그 정도로 우는 거 아니야”라는 말이 돌아왔다.
억울하다고 말하면,
“그럴 수도 있지, 참아야지”라는 말이 따라왔다.
무섭다고 하면 “겁쟁이 되지 마”
아프다고 하면 “조금 참으면 괜찮아져”
슬프다고 하면 “그만 울고 씩씩해져야지”

감정은 느껴도 되는 게 아니라,
숨겨야 하는 것이 되었고
표현은 나약함의 증거처럼 여겨졌다.

그렇게 나는 하나씩 배웠다.
어떻게 괜찮은 사람처럼 보여야 하는지를.

피곤해도 괜찮은 척.
서운해도 웃는 척.
불편해도 모른 척.

그러다 보니, 내 감정의 회로는 점점 무뎌졌다.
정상이라는 껍데기를 쓰고,
안에서는 고장이 나도 아무도 모르게
혼자만 조용히 부서져갔다.

그건 나만 그런 게 아니었다.
우리는 모두 그런 말을 들으며 컸고
그래야만 ‘어른’이 되는 줄 알았다.

언젠가부터 ‘정상’이라는 단어는
‘멀쩡해 보이는 사람’과 같아졌다.
그러나 정말 그들이 괜찮은 걸까?

늘 활기차 보이던 친구가
혼자 있는 자리에서 한숨을 길게 쉬는 걸 본 적이 있다.
누구보다 의젓하던 선배가
어느 날 무표정으로 “요즘은 그냥 아무 감정이 없어”라고 말하는 걸 들은 적도 있다.

다들 안 괜찮았지만,
그걸 말하지 않을 뿐이었다.

이 사회는 이상하게도
고장을 고백하면 약자 취급을 하고,
감정을 드러내면 불편해하고,
도움을 청하면 의존이라 여긴다.

그래서 우리는 침묵했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점점 더 자신이 이상한 것처럼 느껴졌다.

그러나 이제는 안다.
고장을 감추는 문화가
우리 모두를 더 고장 나게 만든다는 걸.
멀쩡한 척하는 사이,
내 감정은 조금씩 사라져 가고 있었고,
나는 그걸 성숙이라고 착각했던 것이다.



4절. 문제는 나만이 아니라, ‘감춘다는 문화’였다


한참을 곱씹은 끝에,
나는 알게 되었다.
문제는 나 하나가 아니었다는 사실을.
그리고,
그보다 더 근본적인 원인은
우리 사회가 감정을 감추도록 훈련시켜 왔다는 데 있었다는 것을.

어릴 때부터 우리는 ‘멀쩡해 보이는 법’을 배운다.
감정은 드러내면 약점이고,
불편함은 숨겨야 예의라고 말한다.
슬픔보다 밝음을 택하라고 하고,
고통보다 의무를 택하라고 배운다.

그래서 고장이 나도 모른 척,
그래서 아파도 괜찮은 척.

그건 나만의 선택이 아니라,
사회 전체가 설계한 감정의 틀이었다.

가끔은 회사에서,
가끔은 SNS에서,
사람들의 웃는 얼굴 뒤에 숨겨진 지친 눈빛을 보게 된다.
겉으론 아무 일 없어 보이지만,
문득 새벽에 툭 하고 내뱉는 짧은 말에서
그들의 고장이 들린다.

“그냥, 요즘은 아무것도 하고 싶지가 않아.”
“밥은 먹었는데 배가 고파.”
“사람 만나는 게 너무 피곤해.”

다들 말한다.
멀쩡한 얼굴로.
그러면서도 속은 무너지고 있었다고.

그 모습을 볼 때마다
나는 내 감정에만 이상이 있는 줄 알았던
그 오래된 착각이 부끄러워졌다.

이건 나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가 함께 사는 이 사회의 감정 시스템이
어딘가 오작동하고 있다는 증거였다.

모두가 힘들다고 말할 수 없는 분위기.
감정을 꺼내면 이상한 사람 되는 구조.
“요즘 힘들어”라는 말이 꺼내기 어려운 공기.

그게 바로
우리를 각자의 방 안에서 외롭게 고장 나게 만들었다.

그러니 나는 묻고 싶다.
정말 이상한 건 누구일까?

감정을 감춘 나인가,
감정을 말할 수 없는 사회인가?

이상한 건 내가 아니었다.
이상한 건, 모두가 고장 났는데
아무도 고장 났다고 말하지 않는 구조였다.

그래서 지금, 나는 결심한다.
이제는 멀쩡한 척 대신,
있는 그대로의 나를 조금씩 말해보기로.

그게 아마,
세상과 다시 연결되는 시작일지도 모른다.



5절. 이상한 게 아니었다는 안도


어느 날, 문득 깨달았다.
이 이상한 상태가
‘정상이 아님’을 증명하는 게 아니라,
그저 살다 보면 누구나 한 번쯤 겪는 감정의 고장이라는 걸.

예전의 나는
그저 이런 상태를 부끄러워했다.
피로한 눈, 무기력한 말투,
자꾸만 실수하는 손끝.
이 모든 게 ‘나만 뒤처진다’는 증거처럼 느껴졌고,
그래서 더 필사적으로 숨겼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이건 나만의 결함이 아니라,
지나치게 오래 참아온 사람의 흔적이라는 것을.

“너도 그래?”
누군가의 이 한마디가,
숨겨왔던 내 감정에 햇볕을 들인다.

“나도 그래.”
조심스럽게 내뱉은 말에
상대가 고개를 끄덕일 때,
그제야 알게 된다.

고장은 특별한 일이 아니었다.
지극히 흔하고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마치 기계가 일정 시간 작동하면 정비가 필요한 것처럼,
사람도 살다 보면,
가끔은 멈추고, 점검받고, 쉬어야 했다.

그런데 우리는 너무 오래
그걸 부끄럽다고 배웠고,
그래서 아무도 꺼내지 못했다.

이상한 게 아니었다.
오히려 당연한 것이었다.

나를 괴롭힌 건
고장 그 자체가 아니라,
그 고장을 감추느라 들였던 힘이었다.
나만 이상한 줄 알고,
자책했던 시간들이었다.

이제는
그 힘을 조금씩 내려놓고 싶다.

“고장 나도 괜찮아.”
이 말 하나가
나를 편안하게 만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문득 깨달았다.
고장을 인정한 사람들끼리는
조용히, 그리고 단단하게
감정으로 연결되기 시작한다는 것을.

연결은
멀쩡함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오히려
균열에서 시작된다.

내 균열을 드러냈을 때,
누군가의 균열이 나를 향해 열린다.

이건 이상한 일이 아니라,
우리가 서로 살아내는 방식이었다.


오늘의 점검 질문


– 나는 나의 고장을 어떻게 느끼고 있었는가?
– 고장을 숨기느라, 누구에게조차 말하지 못한 게 있었는가?
– 혹시 지금, 나처럼 지친 누군가를 내가 ‘정상’으로 오해하고 있진 않은가?


삶이 멀쩡해 보이는 사람일수록,
그 안에는 말하지 못한 고장이 숨어 있다.
지금 나를 돌아보는 이 질문들이
내 안의 멈춤을 살피는 작은 손전등이 되길.

‘나만 그런 줄 알았던’ 마음이
어느새 ‘나도 그랬어’라는 위로로 바뀌는 순간,
당신의 삶도 조금은 가벼워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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